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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Sep 22. 2024

작은 도시의 사랑법

내가 작은 도시 도서관의 사소한 일상을 적는 이유

한때 대도시의 불빛을 사랑했다. 퇴근길, 바라보는 한강 위의 불빛들을 사랑했다. 압구정역에서 옥수역으로 이어지는 동호 철교 위를 지날 때면 연탄 수만 장이 펼쳐진 검은 한강 위에 불이 붙는 순간을 사랑했다. 그것은 도시의 불빛이었으며 동시에 뜨거웠던 나의 하루였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매일 지났다. 불빛의 고도가 낮아지다 서서히 사라지면 내가 사는 도시의 역에 도착했다. 낮에는 주변이 온통 파밭이었으나 밤에는 맵싸한 냄새만이 그곳의 좌표를 확인시켜 줬다. 시골의 산모기는 대도시의 모기보다 힘이 셌다. 가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 맨 종아리의 모기 자국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붉은 직인 같았다.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간판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지만, 내가 사는 곳은 걸어서 30분 이상을 가야 겨우 20년도 더 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간판이 보였다.


한때 나는  작은 도시에 갇혀사는 것이 답답했다. 기왕이면 오랫동안 대도시의 반쪽 사람이라도 되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권고사직을 받았다. 47살이었다. 억울하지는 않았다. 내가 사직을 표할 때마다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회사였다.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회사는 나에게 4시 퇴근을 허락했다.  41살, 몹시 아팠던 시절에도 회사는 주 2회 출근에 재택근무를 허락했다. 직원이 200여 명 정도 되는 회사였으니, 임원진들의 배려는 어쩌면 특혜에 가까웠다. 나름 내가 회사를 사랑하는 방식도 있었으니 나의 아픈 개인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둘째를 낳고 노트북을 들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어쨌거나 나의 해방 출구와도 같았던 대도시의 일자리를 나는 잃었다. 전문직도 아닌, 사십 대 후반의 년 아줌마가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들한 연륜보다 빳빳한 열정을 원하는 사회이니 당연했다. 나 역시 대도시로 매일매일 출퇴근 할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대도시도 나를 버렸고, 나도 대도시가 간절하지 않았으니 등가교환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작은 도시라고 일자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을 시도하다 비록 작은 봉급의 일자리이긴 하나 공공기관 도서관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하는 일은 데스크에 앉아 도서를 대출 반납받는 일. 매일 수십 권의 책을 서가에 꽂는 일. 아픈 책을 수선하는 일. 미반납자를 독촉하는 일. 그리고 도서관 내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민원을 받는 일이었다. 어쩌면 사소한 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그냥 규정대로 받아들이는 일들이었다. 


이미 중년이 된 나는 그 일들을 받아들였다. 일자리의 안정감과 타협점을 찾으며 세 번째 도서관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완전한 작은 도시의 사람이 되었다.


작은 도시의 출퇴근 길은 단조로웠다. 배과수원을 지나고 샌드위치 판넬 창고들을 지나고 편의점을 지나고 주유소들을 서너 개 지나면 옛 지명이 붙여진 사거리가 나왔다. 다시 H빔 뼈대들만 세워진 공사장을 지나고, 장례식장을 지나고 유소년 축구장을 지나면 도서관에 도착한다. 출근을 하면 책이 먼저 나를 반긴다. 책들의 내음으로 가득 찬 도서관. 창문을 열면 흙냄새, 풀냄새가 책냄새를 밀고 들어온다. 아침에 만나는 책의 정렬들은 교정을 막 끝낸 둘째 딸의 치아처럼 가지런했다. 신착도서들이 주는 매끈한 환희와 오래된 도서들에게 느껴지는 클래식한 품격이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서도 존재했다.


책에만 쏠렸던 나의 관심이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까지 번져갔다. 능소화꽃 덩굴처럼 아름다웠다. 유모차를 끌고 책을 빌리러 오는  어르신들, 방과 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만화책을 읽으러 오는 초등학생들,  알 수 없는 수험서를 머리에 파묻고 힘겹게 공부하는 수험생들,  작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쩌면 이 작은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 이곳을 택한 사람들의 들숨날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요즘 이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모으고 있는 감정들과 글을 쓰면서 모아지고 있는 감정들이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사소하고도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이 작은 도시의 도서관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도시의 활활 타오르던 불빛들이 그립지 않은 지 제법 오래되었다. 내게는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지켜보는 것이, 창틀에 붙어있는 날벌레들을 물리치는 것이, 또 그것들을 기록하는 시간들이 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것이 나의 작은 도시를 사랑하는 사랑법이 되었다.




*이번 에세이의 제목은 박상영 소설이자 10월 1일 개봉하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제목만 살짝 비틀기하여 지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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