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Discord 11화

#11.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회사에서 굳이 사서 고생하지 않았던 이유

by 인사부조화

당신에게 누군가 찾아와 솔깃한 내기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제가 시키는 일에 도전하셔서 성공하면
1,000만 원을 드리고, 실패하면 200만 원입니다. 성공확률은 60%입니다.

만약 도전하지 않으면 600만 원을 받고
그냥 돌아가시면 됩니다.


이런 제안을 받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요? '도전한다'와 '도전하지 않는다' 두 가지 선택 모두 다 의견이 있겠지만, 아마 대체로 도전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쪽이 더 많을 것이라생각해요.


사실 이 질문은 '행동경제학'에 나오는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의 유명한 실험 중 하나인데요, 사람들이 불확실성과 risk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들이 기대되는 예상 수익/가치가 더 크더라도 불확실성이 있는 선택지보다는 기댓값이 더 작더라도 결과가 확실한 선택지를 선호한다는 것이에요. lotto 받을래 현금 받을래 했을때 확실한 현금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요.


위의 사례로 보면 도전하는 경우 예상되는 기대 수익은 총 680만 원 [1,000 x 60%(성공) + 200 x 40%(실패)]이고, 도전하지 않는 경우는 600만 원이 수익이죠? 분명 도전하는 쪽이 기대 수익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 정도 차이로 risk를 안고 도전하는 것은 뭔가 불안하고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럼 어느 정도 기대 수익이 되어야 사람들이 100% 확정된 수익을 포기하고 도전을 할까요? 이것도 딱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요, 전망 이론에서는 약 2배 이상을 얘기해요. 이 사례에서 도전하지 않는 경우가 600만 원이니까, 도전 시에는 최소 1,200만 원 이상 기대 수익이 나와야 도전한다는 뜻이죠. 만약 성공했을 때 보수가 1,000만 원이 아니라 2,000만 원 정도 올라간다면 이론적으로는 그제야 도전한다와 하지 않는다가 거의 5:5, 비슷한 비율로 나올 수 있겠죠.




사실 전 이 이론과 사례를 접하면서 회사에서는 왜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에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risk taking을 잘하지 않는지, 애써 무리하기보다는 현상유지하기를 선호하는지가떠올랐습니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작년에 했던 일이라도 올해보다 색다르게 변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없었던 불확실성 risk를 만드는 것이잖아요. 안 져도 될 책임을 굳이 더 져야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아마 대부분 회사들에서 이러한 혁신과 도전, 변화에 따르는 기대 수익이 그냥 일 크게 안 벌리고현상 유지만 했을 때의 기대 수익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그렇지 않은 회사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너무 일반화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지만, 많은 회사들에서, 그 대상자가 임원이든 팀장이든 실무자든,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그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연봉이나 성과급, 보너스와 같은 보상 수준이 정해지죠.


그러나 많은 한국의 회사들은 평가 차등을 하더라도 보상에는 그렇게 심한 gap을 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집단주의적인 보상 시스템이라고 할까요,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비슷하게 나눠가지는 그런 구조인 경우가 많죠. 특히, 회사가 안정적인 회사일 수록, 규모가 큰 대기업 같은 곳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평가 집단 내에서 절반정도에 해당하는 평균 고과평가를 받은 사람과 상위 10~20% 내외 최고 고과평가를 받은 사람사이에 성과급에 몇 % 나 차이가 날까요? 모르긴 몰라도 50% 이상 차이를 둔다는 회사는 진짜 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상황에서 두 배는 택도 없는 소리죠. 어떤 곳은 30% 차등을 한다고 했더니 그마저도 너무 많다며 한동안 회사가 시끄러워졌던 곳도 있었더랬죠.



어쨌든요,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성과 risk를 만들면서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하고자 할까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또 성공한다고 해도 내 옆에서 그냥 작년에 했던 것 비슷하게 연도랑 숫자 조금 바꿔 적당히 하는 사람과 돈도 그렇게 큰 차이 없이 받을 거라면요?

그냥 가만히 현상유지만 잘해서 평균고과 받아도 성과급 1,000만 원 받을 수 있는데,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신규 프로젝트를 돈 300만 원 더 받자고(실패하면 1,000만 원도 못 건지는데) 뛰어드는 사람이 실제로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왠지 더 이득 같아 보이기도 하죠.


물론 돈이 전부도 아니고,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는 것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 것 아니냐, 경력이 쌓이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꼭 돈이 아니라도 생각해 보자고요. "1년 동안 무사하게 별 탈없이 경력 쌓기 vs 1년 동안 성공확률 60% 실패확률 40%인 새로운 시도하기" 어느 쪽이 더 끌리시나요?




회사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혁신이 더뎌지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진다면 회사의 보상 시스템에서 그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얘기해 온 것처럼 새로운 시도라든지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기대 수익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고 risk만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 조직에선 당연히 괜히 나서서 일을 키우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바보 같은 선택처럼 느껴질거에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적당히 중간만 가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되는 수익과 보상이 많고 또 확실하다면 이 자체로도 사람들을 잘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또다른 원인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나 한국처럼 고용이 완전 경직된 환경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안전하고 매력적인 선택이 될 가능성이 더욱더 높아지거든요. 서로 다르게 일해도 보상은 거의 똑같이 나눠가진다면 굳이 내기할 필요가 없겠죠.


자고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은 심지어 우리나라의 속담이기도 하고, 정말 여러 상황에서 우리에게 행동하지 않았을 때의 안락함을 약속해 왔었죠. 하지만 그 '중간'이 계속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 영원한 중간일지, 아니면 모두 다 함께 뒤로 서서히 밀려나가 '새로운 중간'이 될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시대인 것 같습니다. 다 같이 현재의 중간을 향해간다면 그 중간은 기준점이 다시 바뀔테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중간만 가도 크게 불만없는, 어쩌면 중간으로 가지않으면 괜히 손해처럼 느끼게 만드는 조직 시스템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도요.


#인사 #HR #조직문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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