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어차피 나는 도쿄
새벽 두 시, 도쿄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의 설렘은 어디로 증발했을까.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여정, 심장은 이유 없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차오르다 이내 떨어지는 눈물, 수면제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불면의 밤. 창밖의 달빛만이 유일한 동반자처럼 느껴진다.
숙소 예약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렸던 시간들. 이제야 겨우 윤곽이 드러났건만, 오히려 막연했던 일본행이 현실로 다가온 듯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뛴다.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ADHD를 가진 두 아이의 새로운 학교와 학년 적응을 위해 애쓰며, 친정아버지에게 무리한 도움을 청하고, 남편과의 치열한 갈등 끝에 얻어낸 3개월의 일본 홀로서기 프로젝트. 이 모든 것이 불안과 혼란 속에서 무너져 내릴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서 내 심장이 이토록 격렬하게 뛰는 것일까.
도쿄의 숙소를 알아보는 과정은 예상치 못한 문화적 충격의 연속이었다. 상냥한 미소 뒤에 숨겨진 단호한 거절, 친절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주저하는 지인들의 태도, 터무니없이 비싼 숙박료와 복잡한 계약 조건들. 일본의 부동산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고, 무리하다 싶은 요구에는 웃으며 별안간 계약을 철회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친절한 말투로 거리를 둘 뿐 실질적인 도움은 얻을 수 없었다. 첫 발걸음부터 난관에 부딪히니, 이 모든 과정에서 깊어지는 고립감은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고, 지옥 같이 느껴졌던 집이 새삼 안락하게 느껴지며 떠나기도 전에 그리워하게 되었다.
휴직 후에도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간다. 두 아이의 새 학기 준비와 정신의학과, 치과, 안과, 피부과, 소아과 등 병원 일정 조율, 건강검진, 운전면허 갱신, 보험 가입, 핸드폰 개통 등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정신과 약은 고작 한 달 분량뿐인데 한 달 후 주치의도 없는 그곳에서 난 이제 어떻게 하지?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미로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과제도 너무 많다. 첫 초등학교 입학, 새 학년, 새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들, 새로운 학원과 숙제, 그리고 여러 방과 후 활동들. 나는 내가 떠난 후에도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촘촘한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선생님들, 엄마들, 등하교 도우미, 아동복지기관들과 시/친정 가족들을 오가며 다양한 도움을 구하고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완성되지 않아 불안하고 초조하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3주간의 휴직 기간. 간만에 여유롭게 집안 정리도 하고 아이들의 새 환경도 살뜰히 챙기며, 개인적으로는 공황과 우울증 심리 치료 서적을 읽고 바이올린과 일본어 공부, 마음 챙김 수련 등으로 심신을 다스리며 멋지게 홀로서기 위한 준비를 충분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내 심신을 돌볼 여유는커녕, 당장 아이들의 새로운 돌봄 체계 구축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ㅠㅠ
그동안 혼돈의 불확실성 속에서 너무 오래 허우적대며 치명적인 마음의 병을 얻었었기에 이제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고 낯선 타지에서 혼자만의 고요한 나만의 성찰 시간을 찾고자 했었다. 하지만 원래의 계획과 달리 도쿄의 게하를 분주히 메뚜기 뛰어야 하는 열악한 일상 환경이 과연 그런 여유를 허락할지 의문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불안은 짙어진다. 완벽한 준비란 없겠지만, 이렇게 허술한 채로 떠나도 괜찮을까. 창밖의 달빛이 흐려지듯, 내 마음도 아직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여정이지만,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짓누른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 혹시 더 큰 외로움과 좌절을 직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곳에서의 경험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이 모든 준비가 과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어쨌든 이제 나는 불안의 심장을 안고, 불확실한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줄지, 내가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될 수 있을지, 그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God bless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