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 속에서도 장점을 찾아보자
지난 10월, 초등학교에서 유선 상으로 학부모 상담이 진행됐다.
한 친구가 학부모 상담을 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는 담임 교사가 아이의 단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잘 한다고 극찬을 하셨다고 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데 친구는 의아해했다. 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학부모 상담이니까 으레 칭찬만 하는 것 아니냐며 선생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침 나는 아이의 공부를 시키며 매일 좌절하고 있었다. 내년이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3학년인데,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학원도 보내지 않는데 '대체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매일이 절망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인 생활 습관도 아직 잘 잡히지 않은 것 같아 '도대체 몇 살까지 이런 기본적인 걸 가르쳐야 하는 거야?'라며 화가 치밀던 참이었다. 친구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부모 상담 내용이 의아하다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하는 거지.
누가 봐도 딱 '엄친딸'이고만
뭐가 이상하다고 그래?"
친구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했다.
참 이상하다. 친구도 나도, 아이의 장점보다는 단점 찾기에 바빴다. 잘 하는 것을 칭찬하기보단 부족한 것을 찾아 질책하기에만 열을 올렸다.
아마도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친구나 나는 평소 내 아이만 감싸고 돌지 않으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아이를 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해야 해'라며 높은 기준을 만들어 놓은 채로.
코로나19 이전, 집에서 아이의 학습태도가 좋지 않은 데다 공부를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아 주 1회 방문하시는 학습지 선생님께 진지하게 여쭤봤었다. 아이가 많이 뒤처지냐고. 선생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내 기분 좋으라고 한 말씀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은 내 아이도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인 내 눈에 아이가 부족해 보이는 건 다른 아이들이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평균치를 모르기 때문이라며.
그랬다. 나는 평균치를 알지도 못한 채 내 입장에서의 기준만을 내세웠던 것이다.
공부뿐 아니다. 평소 아이의 말, 행동 등 모든 것에서 나는 내 기준을 아이에게 내밀고 이대로 해야 한다며 닦달하기 바빴다. 당연히 아이의 단점이 도드라지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내 스스로의 강박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의 단점을 고쳐 완벽한 아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주고 있었다. 아이 키우기가 유독 힘든 것도 이 때문이고.
나의 아이들은 예의가 바르다. 난 성격이 굉장히 FM이라 기본적인 것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인사나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다. 덕분에 어른을 만나 인사를 할 때도 공수자세를 갖춰 예의가 바르다는 칭찬을 많이 받아왔다.
나의 아이들은 아직 순수하다. 이 어린아이들이 순수한 게 당연하겠지만 특히 큰 아이는 또래에 비해 좀 더 순수한 편이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많이 쓰는 과격한 언어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 표현을 할 때 내게 크게 혼이 나서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순수한 거라고 하고 싶다. 샤워 후 옷도 입지 않은 상태로 온 집안을 활보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순수한 게 맞는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은 느리지만 결국은 해낸다. 그것이 공부일 수도, 독서일 수도, 운동일 수도, 정리일 수도, 밥 먹기 일 수도, 씻기 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결국은 이뤄낸다. 그 과정이 다소 느리다고 생각돼 답답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은 해내고야 만다. 느릴 뿐 못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은 성격이 굉장히 밝다. 낯을 잘 가리지 않는다. 동생들과 잘 놀아준다. 그리고 또...
이렇게 아무리 당연한 것일지라도 장점이라고 생각하니 평소 아이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보인다. 덕분에 아이에 대한 강박도 조금은 덜어진 듯 싶다.
개그우먼 故 박지선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 자신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 주겠냐고.
부모인 나조차 내 아이를 아끼지 않으면 누가 내 아이를 아껴줄까. 부모인 나조차 내 아이의 장점을 알아보지 않으면 누가 내 아이의 장점을 알아봐줄까. 가정에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은 아이가 다른 곳에서도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아이의 단점을 꼬집어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장점을 내세우며 칭찬해 주자고 다짐한다.
단점 속에서도 장점을 찾아보자고 다짐한다.
내 주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아이 고유의 모습을 바라보자고 다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는 엄마가 되자고 다짐한다.
물론 아이의 단점이 또래 사회에서 무리를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면 단호하게 훈육할 줄 아는 엄마가 되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