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에 대하여
집에 물이 끊겼다
- 상수도 공사 사고로 오늘 13시부터 단수입니다. 사용하실 수돗물은 미리 받아놓으시길 바랍니다.
12시 30분쯤 안전문자가 도착했다. 회사에서 한창 일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수돗물을 받아 놓으라니... 회사에 있던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물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30분에 불과했는데 내겐 그조차도 여건이 되지 않았다.
"지금 마트에 물 산다고 줄 장난 아니야."
"생수 대란이다."
지인들에게 속속 메시지가 도착했다. 눈앞에 생수를 사려고 마트를 둘러싸며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나로서는 별 수가 없었다. 내심 '아파트는 물탱크가 있는데 뭐 그리 심각하겠어?'라는 마음도 있었다.
물탱크의 물이 전부 소진되어 곧 단수가 될 예정이라는 아파트 안내방송을 들은 것은 그날 밤 10시였다. 아파트 물탱크가 바닥날 정도라니.. 걱정이 좀 되긴 했지만 자고 일어나면 당연히 물이 다시 나올 거라 믿었다. 갑작스럽지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늦은 시간에서야 겨우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볼 수 있었다.
먹는 물은 생수로 대체할 수 있었다. 설거지, 빨래는 불편해도 미루면 될 일이고. 무엇보다 문제는 변기였다. 볼 일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건 앞의 것들에 비해 큰 문제였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쓰고 버렸던 물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했는지, 의도치 않게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 주변의 물 같은 것들에 대해. 너무도 당연해서 소중함과 중요함에 대해 몰랐던 것들에 대해. 공기, 햇살, 시간부터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것들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지난날들을 반성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 우리가 가진 것들 중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을 때 더 소중하게 아껴야 쉽게 잃지 않으며, 또 잃었을 때의 상실감도 덜 할 것이다.
내 주변의 것들을 사랑해야지. 아낌없이 아껴줘야지.
단수는 불편했지만, 결국 내 삶을 한 걸음 앞으로 이끌어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