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냥 좀 알려주면 안 되나요?

질문이 불편했던 나, 질문으로 자라난 나

by 온이 E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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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의 하루는 언제나 정신이 없다. 물건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그만큼 나간다. 고객과의 대화, 동료와의 협업, 그 사이사이 숨은 결정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결정’이란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리테일이라는 새로운 환경, 그리고 판매라는 낯선 업무는 매 순간이 질문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스킬적으로 익혀야 하는 부분들은 최대한 빠르게 배워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고객 응대에서는 자주 막혔다.


교환이 안 되는 제품을 가져온 고객.
환불 기간이 지난 뒤, 환불을 요청하는 고객.
많이 샀으니 액세서리 하나쯤은 서비스로 달라는 고객.

규정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늘 헷갈렸다. 그래서 그때마다 매니저에게 묻곤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기대한 건 명확한 대답이었다.
“그건 안 돼요.”
“이번엔 해드려도 돼요.”
“절대 안 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전혀 예상 밖의 대화였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내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걸까. 그냥 답이 궁금한데, 자꾸 나에게 다시 되묻는 이 방식이 불편했다. 이런 방식이라면 도대체 언제 배우라는 걸까.


그래서 솔직히 말한 적도 있다.
“그냥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주,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코칭’이었다는 걸.

내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그 선택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스스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교환을 해주는 것도, 환불을 받는 것도, 때론 규정에 어긋나더라도 고객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예외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예외는 내가 결정한 것이고, 그 결정은 나의 책임이 된다. 한 번의 예외가 다른 고객과의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생각의 흐름을, 그 질문 하나로 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만을 위한 훈련이 아니었다. 신입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인텐션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책임지는 방식. 리더는 단지 그 사람을 믿고, 적절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게 도와주는 존재였다.


이곳의 문화는 처음엔 느리게 느껴졌다. 뭔가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고, 늘 한 템포 늦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좋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OO님의 인텐션은 무엇인가요?”

이 말들이 어느새 내가 하루 중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질문하는 리더로 자라고 있었다.


돌아보면, 누군가가 나를 믿고 기다려준 그 시간들이 나를 리더로 자라게 했던 것 같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내 안의 답을 꺼내도록 도와준 그 질문들이, 결국 나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고, 더 단단한 선택을 하게 해주었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그 질문 속에는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는 말이 담겨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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