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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의 첫 월급

흰수염고래보다 큰 돈

by 이니슨

몇 년 만에 일하는 사람이 됐고 첫 월급을 받았다. 쥐똥만큼 밖에 안 되는 액수지만 흰수염고래보다 큰 의미가 있는 돈이었다(비록 통장을 스쳐 나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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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포, 화장품 포장, 시험지 포장, 급식 배식 등 단기 아르바이트는 여러 번 했었지만 고정으로 장기간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알바ㅁ, 알바ㅊㄱ, ㅈ코리아를 비롯해 당근알ㅂ를 뒤지며 여러 알바에 지원했다. 내가 일을 하려고만 하면 바로 하게 될 줄 알았다. 내가 지원만 하면 바로 하게 될 줄 알았다. 대체 어디서 온 자신감이었을까.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될 나를 상상하며 즐겁게 연락을 기다렸다. 당연히 '출근하세요'라는 연락이 올 거라고 믿었다.

이력서를 열람했으나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이력서 열람조차 하지 않는 곳들도 태반이었다. '출근하세요'는커녕 '면접 오세요'라는 연락도 없었다.

대단한 곳들에 지원해서? 아니다. 식당 서빙, 설거지, 물류센터 등에서도 깜깜무소식이었는데 심지어는 그렇게 얕잡아 봤던 공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한테 "공부 그만두고 공장이나 나가!"라고 하곤 했는데 그 공장도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었다.

지원서를 넣으면 넣을수록 남는 건 처절한 절망과 쓸모없는 사람이 된 듯한 초라함,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무력함이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남편 내조하고 가정을 돌봤을 뿐인데 그건 경력이 아니라 허투루 보낸 시간에 불과했다.

어디서는 '나이가 어려서..', 또 어디서는 '나이가 많아서..' 나를 거절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관내 문화사업 업무에 지원했을 때의 일이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의 중간 한 글자가 가려진 세 명의 이름이 있었는데 내 이름이 있는 것이었다. 대박!! 이러려고 그동안 그렇게도 고생한 거구나. 혼자 축배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불합격이고, 그는 나와 이름의 두 자가 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세상이 나를 꿇어 앉히기라도 하려는 듯 내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러다 지금 일하는 곳을 만났다.


Image by GraphicMama-team from Pixabay


여기도 처음에는 불합격이었으나 일하기로 한 사람이 하루 만에 그만둔 탓에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 인사담당자는 전화로 조심스레 물었다. "만장일치로 합격이었는데 사실 저희 팀장님보다 나이가 많으셔서... 혹시 나이가 그래도 맞춰서 일하실 수 있겠어요?"
네네네! 당연하죠~~!! 저 위계질서 확실한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이거든요!!!

일자리를 구하며 알게 됐다. 경력직이 아닌 이상 마흔이 넘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설거지나 서빙, 물류센터, 물건 포장 등 몸 쓰는 일뿐이다. 그런데 이런 일조차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기에 경쟁이 치열하다. 공장에 일하러 다닌다고 안쓰럽게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취업에 도움이 될만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다.

다행히도 지금 하는 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 상품 상세 페이지를 만들고 등록하는 일이 주다. 이 나이에, 경력이 없는데도 사무직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유사 전공을 한 데다 관련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기에 가능했지만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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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배워가며 일하다 보니 드디어 첫 월급날이 됐다. 아침 일찍 통장에 월급이 입금됐다. 일자리를 구하면 느꼈던 감정들이 뭉게뭉게 떠오르다 알알이 터졌다.

나 이제 돈 버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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