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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n 30. 2022

강렬한 첫 학교의 추억

무엇이든 처음은 있다.

1. 나는 첫 수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교사로서 첫 수업을 한 반은 2학년 11반 2교시 수학1 이었다.

교과서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고 간단히 내 이름을 써주고 수업을 시작했다.

나의 몇 안 되는 장점 중에 하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떨지 않는다는 점이다.


희한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이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니까 웃기는 행동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 공간을 채우고 커지고 있는 긴장이라는 풍선을 탁 터뜨려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다.


그 첫 수업에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자 얼어있던 아이들의 얼굴이 꽃처럼 펴지며 살짝 웃음이 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안도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웃겨줘..아니 수업해줘야지 다짐했다.


떨지 않는 게 나의 장점이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날 수업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아이들의 눈빛은 기억이 난다. 무려 11년 전인데도 그날의 아이들의 표정 숨소리가 보이는 듯하고 나의 말에 싱긋 웃던 순수한 얼굴들이 기억이 난다.


나는 초보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짜 수업을 해본 것은 교생실습 후 처음이었다. 18 시수 비담임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아주 여유로울 시간표인데도 나는 그해에 저녁 10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온몸을 바쳐 학교생활을 했다.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해의 기억은 내가 평생 동안 교사로서 지닐 자존감의 토대였다.




2. 아이들의 그늘


엄마 아빠 중에 한 분에 안 계시거나, 안 계신 거나 마찬가지인 가정이 한 반에 절반을 훌쩍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학교에 근무한 지 3년이 지나서였다. 한때 대학교 수시모집 자기소개서 1번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거였다가 몇 년 후에 그 문항이 사라졌다. 나는 고3 담임을 하며 아이들 자기소개서의 1번 문항을 읽다가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 아이들의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나는 굳이 보지 않았어도 될 아이들의 상처를 열어본 느낌이라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문항이 사라진 것이 이해가 된다. 얼마나 사연이 많은가가 대학 입학과 연관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아이들 뒤의 그림자를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알아차렸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조심스러웠다.


상담 차 학부모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사실은 한부모 가정인데 친구들에게 알려져 상처받을까 봐 한부모 지원 신청을 안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비밀을 잘 지키고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눈물을 흘리셨다. 혼자 아들 둘을 키우며 겪는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힘든 것이 혹시나 아이가 받을 수도 있을 상처임을 나는 조금 알게 되었다.




3. 남자반 43명을 담임하다.


첫 담임을 남자반으로 맡으며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지만 곧 아이들과 사랑에 빠졌다. 좁은 교실에서 43명의 17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숨이 콱 막힐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나를 잘 따라주었다. 나는 열정이 넘치는 초임교사였으니 쉬는 시간에도 들여다보며 아이들을 손안에 두려고 했다.


학급비로 삼겹살을 사서 학교 운동장 뒤에서 구워 먹는 학급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43명의 아이들은 40킬로 이상을 먹었고 라면까지 끓여먹고도 입맛을 다셨다. 17살 아이들에게 고기가 그 정도로 먹힐 줄을 나는 몰랐다. 잘 먹는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 안쓰러웠다. 조용한 반장이었던 우리 반 남자아이가 허겁지겁 먹길래 '남은 고기를 싸갈래?'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며 고맙다고 꾸벅 인사했다. 형이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4. 저는 엄마 말이랑 선생님 말은 무조건 들어요.


첫 담임을 했던 아이 중에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입학식 날 큰 덩치에 빨간색 패딩을 입고 딱 봐도 무시무시한 포스를 내뿜던 아이. 나는 입학식을 하고 교실에 아이들을 모두 데려온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빨간 패딩'에게 잠깐 남으라고 했다. 그리고 일부러 이것저것을 부탁했다. 가령 내일 아이들이 교실에 다 왔는지 확인해서 나에게 알려줄 것 같은 일들을. 똘똘한 반장에게나 시키실 일을 왜 나에게 부탁하시지 싶은 표정이었다.


갑자기 담임의 관심과 요청을 받은 아이는 긴장한 듯했지만 곧 내 편이 되었다. 그게 재안이다. 재안이는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니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하셨단다. 내신이 99.9프로였으니. 재안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아이를 남겨 중학교 수학을 따로 가르쳐주었다. 나의 열정이 과할 때였다. 그러나 과한 열정이 때론 꼭 필요한 아이들도 있었다.


재안이는 삼 형제 중 둘째였다. 아버지는 아프셔서 집에 누워계시고 엄마가 장사를 하시는데 집이 없어 친척집에 모두 얹혀 산다고 했다. 형이 직업군인이라 재안이도 직업 군인을 꿈꿨다. 재안이는 꿈이 있었지만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다만 중학교 때의 일탈을 멈추고 고등학교에서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던 것 같다. 학기 초 나의 열정과 함께 잘 지내나 싶다가 어느 날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학생부에 걸렸다. 나는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건데 그때는 의욕이 과했다. )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다시 중학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다시 일탈의 과정에 빠진다는 것은 결국 학교에서 나가게 되는 과정과 연결된다. 교칙에는 흡연 3회면 퇴학이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과정이라 퇴학이 없지만 고등학교는 퇴학이 있다. 실제로 고1에 자퇴나 퇴학이 가장 많다.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가 벌써 흡연으로, 그것도 '학교에서' 피다가 걸렸다는 것은 이 아이의 학교생활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재안이를 불러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결국 이렇게 되면 나는 너의 마지막 담임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때 재안이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앞으로는 절대로 (학교에선) 피지 않겠다고.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엄마 말이랑 선생님 말은 무조건 들어요.


재안이는 결국 무사히 한해를 마쳤다. 직업 군인을 꿈꾸던 아이는 외갓집이 있는 제주로 내려가 해군 부사관이 되었다.





5. 선생님을 엄마보다 더 오래 보는 거 같아요.


엄마 아빠가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이 고등학생쯤 되면 부모와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나의 첫 학교는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방과 후 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율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을 어떨 땐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함께 있기도 했다. 수학 방과 후 수업에 영재 수업까지 하고 야간 자율학습 감독까지 하고 온 날. 저녁 10시 종이 치고 아이들이랑 인사하며 헤어지는데 평소엔 말이 없던 현우가 내게 불쑥 이야기했다.


하루에 선생님을 엄마보다 더 오래 보는 거 같아요.


그리 사근사근한 말투가 아니었는데도 현우의 말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학교에선 내가 니 엄마야. 이 자식아.


지금은 이런 말이 안 나오지만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내 새끼처럼 아이들을 대했다. 의욕 과잉이었다. 의욕이 넘치기에 아이들에 대한 기대도 컸고 그만큼 실망도 컸다. 대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진짜 교사로 거듭났다. 임용고시를 통과했으니 인제 진짜 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각이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계속 깨지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서야 진짜 교사가 될 수 있었다.





모든 첫 경험은 강렬하다.

나의 첫 학교생활도 내게 이렇게 평생토록 강렬하게 남아있을 줄 몰랐다.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은 얼굴들을 헤아려 보다 보면 그때의 내가 그리워진다.


오랫동안 학교를 떠나 있으면서도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것은 아마도 첫 학교에서 만났던 이 아이들 덕일 거다. 그들의 인생에도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시간이 흘러도 부끄럽지 않을 어른이 되고 싶다.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해서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점인 것 같다. 어쩌면 육아와도 비슷하다. 내가 먼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야만 아이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요구할 수 있으니꺄.


어제 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자라나는 새싹들을 한 번이라도 더 웃게 만드는 것.

그것이 '먼저 태어난(先生)'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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