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는 독서논술 교사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들 중 하나는 아이들의 글을 읽는 때이다.
아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10대 아이들이 하나씩 지닐 법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여과 없이 진솔하게 별처럼 쏟아진다. 아이들은 본래 순수해서 자신들의 글에 대해 지어내거나 꾸며 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그 순간 자기감정에 충실하게 쓴다. 그런 날것의 팔딱이는 글들을 읽으며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어른들을 가르치는 작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아이들과 철학 이론서를 읽었다.
서양 주요 철학 사조를 다룬 책을 읽고 수업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철학 이론이 무어냐 물으니 자신 있게 빈이가 라캉의 ‘욕망 이론’이라고 답한다.
왜냐고 물으니 고통 속에 쾌락을 느끼면서 욕망을 추구하는 게 흡사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한다.
그날은 늘 쓰던 논술문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 이론을 삶과 연결해서 수필로 써보자고 했다.
빈이는 ‘롤의 욕망’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롤이 얼마나 허망한 게임인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 롤을 하는 동안의 고통 속에 쾌락이 있기에 아직도 욕망을 끊지 못한다는 진지한 자기 고백을 했다. 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글을 썼는데 그 표현이 얼마나 앙증맞고, 신선한지 나는 아이 글 옆에 큰 글씨로 훌륭한 글이라는 칭찬을 써줬다.
철이는 책을 안 읽고 와서 종종 혼나고 뒤에서 혼자 책을 읽다 가곤 했다.
그렇게 자신을 야단치는 선생님이 야속했던지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감상문을 쓰라니까 거기에 나온 사납고, 신경질적인 푸케 선생님이 나와 닮았다고 장황하게 이유를 넣은 감상문을 썼다. 철이는 자신의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인해 누구보다 사실적이고 섬세한 글을 썼다. 누가 봐도 그 글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글 속에서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몹쓸 선생님이 되었지만ᆢ
유년의 추억으로 수필을 쓸 때, 동이는 맏이로서 부모에게서 받은 기대로 인해 힘겹다고 호소했다. 스트레스로 가출까지 했었는데 자신을 울면서 찾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갔다는 경험담이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늘 성실하고 탁월한 학생이기에 부모님과의 관계도 원만하겠지 했는데 아이가 잘할수록 부모님의 기대가 커져 많이 힘들었나 보다.
이 외에도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진솔한 자기 고백, 성찰의 글들을 누구보다 순수하고 가감 없이 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앉아 있지만 세상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아이들의 솔직 담백한 글을 보며 때로 부러움을 느낀다.
내가 10대와 같이 이토록 순수하고 눈부신 글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독보적인 글을 쓰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상념에 잠긴다.
내 안의 내밀한 얘기들을 마음껏 쏟아붓고 그로 인해 스스로 치유되고 발전할 수 있는 글쓰기의 순기능에 대해 다시 경탄한다.
이 어리고 귀여운 작가 스승들을 매일 경외감으로 만날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
부디 지금의 그 투명한 솔직함을 잘 간직한 멋진 어른으로 자라주길 기대한다.
우리가 꿈꾸고 사랑했던 이 소중한 시간들도 아이들의 삶을 빛내는 기억 하나로 영원히 남겨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