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선택을 믿어.
굳이 꼭 서예학과를 가야 하니?
서예학과를 가기로 마음을 다잡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날,
부모님 두 분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아버지는 크게 표현하시지 않으셨지만 기뻐하셨고,
어머니는 그다지 달가워하시지 않으시며 말씀하셨다.
“서예는 지금처럼 평생 할 수 있으니까 전공은 또 다르게 선택해서 더 다양한 것들을 배워보면 어떨까? 굳이 서예학과까지 갈 일이 있을까 해서…….”
아마도 녹록지 않을 예술가의 삶을
딸 역시 걸어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 당시 내 주위에는 서예가를 꿈꾸며 글씨를 정말 좋아하는 또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병아리를 키워보고 싶었다.
양 손에 달걀을 하나씩 잡으면 두 개를 얻을 수 있겠지만,
두 손으로 하나의 달걀을 감싸면
건강한 병아리를 부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니.
또래가 없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지만,
어쩌면 짜릿 하리만큼 새로운 분야일 테니까.
서예과를 졸업하고 나서도
꾸준하게 서예에 애정을 쏟는 내 모습을 보신 아버지는,
이제야 말하지만 딸들 중 아무도 서예에 관심이 없었다면
이 많은 고서들은 모두 골동품 취급만 받았을 텐데
정화 덕에 오래도록 귀한 취급을 받겠다고 하셨다.
아마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신 말이라 기억을 못 하실지 몰라도, 그 속에 당근 모양의 채찍, 혹은 채찍 모양의 당근처럼 알게 모르게 가르침을 주시는 아버지가 참 감사했다.
처음에는 반대하셨던 어머니는 지금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이시다.
사실 전시를 하는 것은 작가의 숙명이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는 몇 없다. 그렇기에 작품을 한다는 것은 기약 없는 소비를 하는 것이다.
소비가 전부일지 모르는 작품을 위해
달과 함께 내내 작업을 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과일을 깎아 조용히 방에 가져와 주시며
소리 없는 응원을 해주신다.
우리 모두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눈을 떠 기지개를 켜는 순간부터,
충전을 위해 눈을 감고 이불을 끌어안는 시간까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으로 삶이 이어진다.
가끔은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 불안할 때도 있지만
한 손에 폭 감싸져 있는 알 속의 병아리가 건강히 커서
나의 또 다른 새벽을 깨워줄 멋진 닭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두렵고도 짜릿한 고민의 길에서 하나씩 하나씩,
선택하며 자라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