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긴 시간 잠을 잤다. 침대에 누운 시간이 밤 아홉 시 무렵이었고, 눈을 뜨니 오전 일곱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10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다. 최근엔 길게 자도 5시간 남짓이어서, 늘 부족한 잠을 틈틈이 쪼개어 자곤 했다. 잠들기 좋은 계절인 것이다.
겨울의 적정 수면 온도는 17-18도 정도라고 한다. 아마도 지금이 특별히 난방을 하지 않아도 딱 이 정도의 실내온도가 유지되는 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살짝 으스스한 기운에 침대를 빠져나와 푸른색 담요를 어깨에 둘렀다. 스피커를 켜고, 뜨거운 물을 올려 늘 마시던 차를 내렸다.
추운 겨울을 좋아한다. 차가움 안에 있는 따뜻함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뜨거운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고, 스토브 앞에 도란도란 둥글게 앉아 있는 온기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제 촬영 후에 데이터를 정리하다 소희의 플레이리스트 중에 캐롤이 흘러나왔다. 어? 하며 선곡을 바꾸려는 걸 그냥 듣자고 했다.
최신의 캐롤이 아닌 80~90년대 캐롤이 쭉 이어졌다. 특별한 일은 없지만 크리스마스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에겐 잠시나마 들뜨고 행복한 기분을 만들어 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후반 작업을 하며 음악을 들었다. 얼마간 마음이 따뜻해진 기분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소희를 스튜디오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평소보다 몽롱한 기분에 맥주를 한 캔 마시고는 바로 침실로 기어들어갔다.
아침이 되자 탁한 빛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는 완전히 맑아져 있었다. 거실의 암막 커튼을 열고 세탁기를 돌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조금은 이르지만,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