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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n 27. 2022

여자에게 인기 많은 여자

어딜 가나 '여자'들은 나를 좋아해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 여초 직장을 다니는 나는 여자들의 세계에 익숙하다. 

여자들끼리의 세상에서 잘 지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는 후천적으로 습득했다. 


나는 뒷담화를 하지 않고 조언이나 충고도 웬만하면 집어넣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상대가 싫어할만한 일은 피하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일은 함께하자고 한다.

자랑을 하고 싶을 때도 3번 중 2번은 참는다. 웬만하면 가족에게만 자랑한다. 


눈치가 없지만 끊임없이 주변의 눈치를 본다. 가끔은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남의 눈치를 볼까 싶었는데,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많은 집단에서 패가 갈리어 분위기가 냉랭해지는 것을 참기 힘들어서 인듯하다

그 냉랭한 분위기에서 어느 쪽의 이야기도 공감이 안되는 상황을 여럿 지켜보며 

나는 대체 왜 그렇게 서로를 못 참아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가 많은지도.  

나는 여러 명의 친구들을 실망시켰을지도 모르겠다. 

눈치도 없고 왜 갑자기 싸우는지 이해를 못했으니까.


만약에 지구 상에 여자들만 남는다면 전쟁은 사라질지 몰라도 

'서로 말 안 하는 나라들이 많아질 것' 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깊이 공감한다. 

어제까진 죽고 못살던 '베프'와 오늘은 '손절'하는 관계를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고 있는 친구들, 그렇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친구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단짝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 

더구나 내가 누군가의 넘버원 단짝이 되고프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관계는 남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남편에게도 '모든 것을 함께하자'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나는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와 모든 순간을 딱풀로 붙인 듯 붙어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의 지극한 표현임을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육아휴직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내가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늘어나고

잠시라도 인연을 맺었던 직장동료들이 나를 지속적으로 연락해오고

지인들이 돌아가며 나를 찾는 것을 남편은 항상 신기해했다.


남편은 내가 어딜 가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감탄했다. 

왜 그렇게 어딜 가나 당신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얼굴이 '접근 가능성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고 웃으며 얘기하곤 했다. 

그러니까 어떤 그룹이든 처음 갔을 때 말 걸기 쉽게 생긴 얼굴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그렇다. 진입 장벽이 낮은 건지. 말 걸었을 때 대답을 잘해줄 것처럼 생긴 건지.

밖에서는 사람들이 길을 많이 물어보고, 조상신이 돕는 것 같다며 접근하는 사람도 많은 그런 얼굴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어떤 여초 그룹에서도 잘 지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베프라고 딱 한 명을 고르라면 나는 고르지 못할 듯하다. 얘도 좋고 쟤도 좋다.

얘는 이래서 좋은 친구고 쟤는 저래서 좋은 친구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내가 힘들 때 도와줄 친구를 손에 꼽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친구는 보험이 아니다. 내가 힘들 때는 내가 해결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


어쩌면 나를 고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주 연락하고 매일 보고 속내를 다 끄집어내서 보여야 지속되는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몇 안 되는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녀들과 나의 적당한 거리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그리워할 만한 적당한 거리가 내게는 중요하다. 


서로의 못난 모습을 내보여야만 서로와 가까워지는 게 아니니까. 

나는 존중이 있는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학창 시절 나와 모든 것을 공유하자고, 너는 나의 단짝이라고,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자고 하는 관계를 몹시 괴로워했다. 이런 관계를 요구하던 친구들은 결국 지금은 내 곁에 남아있지 않다. 나를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어 할 만큼 가깝게 지내고파 했던 친구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가끔 만나서 서로의 잘 지냄을 다행으로 여기는 관계.

어찌 보면 심심한 관계들은 10년, 20년이 지나도 처음의 색깔대로 이어진다. 

느슨하지만 넓은 관계를 나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떨 때는 이렇게 고집스럽게 나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벽을 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어쩔 수 없이 매일 만나야 하는 급우들이 아닌 지금이.

함께 있으면 즐겁고 떨어져 있으면 그리운 그런 관계들만 남은 지금이. 

물에 담가 불순물은 가라앉고 사금을 채취한 듯 내 손에 남은 보석 같은 지금의 인연들이 내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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