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은 없다
도서 물류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창 일자리를 구할 때의 일이다. 사실 물류센터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 일이 고되기로 유명했던 탓인데 무거운 짐을 자주 들어야 해서 허리와 손목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표적인 3D업종이라 했다.
그런데 일자리가 절실했던 나는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나를 써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야만 했다. 한 달 단기로 도서 물류센터에서 일하기로 했다.
악명이 높은 만큼 바짝 긴장을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소문과는 달랐다. 몸이 고된 것은 사실이지만, 할만했다. 물론 단기로 일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내가 일했던 곳은 다양한 수험서를 발송하는 부서였다. 그곳의 동료들은 도서의 작은 긁힘과 접힘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수험생들은 사소한 흔적에도 예민해질 수 있다며 도서를 아기 다루듯 애지중지했다. 박스 포장법, 송장 붙이는 방법까지 받을 사람의 간절함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일에 대한 프로페셔널리즘을 보았다.
그날 이후부터 도서 물류센터는 내게 3D 업종이 아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일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때 일했던 학교 급식실이나 화장품 포장 회사 등에서도 고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주기 위해 묵묵히 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귀천은 오직 그것을 향한 태도에 있을 뿐이다. 도서 물류센터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그것을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