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엔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수많은 기억이 있었을 텐데 언젠가 술을 마시고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겨울의 초입이었고, 기분을 내겠다고 방어와 소주를 마시고 난 뒤였다. 아직 길이 덜 들었던 닥터 마틴의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당시엔 그리 친하지 않았던 광고 일을 하는 동생 앞에서 아슬아슬한 2루타를 친 아마추어 야구선수처럼 슬라이딩하듯 넘어졌다. 일어나 보니 맨홀 뚜껑이 어긋나서 돌부리처럼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술을 마셔서일까, 조금도 아프진 않았는데 넘어졌다는 사실에 너무나 웃음이 났다.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동생 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지난밤이, 광고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던 길이어서 그랬는지 그날의 일이 유난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을인가 싶었는데, 머지않아 눈이 내리는 계절이 현관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계절은 때때로 새벽 배송보다 빠르다.
뺨에 닿은 노을빛이 기울었다. 그늘진 곳을 걸을 땐 선선했고, 볕으로 나오면 기분 좋을 만큼 따스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동네를 걸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다녔던 거리의 풍경이 새삼스러웠다. 두리번거리며 거리의 모습을 조금씩 담았다. 오래전에 처음 카메라를 들었던 순간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여전히 눈길이 가는 것들은 스무 살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많은 기억과 마음들이 선명해진다. 상실되었던 순간들 마저도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