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INNER SPARK 07화

끌어당긴 것이 나에게 오고 있다는 신호 5가지

by INNER SPARK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 아주 행복한 감정으로 일어나셨나요?"


이렇게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다. 그 이유가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태어나면서 인생목표가 뇌에 프로그래밍되어 태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갈팡질팡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몇몇 부러운 사람들은 인생목표가 뇌에 프로그래밍된 상태로 태어나 자동습관으로 자신의 인생을 잘 이끌어 간다.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의 생애를 보면 그렇다. 참 부럽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뇌에 훌륭한 내비게이션을 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서 위대한 결과를 만든다는 말인가?


다행히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뇌에 인생 목표가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은 채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그것을 형성할 수 있는 말들을 듣고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이렇게 잠재의식의 힘, 끌어당김의 법칙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착실하게 살고 있다.


나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시각화한다. 그리고 믿음과 확신으로 이미 원하는 모습이 된 것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잠자리에 든다. 이를 매일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끌어당김을 실천하는 많은 분들이 당면하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문제가 있다.


“아니, 매일 헌신하는 건 좋은데, 도대체 내가 열심히 끌어당긴 것은 언제 오는 거야?”


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준다, 안 준다 무슨 신호라도 주면 좋은데, 그런 것도 없네...”라면서 매일 목을 빼고 소망한 것이 오는 것을 기다린다. 솔직히 이런 생각들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큰 바위에 눌린 듯이 아주 갑갑한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우리 속을 모르는 네빌고다드 님은 그의 책에서 '소망의 씨앗을 뿌렸으면 그것이 제대로 싹을 틔우는지 들춰보는 행위를 하지 말라'라고 한다. 그것은 의심의 행위로써 믿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바쁘게 목표달성을 위해 헌신하더라도 문득 ‘언제 오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설정한 목표를 이루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면 중간에 어떤 신호라도 직감을 한다면 아마도 더 좋은 느낌으로 목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소망한 것이 물질화되어 나에게 오고 있다는 신호 내지 느낌이 있다.


생활에서 나타난 상황들에 따라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미신 같은 것은 아니니 이런 신호나 느낌이 든다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소망이 달성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조금 더 상쾌하고, 시간 자체도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몇몇 신호를 느낀다면, 실제로 목표달성이 바로 눈앞에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고양된 느낌과 감정으로 소망을 더 큰 힘으로 끌어당길 수 있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이 잘 되다가 갑자기 크게 좌절하는 일이 생긴다.


이미 목표가 달성된 기분으로 매일을 헌신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가족이나 사업에 크게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나는 분명히 시각화를 제대로 했는데, 목표달성이 단축되기는커녕 좌절스러운 일이 생기니 정말 난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끌어당김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걸까?’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럼 그렇지, 나한테 이런 게 효과가 있을 리가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에 부정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쁜 일이 생길 때에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우주가 또 나의 그릇의 크기를 시험하는구나”라고 말이다. 우주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는지를 시험한다. 우주는 우리가 그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수용체가 된다’이다. 수용체라는 것은 내가 일단 소망을 우주에 던졌다면, 어떠한 것이 오더라도 이를 받아들인다는 자세다. 내 자신이 우주로부터 오는 현실화물질을 통과시키는 채널이 되는 것이다. 나는 통과체가 되어야 하지, 그것을 걸러서 통과시킬 수는 없다.


우주로부터 오는 것을 자꾸 밀어내게 되는 것은 모순이다. 내가 끌어당긴 것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내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내 그릇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통째로 받는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인생은 지나 보면, 나쁜 일이라고 생각됐던 것이 나중에 아주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는 아주 좋은 일이 왔다고 생각됐는데, 아주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은 ‘나는 항상 원하는 것을 받는다. 나는 무엇이든 받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갑자기 잘되던 일에서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큰 성공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된다.




둘째,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거나, 잃어버렸던 물건을 발견하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의뢰인이 있었다. 4년 전에 형사변론을 했는데, 결과가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난 정말 의뢰인 편에 서서 열심히 변론했다. 그 의뢰인이 갑자기 연락을 해와서 식사하자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새로운 법률문제가 생겨서 그러는 걸로 추측하고 식사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의 회장님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그분은 몇 년 전에 내가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변론을 해준 것에 대해서 잊지 않고 있었다면서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서로 반가워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분은 내가 그동안 스타트업도 키워오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놀라워했다. 변호사가, 그것도 검사출신 변호사가 스타트업을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스타트업을 키워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해주면서 명함을 하나 주었다.


내가 하는 사업과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인데, 한참 크게 성장한 회사라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 명함 속 사장님에게 연락해서 나를 소개하고 꼭 도움을 드리라고 당부했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실제로 그 명함 속 사장님과 아주 친하게 되어 큰 도움을 받아 스타트업이 한 단계 성장하게 됐다.


이렇게 잊혔던 사람으로부터 오는 연락은 뜻밖의 좋은 징조다. 우주가 보내오는 어떤 메시지라고 보면 된다. 나는 오랜 인연으로부터 휴대폰이 울리고 그 이름이 뜨면 웃음이 나온다. ‘또 내 소원을 끌어당겨줄 그 무언가가 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책상을 정리한다거나 구석에 놓아둔 가방 안에서 오랜 된 무언가를 발견할 때, 역시 ‘나를 어디론가 인도하는 메시지가 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 전의 인연을 만나거나, 오래전 잊힌 물건을 발견한다는 것은,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이 된다는 의미다. 과거의 에너지가 현재의 나의 에너지와 결합되어 전혀 새로운 것이 된다는 의미다. 해석을 이렇게 하게 되면, 나는 새로운 것을 끌어당기게 된다. 내가 소망한 것으로 가는 길에서 속도를 높여주는 무언가를 만나게 된다.




셋째, 문득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출근하다가 문득 ‘나, 이거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신적 있죠? 논리 없이 뜬금없이 다가오는 그런 생각 말이다. 느닷없는 느낌이지만, 가슴이 떨려오는 설렘도 있는 그런 느낌.


이 역시 우주가 갑자기 우리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다. 내가 잠재의식에 심어둔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목표달성에 필요한 것인데, 장시간 그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을 때 잠재의식은 그것을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알려준다.


그런 느낌이 들었을 때는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직감이 작동할 타이밍이다.


몇 년 전 나는 법무법인의 성장이 더딘 상황에서 답답하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출근하는데 갑자기 머리에서 ‘0000을 해봐’라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어떤 '느낌'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고, 마케팅 관련해서 결단이 필요한 분야였다.


그 방법은 이미 예전에 법무법인 전체적으로 회의를 거쳐 실행하지 않기로 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 아침의 갑작스러운 영적 메시지를 접하고, 용기를 내어 그 방법을 시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물론 마케팅 책임자와 몇몇 파트너들의 반대가 있었다. 나는 나의 결심을 물리지 않았고, 그대로 시행하도록 밀어붙였다.


나는 지금 확신한다. 그 당시 내가 그런 변화의 결단을 주지 않았으면, 우리 법무법인은 말라비틀어져 망해가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무기력하게 대표실에 앉아 있었고, 삶에 아무런 가슴 설렘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던져진 갑작스러운 그 메시지는 내가 목표한 것에 큰 걸음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해 줬다.


이와 같이 잠재의식을 통해 던져지는 느낌과 감정의 메시지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는 어쩌면 잠재의식에서 보내는 수많은 성공메시지를 그냥 흘려보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메시지가 무엇이든, 느낌과 감정의 메시지를 받았다면 긍정적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무언가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긴다.


갑작스럽게 투자를 한 곳에서 큰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거나,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 역시 우주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때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뇌와 몸은 에너지를 담는 공간이다. 어떤 때는 에너지가 넘쳐흐르기도 한다. 그럴 때 무언가 손해를 본다는 것은 그 에너지를 놓는다는 의미가 된다. 에너지를 놓아 보내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내가 손에 힘을 주어 꽉 쥐고 있다는 것은 에너지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이다.


운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있다. 집안에서 그릇이 깨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풀이한다. 어떤 책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일부러라도 그릇을 깨라고 권하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불평을 한다거나 불길한 징조로 느끼면 안 된다. 그것은 부정적인 진동주파수를 일으키고 우리에게 오고 있던 새로운 것을 가로막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그런 걸 느꼈다. 검사하다 개업한 지 1년이 채 안되었을 무렵이었다. 한 겨울에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사러 갔다 오는 도중이었다. 도로에 눈이 녹지 않아 많이 미끄러웠다.


내가 좌회전하여 언덕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저 멀리에서 차 한 대가 미끌거리면서 내 차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빙판길에 그냥 통제불능으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몇 초 후에 ‘쾅’하는 소리와 함께 앞범퍼끼리 부딪쳤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새해 벽두부터 비교적 새 차를 받쳤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범퍼만 크게 부서졌다. 나는 사고를 낸 아주머니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 그냥 보험회사에 처리를 맡겼다.


그 사고 때문인지, 그 해에 내 변호사 사무실에 사람들이 넘치기 시작했다. 매일 회의실 3곳에 모두 내 손님들로 가득했다. 나는 사건 계약하랴, 검찰청과 법원에 다니랴 정말 바빴다. 다른 변호사들이 놀랄 정도였다. 물론 나도 달라진 상황에 무척 놀랐다.


나는 확신한다. 그 해의 대박은 그 사고 덕분이라고.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는 이유를 그때 깨달았다. 좋게 해석하면 좋은 기운이 끌어당겨진다.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물리적으로 나를 떠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적으로는 여전히 어딘가에 그것이 남아있다는 의미다. 그 에너지가 새로운 것으로 전환되어 다시 돌아온다고 믿으면, 정말 나의 삶에 새로운 것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게 된다.


어떤 때는 감당 못할 만큼 크게 밀려들어올 수 있다. 풍요로움의 특징이 그렇다. 한 번 오기시작하면 물밀 듯이 온다.




다섯째, 누군가로부터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는다.


우주 또는 잠재의식은 목표를 끌어당기는 사람에게 결과를 주는 방법이 아주 재량적이다. 재량적이라는 말은 예측 불가라는 말이다. 그리고 목표한 결과를 주는 시간 역시 재량적이다. 적정한 방법과 적정한 때에 주어진다.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는다는 것은 방법적 재량에 관한 것이다. 우주는 물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을 줄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해 준다. 마치 주문한 물건을 항공기와 자동차, 사람을 통해서 보내듯 말이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좀 쉬고 싶은데, 친구가 갑자기 전화해서 모임장소로 부른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옷을 차려입고 그 자리로 나간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사업에 크게 도움을 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


미혼인 여성이 퇴근해서 집에서 밥을 먹고 싶은데, 엄마가 그냥 밖에서 밥을 먹고 오라고 한다. 우리 엄마는 평생 한 번도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갑작스럽다. 그래서 친구를 불러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 그 장소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다.


되돌아보면, 나의 삶도 항상 이런 방식으로 흘러온 것 같다. 우주나 잠재의식은 직접 전달해 주는 것을 좀 쑥스러워하는 것 같다. 항상 누군가를 통해서 그 결과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런 갑작스러운 제안이나 상황이 발생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예스’라고 해야 한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인간자석’으로 부르고 싶다.


그렇게 수용적인 사람에게 운이 따르고, 자신이 시각화한 것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내가 ‘돈 1억이 필요해!’라고 우주에 말하거나 잠재의식에 심었다고 할 때, 내 앞에 갑자기 1억 현금이 생기게 하는 것은 우주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주 또는 잠재의식은 목표를 이루는 것을 어떤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상황을 끌어당겨 준다. 그 과정은 예측불가의 과정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끌어당긴 것이 오고 있다는 신호로 5가지 정도를 예시 들어봤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10가지도 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느낌이나 감정이 오는 상황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감응하는 정도도 다르다.


다만, 우리는 가능태의 장에서 살아가고 있고, 우리가 지금 선택하는 것에 따라 인생행로가 바뀐다. 누구는 다중우주 속에서 순간의 우리 선택에 따라 실제 사는 우주가 달라진다고도 한다. 느낌과 감정을 강조하는 이유가 그래서인 것 같다.




매일매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지고 그에 따라 인생이 갈리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에 따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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