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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n 01. 2024

나는 네 발로 걷는다

맏딸의 눈으로 본 아빠의 이야기

아빠가 병원에서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을 때 온 가족이 모여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때 엄마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빠의 얘기를 하셨다.


"네 아빠는 정말 인생을 씩씩하게 사셨던 분이야.  예전에 아빠가 쓴 글이 조선일보에 실렸는데 제목이  ‘나는 네 발로 걷는다’ 였지.  그 글이 실리고 팬레터가 집으로 어찌나 많이 오는지  신혼시절이었는데 내가 깜짝 놀랐지 뭐야."


아빠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담긴 엄마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내 평생 변방으로 몰아넣고 무심했던 아빠의 삶을 떠올려 봤다.  

1944년 8월 17일

나는 1942년생으로 알았는데 아빠가 태어나자마자 소아마비를 크게 앓아 두 다리를 못쓰게 되어 출생신고를 늦게 하셨다고 한다.


아빠는 당신의 생신 1주일 전쯤이면 어김없이 딸들 집에 전화를 거셨다.

“아빠 생일이 다음 주인데 오지 않아도 된다. 정말이다. 다들 바쁘고 번잡스러우니 오지 말아라.”


아빠의 전화를 받고서야 나는 아빠의 생신이 성큼 다가왔음을 뒤늦게 깨닫곤 했다. 8월 17일은 음력으로 새면 추석 전후 날짜였다. 명절 쇠느라 바쁜 딸들이 음력인 아빠의 생신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걸 아시고 딸들이 결혼한 이후에는 집집마다 전화를 돌리셨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세 딸들은  아빠 전화 받았냐고 킬킬거리며 서로 확인하고, 여지없이 아빠의 생신 날에는 케잌이며 선물을 들고 친정집에 모였다.  

 그때마다 아빠는 우리를 향해 한 마디씩 하셨다.

"아, 내가 오지 말라니까 왜 왔니? 오지 말랬는데..."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씨익 미소짓는 아빠 모습이 좋았다.


1944년에야 출생신고가 되었지만, 1942년에 이북 평양 강동에서 태어나신 아빠는 돌 전후 소아마비에 걸려 지독한 열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시 소아마비는 걸려도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비극의 병이었다. 열은 나았지만 아빠의 두 다리는 영영 쓸 수 없게 되었다.


1950년에 터진 6.25 전쟁  1.4 후퇴 당시 평양에서 피난을 가야 했는데 할아버지는 다리를 못쓰는 갓 8세 된 막내아들이 영 마음에 걸리셨다.  재산이 많아 누군가 재산을 지켜야 하기에 가족이 함께 피난을 떠나기 힘들었던 할아버지는 큰 결단을 내리셨다.


 이북에  큰아들과 아내를  남겨 놓고  막내아들인 아빠와 장녀, 차남을 데리고  수일 내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먼저 출발하신 것이다.


다리를 못쓰는 당시 8세였던 막내 아들을 할아버지는 등에 업고 피난길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 길로  평생 이산가족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맏아들과 아내를 북에 둔 채 막내를 등에 업고 맏딸과 차남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이후 남과 북은 서로 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그 길 이후 아빠는 영영 고향땅을 밟지 못했고 사랑하는 엄마, 큰형과  영원히  헤어졌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둘러업고 전쟁 통에도 직접 학교를 데리고 다니셨다. 다리를 못쓰는 막내아들이 어떻게든 교육을 받아 제 몫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아비로서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아빠가 덩치가 커져 더 이상 업고 다닐 수 없게 될 즈음에 직접 수소문해서 아빠를 위한 목발을 만들어 주셨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구해 주신 목발을 짚고 드디어 혼자서 학교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전쟁 직후 모두가 가난한 때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얇은 다리를 휘적이며 목발에 의지해 걷는 아빠의 모습은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친구들이 짓궂게 놀릴 때마다 아빠는 목발을 휘두르며 “너희는 두 발뿐이 없지? 나는 이렇게  너희보다 많은 네 발로 걷는다.”라고 호기롭게 말하며 놀리는 친구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아빠의 글이 되어 당신이 성인이 된 이후 조선일보에  실렸다.

나는 네 발로 걷는다’


누군가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걸림돌로만 여겨질 수 있는 장애가 아빠에게는 도리어 남과 다른 특별함을 부여하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아빠는 그런 분이었다.

당신 생일을 잊은 가족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에둘러 알리실 정도의 유머를 가지신 분.

자신의 처지와 한계를 비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시던 분.

삶과 사람을 무한 긍정하며, 불평없이   무던하게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신 분.


맏딸인 나는 평생 장애로 인한 사회의 장벽과 피 흘리도록 싸우면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갔던 아빠 삶의 경이로움을 아빠를 잃은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삶의 아름다움을 맏딸의 눈으로 하나하나 반추해 본다.


아빠를 향한 애도, 기억, 아빠와 딸만 셋인 집의 맏딸이

걸어온  특별한 이야기, 이 모든 것을 통한 위로와 메시지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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