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존과 번성에 필요한 본능을 타고나지만, 유년기의 인식은 이를 충분히 활용할 만큼 성숙하지 않다. 그래서 초기에는 성인의 돌봄에 의존하여 인지적, 경험적, 감각적 제약을 해소하고, 청년기부터 이전 세대의 집단지성이 마련한 교육을 받으며 문명의 일원이 된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돌봄과 교육은 한정된 뇌 발달 시기와 맞물려 개인의 인식을 급속히 발달시킨다. 이 시기에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경험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가 개인적 인식의 한계를 점진적으로 확장한다. 다만, 누구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인식을 개선하려고 애쓰지만, 개인이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영역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전체 범주에 비하면 매우 작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국가와 문화, 지역,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고, 아무리 치열하게 노력해도 제한된 시간 속에서 개척할 수 있는 길은 한정적이다.
그렇지만 같은 환경에서도 경험하는 방식과 그 깊이에 따라 개인의 성장 방향은 달라질 수 있기에,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 자기 의지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독특한 개성을 형성할 수 있다. 이렇게 뚜렷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각자의 인식을 다듬어가고, 다시 타인과 소통한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인식들이 모이면 하나의 강력한 집단적 목소리가 되어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집단이 경쟁하여 자리를 확립하려는 본능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인식이 곧잘 희생되기 쉽고, 그런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기 인식을 개선하다 보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타인의 인식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자아를 잃어갈 수도 있고, 오히려 자기 인식을 개선할수록 그 인식에 과몰입하게 되어 삶의 유연성을 잃기도 한다. 또는 타인과의 인식 차이를 깨닫게 되면서 고립감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내면의 불안과 외부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인식을 개선하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본능이 발현되는 순간을 인지하고 잠시 멈춰서야 한다. 본능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어렵지만, 지금까지 축적한 고유한 인식을 무엇에도 미혹되지 않는 가치관으로 탈바꿈하려면, 그 본능을 의식하고 통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입견과 편견을 경계하고, 과도한 소비와 과시를 줄이고, 우월감과 경멸을 조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갖춘다면, 본능을 따르든 억제하든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인 시선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인식의 범위가 있는데, 나는 그 범위가 상당히 좁은 편이다. 사회에서 살아가면서도 연인을 제외하면 사람과 소통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동물과 함께 지낸 적도 없고, 아이를 키운 경험도 없고, 드라마나 책도 보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하다고 반드시 인식이 편협한 것은 아니지만, 내 시야가 좁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본능적이지만,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오히려 욕구에서 한 발 물러났을 때의 인식을 추구한다. 그 결과, 사회적 매력을 잃고 보편성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내 시야의 좁은 영역을 깊이 탐구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비록 이 과정이 사회적 시선에서 보면 금세 사라질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겠지만, 나는 내가 마음을 주지 않은 것들에 휘둘리고 싶지 않기에, 세상과 멀어진 이 단조로운 삶에서 만족을 찾으려 한다. 모래성이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그만이다.
2024년 0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