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에 친정 식구부터 만나기로 했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이번 추석은 정식 연휴 앞으로 주말이 붙어 있어서 사실상 주말부터 추석 연휴인 셈이다. 집안의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며느리들에겐 최악일 수 있는 일정이다.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명절 연휴 앞으로 휴일이 껴있으면 당연히 그때부터가 명절이었다. 당연히 시가에 가야 했다. 시누이들은 시가에 가지 않고 친정에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래야 했다. 불합리, 부당, 이기주의, 억울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시작하는 명절이었다.
그랬는데!!
이번 추석, 처음으로 친정 식구들을 먼저 만나기로 한 것이다. 나로서는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친정에 먼저 가는 게 될까?' 걱정 80%의 마음으로 남편에게 은근슬쩍 제안했는데 남편이 동의했다. 시부모님께도 먼저 말씀드리고. 물론 그 말씀을 드렸을 때 살짝 정적이 흐른 느낌이지만 나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시가의 명절 일정은 이렇다. 전날 음식 준비, 당일 차례와 성묘. 점심식사 후 귀가&친정으로 출발. 시가는 집에서 10분 거리인데 성묘를 가야 하는 선산은 (명절 기준)3~4시간이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성묘를 마치고 집안 어른과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면 저녁이다. 그때 친정으로 출발하면 약 21시경 도착해 저녁 먹고 자고 다음 날 아침 혹은 점심 먹고 돌아오는 식이다. 명절 바로 다음 날로 연휴가 끝나면 나도 남편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번에는 친정에 먼저 다녀오니 성묘 후 귀가해 쉬면 되겠다 했는데 어머님은 성묘를 가지 말자셨다.명절 바로 전 주에 벌초를 다녀왔기 때문인데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이번 명절엔 전날 음식을 준비해 차례 지내고 쉬다가 점심 먹고 (아마도)저녁까지 먹고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지인들이 막장이라며 혀를 내두르는 시간들이 아직도 나를 짓누르지만결국엔이렇게 됐으니 어떻게든 버텨낸 내가 승자인가(정신승리). 덕분에 차례 준비에 좀 더 충성할 마음이다.
@이니슨
명절 연휴에 친정에 먼저 가는 것이 특별한 배려나 혜택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혼여성들이 그것을 제안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문화에 살고 있다. 유독 '원래 그런 거야', '당연히 그런 거야'라며 며느리에게 시가 위주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반복되면 결국 무너지고 만다. 그전에 조금씩이라도, 균형을 맞출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