앞치마를 새로 샀다. 다X소에서 3,000원에. 별다방 커피 한 잔 값도 되지 않는 3,000원이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당당한 소비라는 게 퍽 큰 힐링이다. 그게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지만 내게 심리적인 안정과 만족을 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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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가계부를 본 적이 있는가. 보통의 경우 그들의 지출은 대부분 가족을 위한 것이다. 가족을 위한 것 앞에서는 비교적 쉽게 지갑이 열리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것 앞에서는 백 번의 고민을 하다 결국 지갑을 내려놓기 십상이다. '꼭 필요한가', '이게 없으면 큰일이라도 나는가' 보통 이런 식의 고민을 하다 '굳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는 것이다. 물론 가족의 것을 구입할 때도 같은 고민을 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일 때는 기준이 더욱 세밀하고 까다로워진다.
남편과 아이들은 옷은 철마다 좋은 곳에서 사지만 내 옷은 굳이 안 사도 되는, 그런 식이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는 가족과 내게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스킨케어 제품을 예로 들면, 남편과 아이들의 것은 성분을 따져 구입하지만 내 것은 가격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아마도 남편이 힘들여 번 돈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가시적인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입장이기에 내심 눈치가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물건을 사려고 하면 이상하게 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나를 위한 소비에 더욱 인색해졌다. 어릴 적 엄마가 화장품 샘플만 몇 달씩 쓰는 모습을 보며 왜 저리 청승맞나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것은 주기적으로 새로워지지만 내 것은 갈수록 낡아진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새로운 물건을 기분 좋게 잘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으로 내 공허함을 채운다.
그런데 주부도 사람인지라.. 어떤 날엔 저렴한 화장품 하나 내 맘대로 못 산다며 신세 한탄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호르몬의 영향인가.. 그런 날에는 모든 것에 날카로워지며 내가 몹시도 불쌍하게 여겨진다. 내 예민한 신경으로부터 시작된 화살은 당연히 가족들에게 향한다.
며칠 전 산 앞치마는 '가끔은, 조금씩 써도 된다. 무조건 아끼는 것보단 적당한 소비가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의 공책과 주방용품 몇 가지를 구입하기 위해 다X소에 갔다가 충동적으로 3,000원을 소비하고 말았다. 민트색 체크무늬의 방수 앞치마였는데 화사한 색감이 맘에 들었다. 순간 만화처럼 한쪽에선 악마가 '그냥 사버려!'라며 나를 부추겼고, 한쪽에선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며 그 자리를 비껴갈 것을 종용했다. 몇 번을 서성이며 고민하다 결국 악마의 손을 잡은 것이다.
계획에도 없던 지출로 마음이 썩 좋진 않았지만 다행히 가계 운영에 심리적인 보탬이 됐다. 새 앞치마를 하고 밥 하고 치우는 내 얼굴이 밝아졌다. 멋진 드레스를 입은 듯 기분이 화사해졌다. 3,000원은 사치인 동시에 힐링이었다. 결국 좋은 소비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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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 3,000원.
가계부에 나를 위한 지출 내역이 추가됐다.마음이 즐거워졌다.
이따금 당당히 돈을 쓸 것이다. 그래봤자 3,000~5,000원, 많아도 1만 원 안팎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 제일 풍족한 마음이 될 것이다.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긍정의 소비가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