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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Feb 14. 2022

이렇게 된 이상 강제 백년해로다

다정한 부부가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우자생존, 즉 다정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개가 늑대에서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주는 진화생물학 책인데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이기적이고 냉혹하고 가장 힘이 센 개체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다정하고 다른 개체와 잘 어울리고 친화적인 종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인 개의 진화과정을 통해 설명하는 거였다. 그리고 인간 또한 마찬가지. 가장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게 아니라, '자기 가축화'를 통해 가장 친화적인 동물로 진화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고 생각했다.


다정한 부부가 살아남겠군.


쌍둥이를 출산한 날 마취가 깨자마자 남편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보 이제 우린 애가 셋이야.
이렇게 된 이상 우린 강제 백년해로해야 돼. 각오해.


나는 농담조로 얘기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남편과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이 남자와 나는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어떤 누구보다도 얘와 잘 지내야 된다는 생각, 나와는 전혀 다른 인간이지만 이제는 내 새끼들의 아빠가 된 이 남자가 새롭게 보였다. 잘 지내봐야지.

다행인 건 남편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변하기 시작했고, 나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육아와 가사에 협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나도 처음부터 나만의 시간을 알차게 누린 건 아니었다.


첫째가 두 돌이 되던 해에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났고 우리는 25평 오래된 아파트에 5인 가족이 복작대며 기 시작했다.  


어른 둘이 아이 셋을, 그것도 영유아만 셋을 본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곡예와 같았다.


집채만 한 바위를 아무리 낑낑대며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도 다음 날이면 다시 굴러 떨어지는 걸 바라보는 심정으로 아침에 눈을 떴다.


심지어 바위가 세 개야...


어느덧 집이 감옥이 되었다.

잠시라도 몸을 편히 뉘일 곳이 없었다.

나는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뭐라도 육아와 관련이 없는 것을 하고 싶었다.

스마트폰만 보다가 눈이 침침해지는 게 싫어서 책이라도 볼라치면 남편이 말했다.


눈 좀 붙여.
책 읽을 시간 있으면 그냥 좀 쉬어.
너무 많이 보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낮에 힘들어하잖아.


남편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힘들어해서도 안되나?'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책 읽는 것조차 내 맘대로 못하는 것에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날 펑 터져버렸다.

무슨 책을 또 읽냐고, 계속된 비아냥까지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지만, 어느 한계선을 지나치자 분노가 끓어 넘쳤고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24시간 중에 단 한 시간도 나로서 사는 시간이 없어.
내가 책 읽는 거 줄이라고 하지 마.
지금 내가 그나마 육아 아닌 걸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야.

당신은 출근하면 당신 이름으로 살지? 사람답게.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

나는 많은 것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나로서 온전히 살기를 바랄 뿐.

물질적인 것을 더 누리고 싶은 생각도, 더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할 뿐.

이 좁아터진 시야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나의 세계를 늘리고픈 생각뿐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더 사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랑이 편지를 써두고 출근했다. 부은 눈에 또 눈물이 글썽였다.

힘겹게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한 마리 가냘픈 산짐승이 된 것 같았다.


어제 내가 너무 나쁘게 굴어서 미안해요.
나 힘든 것만 생각하고 여보가 고생하고 있는 건 신경도 안 쓰는
이기적인 놈처럼 굴어서...
여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 새삼 느꼈어요.
앞으로는 여보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고 존중할게요.
사랑해요.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책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서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 게.


우리는 신혼 초 설거지를 자주 서로에게 미루었고, 가위바위보로 정했고, 남편은 설거지하는 내 표정이 마치 나라 잃은 표정 같다며 놀리기를 좋아하는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내가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고 있으면 남편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선포했다.


주방은 내 영역이야


남편은 아이들이 울면 못 견뎌했다. 쌍둥이가 울면 남편의 목소리도 커지곤 했었다. 나는 아이들이 우는 소리보다 남편이 그걸 못 견뎌 같이 소리 지르는 게 더 거슬릴 지경이었다. 내가 아이를 달래며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또 남편은 뒤돌아서서 설거지를 했다. 내가 하려고 하면 고무장갑을 뺐었다.


어~디 여자가 주방에 들어와.
여긴 내 영역이야

남편의 배려였다.

동시에 남편 나름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는 순간에는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 남편이 핸드폰만 보고 있거나 게임을 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는데,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희한하게 사랑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걸 아는 남편이 점점 주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였다.

아이들이 잠들면 남편은 주방에 서서 말했다.


나는 이제 설거지를 할 테니
여보는 이제 책을 읽어


한석봉 엄마에 빙의한 듯한 그의 비장한 말에 웃음이 났다.

이제는 책을 읽는 걸 존중받게 되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예전처럼 숨 막히지 않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막 대할 수도 있는 관계인 부부 사이.

밖에서 만나는 어떤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다정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세 아이의 부모로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임을 알고 나서부터는 같이 노력하는 과정이 즐거워졌다.


뭔가 거창한 걸 하지 않아도 둘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며 서로의 생각을 궁금해한다.

아무 일 없어도 서로를 자주 안아준다.

나 좀 안아줘,라고 남편이 말하면 나는 막내아들을 안아주듯 남편의 커다란 어깨를 안아주곤 한다.

토닥토닥.

온순하고 커다란 강아지 같은 그의 등이 나의 토닥임에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백년해로의 백년이 어디까지냐가 아직 협의는 안됐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나는 이 남자와의 미래가 기대된다. 이 남자와는 다정하게 지낼 수 있고 살면 살수록 내 자신이 더 좋아질 것 같다.

앞으로도 언제나 서로를 버선발로 반기는 다정한 부부로 살아가고 싶다.


남편의 변화의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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