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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May 28. 2024

어느 아침의 행복

글쓰기 모임 무사 오픈 기원 글 #10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후회했다. 기상 난이도가 무척 높았기 때문이다. 우선 뭔가 싸르르하는데, 몸에서 그런 건지 머릿속에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눈을 떴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이 퉁퉁 부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 보니 근육이 파업한 것 같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듯한 고통을 견디며 이불을 꽉 붙잡고 웅크렸다. 조금 있으니 좀 살만해졌다. 오늘도 또 기회를 줄 테니까 똑바로 처신하라는 듯했다.


“아이씨! 남궁민 씨이…” 몸이 괜찮아지니 괜히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졌다. 오늘의 죄인은 남궁민이다. 남궁민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문제였다. 하품을 해가며 3시간짜리 드라마 요약본을 다 본 것이 그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내 시간과 상쾌한 아침을 앗아간 남궁민에게 살짝쿵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뇌를 비우고 있어도 내 몸의 근육들이 알아서 아침 루틴을 했다. 씻고, 먹고, 정리했다. 아이를 깨워 등원전쟁을 치렀다. 유치원에 무사히 들여보냈다. 한숨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심히 시선을 돌리다가 하늘을 보았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우와!” 아침 햇빛과 투명한 공기는 보이는 모든 것의 채도를 더 높게 만들었다. 거기에 잎사귀가 뒤집어 질만큼 기운찬 바람이라니. 하늘은 부담스러운 하늘색이었고, 장미는 시든 것마저 생기가 돌아 보이는 붉은색이었다. 햇살이 쿡쿡 쑤시듯 따가운 것 마저 어울리는 완벽했다.


“이런 날씨에 이 감정은 아니지.” 카페로 나와서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 감정을 다 털어버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받아서 자리에 앉는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미 털어버릴 감정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선점한 유튜버 할아버지의 소음, 지난주부터 계속 튀어대는 카페의 배경음악, 그 소리들이 시끄러웠는지 함께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그 소리들을 차단하려고 꼈는데 한쪽이 싱크가 안 되는 이어폰. 이 모든 것이 그리 짜증 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다.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볼 때 내 심장도 같이 뛰는 것 같다. 설렘까지는 아니지만, 신남이었다. 어젯밤의 죄악을 용서받고, 아침을 선물 받은 사람의 기쁨일까? 그저 글을 쓴다는 것이 좋아진 걸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길 참 잘했다. 이 혼란이 달콤한 편이었기 때문에. 얼음처럼 녹아 다 사라지기 전에 이 행복을 충분히 누려야겠다. 오늘은 글을 몇 개 더 써봐야겠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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