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언저리의 나는, 제법 낭만적이었다. 별에 대한 나만의 은유와 상상을 사랑했다. 동화 속 '빨간 머리 앤' 같았다.
하늘에 별을 박던 목수가 살았다. 이름하여 별목수. 어느 날 목수가 가장 반짝이던 못 하나를 잃어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상심과 슬픔에 잠긴 목수는 더 이상 밤하늘에 못을 박지 않았다. 오래된 별들도 녹이 슬었는지, 별똥별이 되어 후두두룩 떨어졌다. 오늘은 별이 뜨지 않는 밤이다.
<20살 언저리의 상상노트>
이처럼 오글거리도록 낭만적인, 상상 노트에만 존재하던 이야기가 34살의 나에게 슬프고도 냉혹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별이 엄마로서 가장 무섭고 슬펐을 때는 언제였을까"
별을 잃어버렸던순간이었다.
별이가 6살, 어버이날 즈음이었다. 시어머니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큰일 났다. 지수가 없어졌다. 지 할아버지한테 간 줄 알았는데...... 없어졌어 빨리 와야겠다"
시어머니가 덜덜덜 떨고 있다. 현실이다. 아 어쩌다가....
나는 회사에서 뛰쳐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남편도 오고 있다고 전화가 왔다. 남편의 말로는 지수가 집 뒷동산을 혼자 넘어갔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 막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했다.
도대체 왜 뒷동산을 혼자 넘어간단 말이야... 잘 걷지도 못하는 애가....
강변북로가 막혔다. 아직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꽉 막힌 강변북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과 기도 밖에 없었다. 택시 아저씨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며, 위태로운 주행을 하셨다.
막 정체가 풀릴 무렵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지수 찾았다. 방금 재순이 아버지가 찾아서 업고 왔어"
감사합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두 신들에게 감사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다 기진맥진, 별이도 많이 놀랐는지 축 늘어져 자고 있었다. 별이를 함께 찾던 동네 어르신들도 너무 다행이라면서 시어머니가 많이 놀라셨다고 했다. 별이를 잃어버렸다고 채근하지 말라는 의미라는 걸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별이를 찾고 난 뒤에야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버이날 기념 꽃을 만들어왔다. 본인 딴에는 할아버지를 드리려고 뒷동산 너머 논으로 간 모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시어머니는 일을 마무리하고 뒤따라 갔지만 시아버지는 그곳에 없었다. 별이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별이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가 나섰다.
재순 아저씨가 별이를 발견한 곳은 우리 집 뒷 논, 맨 끝자락 우거진 풀더미 속이었다. 차마 거기까지 갔으리라고 상상도 못 할 그런 곳이었다. 아저씨가 논길을 지나가는 데 멀리서 아이 울음소리가 작게 들렸다고 했다. 그 울음의 끝자락에 별이가 있었다.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지수야, 가자, 할머니한테 가자"
아저씨는 별이를 둘러업고, 집으로 내려오셨다. 별이를 찾았던 시간은 오후 5시 30분쯤. 조금만 늦었어도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풀숲에서 우리 별이는 밤을 꼬박... 아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별이를 찾았지만, 나는 언제나 불안했다. 6살 별이는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고 소개했지만, 아주 많이 산만한 아이였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순간이었다. 가족 모두가 별이를 향한 CCTV가 되어야 했다. 별이를 다시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화장실에서도, 음식을 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이면 별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 때나 별이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남편과 친정 부모님이반대했다. 차라리 내가 일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사실, 내 마음도 그랬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모두가 별이를 더 밀착 경호하기로했다. 별이에게는 엄마 아빠 말고도 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4명의 큰 별이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아가씨가 된 별은 예전의 호기심을 많이 잃었다. 움직이는 것도 싫어한다. 유튜브 속 세상이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데, 오래된 인간극장을 즐겨 찾아본다. 어느 날은 아가씨 버스기사 편을 보고, 버스기사가 되고 싶은데 차가 무섭다고 했다. 어느 날은 소방관 편을 보고 소방관이 되고 싶은데 불이 무섭다고 했다. 여전히 엉뚱하지만 이제는 내가 부르지 않아도 내 주위를 빙빙 도는 나의 위성별이 되었다. 더 이상 별이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근심은 사라졌다. 그러나 더 냉혹한 근심이 나에게 생겼다.
별이가 우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별이가 있는 세상에 없는 순간이다.
길을 잃고 풀숲에서 울고 있었던 6살 별이도, 방구석에 혼자 울고 있을 어른 별이도 혼자 살아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지구에 오래 남는 법을 고민한다. 더 건강해져야 한다. 종합검진도 일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받는다. 매년, 건강검진 수치는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아슬아슬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남편은 매일 새벽에 운동을 한다. 나는 늘 남편의 혈압을 걱정한다. 남편은 나의 쓸데없는 걱정을 염려한다. 우리 부부의 연대는 별이로 인해 더 끈끈해졌다. 그래야 우리의 별이 오래 빛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Epilog
오십 언저리의 나는 어느새 '염색머리 앤'이 되어버렸다.하늘에 떠 있는 별에 대한 은유와 상상은, 지금 내 옆에 있는 별이를 키우느냐고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요즘은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며 스무 살 언저리 시절의 상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래전 슬픔의 잠에 빠져있던 별목수를 이제 그만 깨워야겠다. 상심은 그만 걷어차라고, 다시 일어나 별이 더 빛날 수 있게 더 단단한 못을 박으라고 천사의 잔소리를 흉내 내야겠다.여전히 나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