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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Aug 27. 2024

3-7. 무의미

이제부터 또 다른 괴로움이 시작됐다. 양가 부모님과 딸 앞에서는 그 어떤 티도 낼 수 없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미 충분히 괴로울 아내의 부모님도, 그를 지켜보는 나의 부모님도 괴로움이 가중될 것 같았다. 적어도 나는 괴롭더라도 침착한 척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들도, 이제는 나만 남은 딸도 엄청나게 혼란스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양가 부모님을 앉혀놓고 간략하지만, 빠지는 내용 없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브리핑해 줬다. 모두가 아내의 상태와 병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고, 나도 아는 데까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이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 분 모두에게 몇 가지만 부탁드렸다. 절대로 안타까워하면 안 된다. ‘아이고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테니 우리부터 힘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병마와 열심히 싸우고 있을 환자도 회복에 전념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잘될 거라고 믿어야 한다. 사위이자 아들인 내가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드릴 테니 좀 도와달라.


브리핑과 당부의 말씀을 끝내고 나니 아내의 상태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던 아빠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아는 데까지 다시 한번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상한 것은 내가 브리핑하는 동안에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모님께 ‘자, 가자’라는 말만 반복하신 장인어른이다. 사위에게 명령을 듣고 있었던 것이 불편했던 건지, 아니면 사돈네가 와 있어서 얼른 자리를 비켜주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속상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결국 얼른 귀가하고 싶어 했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와 아빠도 잠깐 머물렀으나 수고했다는 말 외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15분 정도 더 머물다가 얼른 딸을 재우라는 말과 함께 부모님 역시 귀가했다.


양가 부모님께 브리핑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동안, 딸은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서 말없이 내게 장난쳤다. 24시간 넘게 못 봤던 아빠가 반가웠겠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서 상황을 살피고 염탐하러 나온 것 같았다. 딸에게는 아직 어떻게 얘기할지 결정하지 못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딸에게도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브리핑한 셈이 됐다. 딸의 불안감도 분명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그저께 밤에 구급차를 타고 나갔던 엄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했고, 아빠도 어제 이른 저녁부터 만나지 못했다.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딸은 두 할머니와 함께 샤워하고 있었는데, 딸에게 아빠가 왔다고 인사를 나누고 나서 얼마 후에 할머니들과 티격태격하더니 이내 울음보가 터졌다. 아마도 불안감에 괜히 트집을 잡고 싶었던 모양이다.


부모님들을 집에 보내고 딸과 단둘이 앉았다. 평소 잠들시각이 한참 지났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딸은 혼자서 독서하는 것과 더불어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며칠간 읽어주지 못한 책을 몇 권 읽어주겠다고 하며 딸의 방에 있는 보라색 빈백에 함께 자리했다. 딸이 내 옆에 앉아 책을 펴서 혼자 보는 동안, 나는 딸의 정수리를 가만히 쳐다봤다. 나는 제일 친한 친구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왔지만, 딸은 세상의 전부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딸은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의 상황과 며칠간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전달해 줘야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아내와 나는 딸을 키우는 양육 방식에서 많은 부분에 대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툼이 아예 없진 않지만, 그래도 비교적 큰 의견 차이 없이 딸을 키워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이가 어리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적당히 둘러대기보다는 가족원의 하나로 인정하고 최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설명에 치중하다 보면 나보다도 특히 아내가 딸에게 설명해 주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하지만 딸은 나와 아내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면 금세 수긍한다. 어떤 경우에는 딸의 입장에서 강압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상황들이 있어 너무 어른 대하듯 접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안쓰러움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딸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이해를 바라는 일들에 딸이 협조해 준 덕에 고마움을 느낀 경험을 많이 했다. 딸은 아내와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인정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주말 아침엔 우리가 항상 TV 보는 것을 항상 허용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가능 여부를 물어보고 리모컨의 넷플릭스 버튼을 누른다. 우리가 설명을 열심히 해주는 덕도 있겠지만 딸의 이런 타고난 성향이나 성격도 분명히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아내와 내가 언제나 그랬듯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딸이 한동안 엄마를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사탕이나 장난감을 살 수 없다는 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거짓말을 하더라도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 거짓말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만나지 못했던 아빠가 책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딸에게 잠시 책을 덮어보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우리 몸의 신경 분포도를 찾아서 딸에게 보여줬고, 내가 어제오늘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들을 토대로 설명하기로 했다. 나도 의학적 지식이 매우 짧지만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의 면역 체계가 엄마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공격하다가 어떤 문제가 생겨서 엄마의 몸도 공격하고 있고, 결국 엄마의 신경계도 공격을 받고 있어. 그런데 우리 몸의 신경은 뇌에서 내린 명령을 몸 전체에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여주고 있었던 신경 분포도에서 신경들이 집중되어 있는 머리 쪽을 가리키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그림에 있는 지도 대로 전달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엄마 뇌가 공격받다 보니까 이 신경들도 제대로 일을 못 하는 상황이라서 엄마가 지금 조금 아프고 힘들어.”


딸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간단한 질문들을 했다. 다행히 딸은 지금의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고, 질문들은 대부분 현상 파악을 위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더 다행인 것은 내가 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은 하지 않았다. 딸이 행여 물을까 봐 걱정됐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럼, 엄마는 집에 언제 오는 거야? 엄마는 완전히 나을 수 있는 거야?”


딸이 물어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질문들이었는데, 다행히 묻지 않았다.


“오늘 아빠랑 책 조금만 읽다가 자고, 내일은 가능하면 엄마가 있는 병원에 가보자.”

“그럼, 내일 가서 엄마 볼 수 있는 거야?”

“아니. 엄마가 조금 많이 아파서 아무도 못 들어가는 곳에 있어. 얼른 나으려고 들어간 거니까 우리가 그 앞에 가서 엄마 응원해 주고 오자.”


딸은 나의 제안을 듣고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차라리 투정이라도 부리고 울었다면 시원하게 안아주고 위로해 줬을 텐데, 의외로 덤덤해서 괜스레 나까지 숙연해졌다. 지금까지도 보라색 빈백을 배경으로 한 딸아이의 정수리는 스냅샷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과연 이 정수리 아래 딸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오가고 있는 걸까. 엄마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거라는 잔인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딸은 2층 침대의 위층에서 잠을 잔다.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했던 수면 교육과 분리 수면딸이 잘 받아들여 준 덕분에 우리와 다른 방에서 잔다. 매일 집에서는 부모와 따로 잠을 자는 터라, 딸은 호캉스를 그만큼 좋아한다. 그 이유가 엄마 아빠랑 같이 한 침대에서 잘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직접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의 수면만큼이나 부모의 수면도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분리 수면을 선택했다. 이 부분이 딸의 독립심에 도움이 됐을까.


평소에 딸이 잠들기 전에 나는 2층 침대의 위층에 딸과 나란히 누워서 책 한두 권을 읽어주고 하루의 끝을 선언한다. 이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주고 싶었기에 평소의 취침 시간을 훌쩍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읽어 줬으면 하는 책들을 골라 오라고 했다. 딸이 책을 고르는 동안 나는 2층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침대의 가로길이가 내 키보다 현저히 짧기 때문에 나는 거의 구겨져서 책을 읽어준다. 목을 침대 난간에 기댄 채로 책을 읽다 보면 뒤통수가 배겨서 푹신한 쿠션을 대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은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어서 딱딱한 난간에 뒤통수를 대고 멍하니 있었다. 책 선정을 완료하면서 침대 위로 올라오던 딸이 내 모습을 보고는 대뜸 말했다.


“아빠! 쿠션 줄까?”

“어? 그래. 고마워. 그럼, 거기 산타 인형 좀 줘.”


지난 크리스마스 때, 딸은 선물로 두툼한 산타 인형을 하나 받았는데, 그 인형이 성인 베개 크기랑 유사해서 뒤통수에 대고 있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산타 인형을 건네주면서 딸이 한 마디 더 건넸다.


“아빠 밤에 쓸쓸하지 않겠어? 산타 인형 빌려줄까?”


코끝이 찡하고 눈물샘이 시큰했다. 지금 본인의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만 6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오히려 아빠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우리 딸이 이렇게나 빨리 크고 속이 깊은지 감탄하며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엄마가 없어진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아빠가 눈물 흘리는 걸 보면 불안해할까 봐 딸에게만큼은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메말라 버린 입속의 침을 총동원해서 눈물을 함께 식도로 넘겼다. 흐뭇한 마음만 드러내며 힘겹게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야. 아빠는 괜찮아. 인형 친구들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못 자는 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아빠가 산타랑 같이 자.”

“아빠 진짜 괜찮아.”


금방 수긍한 것 같았던 딸에게 책 두 권을 후다닥 읽어줬다. 오늘 너무나도 긴 하루를 보냈기에 얼른 딸을 재우고 쉬고 싶었다. 딸에게 이제 잘 준비를 하자며 잠시 안방 화장실로 갔다. 오늘만큼은 딸이 내 말대로 얼른 잠자리에 들었으면 했었는데, 내가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침대 밖으로 나와서 사부작거리는 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얼른 침대에 가서 누우라고 했겠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딸을 침대에 눕히고 나는 1층에 누워서 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딸이 평소 잠드는 시각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기에 딸은 금방 잠이 들었다. 딸이 잠든 것을 확인한 나는 터덜터덜 거실로 나왔다. 평소 같으면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봤겠지만,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거덜 난 탓에 곧장 침대로 가서 천장을 보며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딸이 내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 사부작거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등에 낯선 물체가 느껴져서 얼른 몸을 일으켜 봤더니 아내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에 딸이 빌려주겠다고 했던 산타 인형이 행복한 눈을 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에 엄마랑 같이 자던 아빠가 오늘 밤에 혼자 자야 한다고 하니 쓸쓸할 것 같아 안타까웠던 딸이 산타 인형을 갖다 놓았던 것이다. 애가 어른보다 낫다.



긴박했던 하루 중에 딸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내 아내이기도 하지만 우리 딸의 엄마고 장모님의 딸이고 엄마의 며느리였다. 똑같이 한 사람이지만 모두에게 다른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고, 내가 독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내의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낄 사람은 분명히 딸이었다. 평생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이 한순간에 예고도 없이 사라졌고 연락도 할 수 없다. 방금 그런 엄마를 못 만날 거라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먼저 걱정해 줬다고 생각하니 가슴 시린 감동과 뜨겁고도 무거운 책임감이 함께 몰려들었다. 욕심인 걸 알면서도 딸이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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