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수속 절차를 마친 후 아내와 나는 응급실로 이동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응급실 내부는 조금 전 의사의 유난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응급실 침상의 절반 이상은 비어 있었고, 그나마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환자들도 가벼운 부상이나 증상으로 입원한 환자들처럼 보였다. 나와 그 의사가 펼친 신경전이 무색할 만큼 여유 있게 운영되고 있는 응급실에 무사히 입성했다. 그래도 내가 하루 종일 염원했던 전원을 하고 나니 조금은 안심됐다. 준공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시설 장치들이 깔끔하고 최신의 것들이었다. 아내의 상태에 대해서 기본 검사를 다시 진행했는데, 이전 병원들에서 아내가 돌아다니면서 X-Ray 촬영을 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응급실에 대형 이동식 X-Ray 촬영 기기가 와서 아내가 별도로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아내가 더 이상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방법밖에 없기도 했다. 입구의 의사와는 다르게 간호사들의 여유가 느껴지기도 했다. 간호사가 나와 나란히 앉아서 혈액 채취를 하고 있었는데 대뜸 말을 걸어왔다.
“고생 많으시죠.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도 3~4시간 전에 간단하게나마 타코를 먹었기에 그렇다고 했다. 오늘 직접 만난 사람 중에 나의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은 이 간호사가 유일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고 했던가. 비록 한 명이었지만 아무런 여유가 없던 내게 건넨 친절한 한마디가 꽁꽁 언 냉동고기를 전자레인지로 5초 정도 해동한 것 같은 효과를 줬다. 동시에 병원에 대한 신뢰도가 생기면서 아내가 괜찮아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함께 들기 시작했다. 그만큼 나는 사소한 행동, 말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휘둘리고 있었다.
기본 검사 후에 신경과 당직 의사가 응급실로 와서 아내의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 이미 아내의 새로운 담당의로부터 대략적인 상황은 전달받은 듯했다. 하루 종일 심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당직 의사는 덤덤하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런 환자들을 보는 것이 직업이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내게 다가와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처럼 양팔을 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무조건 회복할 겁니다. 어느 정도로 회복하냐의 문제지, 무조건 회복됩니다.”
“그런가요? 그럼 100% 회복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건 지켜봐야죠.”
예상치 못한 설명이었다. 의사들이 평소에 환자와 보호자가 듣고 싶어 하는 희망적인 이야기보다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안내해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로 회복은 문제없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 생겼다. 물론, 후유증은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도 했지만, 나는 웬만해선 회복한다는 말에 우선 집중하기로 했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을 아내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줬다. 내가 느꼈던 안도감을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설명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아내는 지속적인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고 내 말을 알아듣는 게 점점 힘겨워 보였다.
점점 경련의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걱정하고 있을 무렵, 우리는 3층에 위치한 뇌혈관계 중환자실로 안내받았다. 토요일 저녁이라 사람은 거의 없어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만 복도를 다니고 있었다. 3층에 올라가니 응급실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새로 지은 병원의 웅장함과 주말의 고요함이 묘하게 섞여 나를 서서히 압도하고 있었다.
당연히 규모가 훨씬 큰 병원이었기에 M병원과는 달리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이 치료받는 공간과 보호자 상담실, 직원 창고 등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내가 간호사들과 아내의 중환자실 입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무렵, 다른 간호사들이 불쑥 나타나서 난데없이 아내를 데리고 들어가 버렸다.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도, 밖의 일은 내가 다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자신 없는 당부도 하지 못했는데 아내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게 아내의 심적인 안정일 텐데 행정 절차들을 처리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후순위로 밀렸다. 세상은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아내를 다시 뺏어 가버렸고, 혼자 잠시 멍해진 나는 순간의 방심이 들킨 것 같아 아내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상담실에서 형식적인 입원 안내를 받는데 OJT를 받는 듯한 간호사와 트레이닝 담당인 간호사가 함께 상담에 참여했다. 훈련받는 간호사는 연신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관 간호사가 신경 쓰였는지 한마디 할 때마다 그의 눈치를 살피기 급급했다. 보호자인 내게 안내를 해주는 데 집중해 주면 좋겠는데, 나보다는 상관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나까지 불편해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그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계속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강력하게 끝내 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오롯이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그들의 설명도 형식적인 프로토콜에 불과했다. 지금 나는 아내의 상황을 타개해도 모자란 판에 남의 곤란한 직장 생활에 연루된 것 같아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꼭 나를 두고 훈련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없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상담을 종료하기 위해 추가 질문도 신속하게 하고 빠르게 설명을 잘 들었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나왔다. 그들에게도 아내의 상황은 그저 일하다가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상담이 끝나고 M병원에서처럼 각종 준비물을 구매해야 했다. 칫솔, 치약, 물티슈, 세 종류의 기저귀까지. 주말 저녁이라서 병원 지하에 있는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아 외부 편의점에 사러 나섰다. 이 와중에 쓸데없이 나의 길치력이 발휘돼서 정문을 나가자마자 있는 편의점은 지나치고 멀리 있는 상가까지 가서 헤맸다. 두 군데의 편의점을 갔는데, 필요한 물건은 다 있을 거라고 했던 간호사의 말과는 다르게 세 종류의 기저귀를 파는 편의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괜히 서럽고 짜증만 났다. 하루종일 한낱 먼지도 되지 않는 것 같은 나의 존재감을 온몸으로 느꼈던 터라 어떻게든 나의 존재 의무를 세상에 피력하고 싶었다. 사소하게는 필요한 물품들을 다 넣어주면서 미션을 완수한 느낌으로 잠시나마 쉬고 싶었는데, 이것조차 잘 풀리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잠깐 숨을 돌리면서 정신을 차렸고, 간호사가 안내했던 병원 앞의 대형 편의점을 찾아 필요한 물건들을 산타 할아버지처럼 두 손 가득 들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간호사에게 준비물을 건네주고 나면 아내의 향후 처치 계획에 대한 말을 해주거나 적어도 아내의 상태에 대한 업데이트를 해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간호사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다시 중환자실 안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내가 할 일은 이렇게도 허무하게 끝났다. 이제는 아내와 병원을 믿고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후에 내 연락을 받고 부산에서 급히 올라왔던 부모님을 포함한 양가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상황을 알려드리러 집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양가 어머님들이 경쟁하듯이 각자의 아들과 사위를 위해서 저녁 준비를 해주려고 할 것 같아서, 아까 준비물을 샀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막상 도시락 코너를 보니까 허기지기 시작했고 도시락과 함께 컵누들까지 함께 사 먹었다. 입맛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흡입하듯 허겁지겁 먹었다. 집에서 나온 지 반나절 넘게 지나서 그런지 꽤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8시 정도였다.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아내를 병원에 두고 가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도 느꼈지만 내가 중환자실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병원에 머물러 있으면 아내에게 아무런 도움은 안 되고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될 뿐이었다. 나는 병원에서만큼은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다.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였다. 집에서 양가 부모님들도 기다리고 있고, 결정적으로 오늘 엄마와 아빠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한 딸이 영문도 모른 채 혼자 놀고 있었다.
아내는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지만 나는 비겁하게 카카오 T 벤티까지 호출해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 처음으로 의자를 젖히고 쉬고 싶었지만, 나와 아내의 친구들과 지인들, 그리고 아내의 회사 사람들과 연락하면서 이동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예전부터 이름만 알고 결혼식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던 아내의 회사 동료인 M과 통화를 하게 됐다. 어제 아내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회사 쪽에도 소식을 알려야 했기에 M에게 회사에 아내의 상황을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내의 상황을 궁금해하고 있었을 M은 오히려 차분하게 나를 위로해 줬고, 나는 꼭 아내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허튼 약속을 시전 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했는데 그 말이 그토록 위로되는 말이라는 것을 금세 차오르는 눈물과 함께 새삼 깨닫게 됐다.
낮에 내게 정신없는 연락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을 공유하는 것도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결국 여기저기에 연락하다 보니 택시에서 전혀 쉬지 못했다. 아내를 병원에 놔두고 집에 혼자 가는 내게 그들이 해줄 수 있는 말은 힘내라는 말밖에 없었다. 역시나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 힘은 안 나고 눈물만 하염없이 났다. 집에 가는 택시를 타고 있던 시간의 절반 정도는 기사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흐르는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으면서 보냈다.
병원만 믿고 아내를 중환자실에 놔두고 오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하루 종일 내가 열심히 해봤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내가 아침 일찍부터 나오지 않았더라도 결과에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나 자신이 한 줌 먼지보다도 못한 것 같아 비참하기까지 했다.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 말로는 분명히 회복은 된다고 했으니 믿어야겠지만, 과연 원래 모습의 아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며칠 전에 봤던 아내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망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