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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Nov 17. 2024

저, 오랜 문학상 받았어요

제 17회 오랜 문학상 수상 소감

퇴사 축하주를 마시던 자리였습니다.

조촐하게 둘이서, 냉동삼겹살에 소주 한 잔.

앞으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글지글 삶겹살처럼 익어가던 날이었습니다.

술이 두어 잔 들어갔을 때,  술 먹던 친구가 슬쩍 제안 하나를 합니다.

"부장님 그냥 브런치에 글이나 쓰세요."

"어떻게 써야 하는 건데? 그냥 쓰면 되는 거야?"

"작가 신청을 해서 통과되어야 하고, 아마 컨셉을 잘 잡아서 써야 할 거예요."

제가 귀 하나는 참 얇습니다. 바로 작가 신청을 했더랍니다.  그때는 작가신청 관문이 어렵지 않아서였을까요? 한 번에 작가 등록이 되더군요.


라이킷?

눈물이든, 콧물이든 한 방울 정도는 흘러나와야 그걸 누르는 줄만 알았습니다.

구독?

신문이나 잡지 구독만 알았으니, 돈을 내야 하는 건가? 함부로 구독하면 클라지 암암.... 그렇게 조심스러웠습니다.


브런치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당시는 완벽하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에세이 한편을 브런치 앞바다에 퐁당 던졌습니다. 고기는커녕 신발 한 짝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맘 잡고 글 쓰면 40대 이슬아 작가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오만방자했으니,  미지근한 반응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습니다.

바로 브런치 냉담자가 되었습니다


5년이 지났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도저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욕망이 심박수를 1.5배 빠르게 뛰게 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온 걸까요?


5년 전의 나는 시간도 있는데 한번 써볼까였다면

5년 후의 나는 시간은 없어도 꼭 쓰고 싶다였으니

내 안에서 풀 가동되는 생각 에너지의 차이는 3월과 8월의 전력소모량과도 같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올해 6월 브런치를 만나기 전 이야기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수상 소감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17회 오랜 문학상 받았습니다.

'마알간 영혼 이지수' 연재 중 '구운몽, 꿈이라도 좋았다'라는 글로요.

사실, 이 글은 연재 중 가장 쉽게 즐겁게 쓴 글이었습니다.

제가 꿈을 꾸고 싶은 장면들을 써 내려갔으니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게다가 남자친구로는 정해인까지도 등장시켰으니 말입니다.

꿈이니, 뭐, 내 남편이 정우성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답니까? (남편, 미안~)

어쨌거나, 그리 즐거웠던 글이 사람들을 울리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제가 비련의 여주인공 스타일은 절대 아니거든요.

나의 진심 한 톨이 남들에게 눈물 한 톨이 되었다면, 울려야지 도리가 없습니다.

진심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요.


오랜 문학상은 최근 '재생의 욕조'라는 책을 발간하신

오렌 작가님께서 선정하신 상입니다.

부상으로는 상콤 달달한 라얀 작가님이 제 글을 직접 낭독해 주십니다.

압니다. 저도 압니다. 이 상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압니다.

이 상은 오렌 작가님이 주시는 특급 칭찬 같은 것이라는 걸

너무도 개인적이어서 혹자는 이 상이 뭐지? 할 수 있다는 것도요.

그래도 좋습니다.

오래간만에 받는 이 특급 칭찬이 너무도 좋습니다.

하루 종일 별건 아니라고 밑밥을 깔면서 가족들에게 자랑도 했고요

수상 축하  댓글에 답글을 쓰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미슐랭 별보다 더 반짝이는 별과 트로피가 제 글에 박혔습니다.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제 글에 별을 박아주고 낭독해 주는 이 감동스러운 시간이

앞으로 제 생에 몇 번이나 찾아와 줄까요?


브런치는 사실 빠지면 빠질수록 긴장이 됩니다.

초보 작가든,  출간 작가든 동등한 기회를 주는 이 브런치 세상에는 진정한 실력자가 너무도 많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열정, 필력, 겸손함, 성실함, 지식, 상상력, 재능, 그 모든 것에 감탄합니다. 겸손해집니다.

50대의 이슬아는커녕, 열정의 고삐를 늦추는 순간 이슬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마저 들게 합니다.

그러나 브런치만큼 선한 댓글과 응원이 판을 치는 SNS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한번 써보렵니다.

유쾌한 슬픔, 우울한 재미, 유치한 고급스러움, 우쭐대는 겸손함 이런  글을 쓰고 싶은데,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구운몽처럼 꿈은 꿈이니까요.


수상 소감은 마무리 하겠습니다.

브런치 모든 작가님들 오늘 밤 좋은 꿈 꾸세요~




오렌 작가님의 글에 댓글로 달 수 있는 수상소감을 굳이 매거진을 발행하는 것은

오렌 작가님과 라얀 작가님에 대한 제 감사함의 표현입니다.

오늘은 정말 쑥쓰러우니, 라이킷만 받겠습니다.^^


28화 제 17 회 오랜문학상 수상자 발표
21화 구운몽, 꿈이라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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