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가까이 위염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모든 병이 그러하겠지만, 병에 걸려 육체의 한계에 갇히는 건 늘 우울하고 힘든 일이다. 매운 것을 계속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던 차에 아침 식사로 그토록 원했던 부대찌개를 푸짐하게 끓여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식사 직후에 밀려오는 불쾌감에 설마 했는데, 급기야 위장에 탈이 난 것을 감지했다. 급기야 오후 일정을 간신히 마친 뒤 병원으로 직행했다. 아침식사로 부대찌개를 먹었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3일 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3일 뒤, 약을 먹고 좀 나아지는 듯해서 아침에 폭식을 한 게 결정적 화근이 되었는지 다시 몸져누웠다. 급기야 동생이 전화기 너머 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부랴부랴 우리 집에 달려와병원으로 데려가 줬다. 의사는 온몸에 진액이 빠진 나의 몰골을 보고 수액을 처방해 줬다. 드러누워 2시간 가까이 수액을 맞으며 또다시 익숙한 병원 천장을 마주했다. 나이 들기 위한 의식인지 50고개에 들어서면서 부쩍 수액을 자주 맞는 느낌이다.
원하는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까 신경이 예민하고 까칠해진다. 이전에 그냥 넘어갈만한 일들에 대해서도 자주 신경질이 난다. 멀건 죽만 먹은 뒤 잠자리에 들면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나서 잠을 설친다.
아이들 끼니를 해주느라 음식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먹을 수 없다는 비애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주말에는 위장은 물론이고 전체 몸의 컨디션이 안 좋아져 꼼짝 않고 만사 제쳐둔 채 침대에서 뒹굴 거렸다. 부실한 몸은 여전히 삐걱거렸지만, 모처럼의 휴식이라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위염으로 심하게 앓고 난 뒤 이 병마가 나에게 준 선물을 한 아름 받았다.
첫째, 느리고 겸손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늘 시간에 쫓기고, 할 일들에 치여서 동동 거리며 살았다.
잰걸음으로 할 일들을 하고도 저녁까지 일을 다 못 마치면 잠을 반납해 가면서 일을 마치느라 분주했다. 위염에 시달리느라 몸이 허약해진 뒤에는 더 이상 분주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급한 일들이 아니면 모두 보류하거나 미뤘다. 그리고 최대한 나만의 속도에 맞추기로 했다.
둘째, 나이 들 수록 필요한 절제의 미학을 배웠다. 탐심은 세상의 명예나 부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은 음식에도 탐심과 욕구를 느낀다. 먹을 수가 없으니 자연식만 섭취하며 음식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탐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더워지는 날씨에 기운은 허약해졌지만, 대신 몸은 더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셋째, 감사를 배웠다. 막연하게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이 늘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가 아파 제대로 못 먹고, 못 움직이면서 비로소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의 모든 행위와 상태가 감사한 것이란 걸 깨달았다. 매일 마시던 한 잔의 커피, 출출할 때 끓여 먹던 라면, 잘 익은 돼지고기를 쌈 싸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들이 모두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축복임을 깨달았다. 아이스크림, 과일, 과자, 국수 등... 이런 것들을 모두 제한 없이 먹을 수 있다면 분명 감사한 일이다.
넷째, 아픈 사람을 향한 공감을 품었다. 주변에 위암으로 수술받고, 제대로 못 드시는 분이 있었다. 이전에는 그분을 보며 그저 '아프시구나' 생각만 했다. 그러나 내가 아픈 동안 그분과 같이 아픈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 몸에 침투한 병마로 인해서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제약이 걸리는 게 얼마나 슬프고 불편한 일인지 공감하게 되었다.
거의 2주간 죽과 흰쌀밥을 오가는 절제식을 먹으며, 살이 제법 많이 빠졌다. 단순히 살만 빠진 게 아니라 내 안의 탐심과 허울 좋은 욕망까지 다이어트되었길 바란다.
이제는 예전까지는 아니라도, 좋아하는 고기 등은 조금씩 오래 씹어 먹는다. 이렇게라도 회복이 되니 감사할 따름이다. 위염에서 회복되어서서히 몸 상태가 좋아지더라도, 나는 아픈 동안 배운 것들을 기억하며 계속 느리고 겸손하게 살고, 절제하며, 감사, 공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