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기억과 망각너머의 역사

- 2025년 9월 11일 목요일 -

by 최용수

♡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 1910-1981)

< 현을 위한 아다지오, Op.11 / Adagio for Strings, Op.11>


https://youtu.be/WAoLJ8GbA4Y?si=qiXu7AbAXmoxQhL6


오늘은 9월 11일... 산책을 다녀와서 별생각 없이 달력을 보다 아차 싶었다.


"벌써 24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구나."


사실 처음 달력의 '9월 11일'이란 숫자를 보았을 땐 24년 전의 그날의 충격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현실의 뉴스 화면에서 생중계되고 있던 그 어처구니없는 영상을...



망각(妄覺)!


아마 인간의 뇌에 망각(妄覺)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뇌는 아마 매일매일 쌓이는 정보들을 처리하지 못해 터져 버렸거나 한계를 초과한 정보들의 입력을 막아버림으로써 인간들은 특정 기억의 시간만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인간의 뇌 시스템은 기억(記憶)해야 할 것들과 망각(妄覺)해야 할 것들을 나누도록 진화했고, 그 결과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인류가 만약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후세들에게 남겼더라면, 우리는 결코 지금과 같은 지구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존(生存)을 위한 환경은 너무도 혼돈스럽고 변화무쌍한 것이어서 특정 시기의 기억만으로는 생존을 위협하는 그 모든 변수들에 대해 대응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항상 새로운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분의 뇌 영역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9.11 테러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자마자 벌어진 이 충격적 사건은 결코 망각의 영역으로 넘겨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잠시 이 '9.11'이란 날짜를 망각한 이유는 '9.11 테러'가 '단일한 테러 행위의 충격적 사건(事件)'정도가 아니라 코로나 19 팬데믹처럼 '2001년 9월 11일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일종의 돌이킬 수 없는 사태(事態)'가 되었다가, 이후 '테러와의 전쟁(Global War on Terrorism)'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도 없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전무후무한 사변'(事變)'으로 발전하면서 '9.11'이란 숫자 자체의 이미지보다 '무역센터를 감싼 화염과 연기', '회색가루 폭풍을 일으키며 무너지는 건물과 재를 뒤집어쓰고 뛰어가는 사람들', '죽음을 각오하고 현장으로 뛰어들어가는 뉴욕의 소방대원들' 그리고,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과 같은 끔찍한 이미지들의 연결로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지금 '9.11'은 기억과 망각의 영역을 넘어 그 자체가 21세기 국제질서의 냉혹한 변화를 상징하는 역사가 되었다.


** '9.11 테러가 21세기 국제질서를 상징하는 역사가 되었다'라고 쓰고 나니 좀 더 체계적으로 이 주제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브런치는 퇴근 후 천천히 '9.11' 테러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이 사건 이후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음악 소개는 짧게...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담아 익숙한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골랐다. 그리고, 곡에 대한 짧은 소개 뒤에 '9.11 테러'에 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모아 그 의미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작곡가 사무엘 바버는 1910년 3월 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체스터(West Chester, Pennsylvania)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천부적 재능을 보여 7살 때 첫 작곡을 하고, 10살 때에는 오페라를 쓸 정도로 뛰어나 14살 때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명문 커티스 음악원(Curtis Institute of Music)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버는 생전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좋든 싫든 나는 미국인 작곡가”라며 당대의 주요한 지적·음악적 사조를 이끌었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급진적인 경향의 음악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이 때문에 그 스스로 밝혔듯이 지적인 비평계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실제로 바버의 음악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의 음악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바버의 음악은 일반 청중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복잡한 이론적 배경 따윈 모르더라도 순수한 감정적 공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곡은 사무엘 바버가 아메리카 로마 대상(Prix de Rome of the American Academy in Rome)을 받아 이탈리아에 유학 중이던 1936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 제1번의 2악장을 현악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작품이다.

'아다지오(Adagio)'는 '매우 느리게'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천천히 기분 좋게, 느린 템포를 뜻하는데, 라르고와 안단테의 중간 빠르기로 무겁고 깊이를 가지며 음을 충분히 지속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보통 소나타 형식의 곡에서 감정적 대비(빠름-느림-(보통) 빠름)를 위해 주로 2악장에 사용된다.

원곡의 현악 사중주가 완성된 지 2년 뒤(1938년 1월), 바버는 당대 세계 최고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에게 악보의 사본을 보내게 되는데, 토스카니니는 이 현악 사중주의 2악장에 깊이 매료되었고, 바버에게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 편곡된 버전은 1938년 11월 5일,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교향악단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초연되었으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강렬하고 애수 어린 선율이 토스카니니와 NBC 교향악단을 통해 우아한 호소력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곡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케네디 대통령의 부고 방송,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그레이스 켈리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되었다.

특히 2001년 9.11 사태 직후 열린 영국 런던 프롬스의 마지막 음악회에서도 추모의 의미로 이 곡이 연주되었는데, 곡이 끝난 후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에도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노장 레너드 슬래트킨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무대를 걸어 나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 바버의 현악 사중주곡을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을 요청했던, 이 곡을 세상에 알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NBC 교향악단의 연주 버전도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hrTIJ3S9DLQ?si=d45gRlmM2Kzzg2JT




2001년 9월 11일, 상상을 초월한 피해를 부른 테러


9.11 테러는 단일 테러 행위로는 전례 없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사건이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테러에 연루된 19명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를 제외하고 총 2,977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부상자 수는 25,000명 이상(사건 당일 즉각적 부상자와 사건 이후 현재까지 추가된 부상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피해의 대부분은 세계무역센터에서 발생했는데, 이곳에서만 2,606명이 희생되었다.(이 중에는 뉴욕 소방청 소속 소방관 343명, 뉴욕 경찰국 소속 23명 등 수많은 구조대원이 포함되어 있다.)

희생자들의 평균 연령은 40세였으며, 2.5세의 영아에서 85세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이는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테러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리적, 경제적 파괴 또한 막대했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붕괴하고 펜타곤 일부가 파괴되면서 최소 100억 달러에 달하는 직접적 자산 가치가 소멸되었으며 뉴욕시 당국은 테러로 인한 뉴욕시의 피해액을 최대 950억 달러로 잠정 집계했다. 뉴욕의 금융 시스템은 일시적으로 완전히 마비되었고, 금융시장은 9월 18일이 지나서야 겨우 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9.11 테러는 단순히 피해자 수가 많은 '사건'이 아니었다. 3천 명에 육박하는 인명 피해는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단일 테러 행위로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였으므로 미국 정부는 이 사건의 성격을 단순한 범죄 행위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하였다.


정치·사회적 '사태(事態)'가 되어버린 9.11 테러


9.11 테러는 미국 정부와 국민의 정신적, 정치적 DNA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10주년을 앞두고 "9.11이 나의 대통령직 수행을 확실하게 바꾸었다"며 향후 미국 본토 방위를 국방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 변화는 정부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초고속으로 발효된 '애국자법(Patriot Act)'은 영장 없는 도청과 광범위한 통신 감청 등 사법집행기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개인의 자유와 인권 침해에 대한 심각한 논란을 낳았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 법안의 허점을 이용한 미국 정부기관의 무차별적인 통신 감청의 실태를 폭로하며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9.11 테러가 초래한 '사태'는 단기적인 충격에 그치지 않았다. 애국자법과 같은 법적 조치는 시민들의 자유를 영구적으로 제약하는 '상태'를 만들었으며, 공항 검색대 강화와 같은 변화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사회 내부의 분열 또한 심화되었다. 9.11 테러 직후 미국 전역에서 아랍계 미국인과 무슬림에 대한 혐오 범죄와 차별이 급증했고 미국의 이민 정책 또한 극단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혐오증과 같은 사회적 분열은 9.11 테러 이후 잠시 불거진 감정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내부적 갈등 구조를 영속화시키는 '사태'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자행된 아시안들에 대한 혐오범죄나 도널드 트럼프의 폭력적인 이민자 억제 정책은 미국 사회가 이제 9.11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9.11 테러는 전 세계 경제에도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테러 직후 전 세계 주식 시장이 급락하고 뉴욕의 금융 시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으며, 뉴욕 증권시장이 재개장하자마자 미 연방준비제도는 금융 시스템 붕괴 '사태'를 막기 위해 사흘 동안 매일 1,000억 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해야 했다.

9.11 테러 이전 '세계화'의 특수를 누렸던 항공, 관광, 호텔, 보험 산업 부문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일부 항공사는 파산하기까지 했다.(당시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였던 콩코드의 퇴역도 이때 이뤄졌다) 반면, 국가 안보 강화라는 새로운 '사태'에 맞춰 보안 및 IT 산업 분야는 큰 폭으로 성장했다. 9.11 테러는 정치·사회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자본의 흐름과 산업 구조 재편의 촉매제가 되었다.


21세기 국제질서 재편의 신호탄이 된 '9.11 테러'


9.11 테러는 비국가 행위자인 알카에다에 의해 자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 행위를 단순한 범죄가 아닌 '전쟁 행위'로 간주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월 16일 처음으로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며칠 후 공식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Global War on Terrorism)'을 선포했다. 이 선포는 테러를 지원하는 모든 정부를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부시 독트린'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9.11 테러를 국가가 아닌 대상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기존 국제 질서를 뒤흔드는 도전이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Global War on Terrorism)'을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자위권 행사를 명분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절차 없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이는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논란을 낳았다. 심지어 이라크와의 전쟁 과정에서 미국은 포로의 처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과 같은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억류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며 비밀 수용소를 운영하고 구금자들을 고문하는 등의 인권 침해 또한 저질렀다. 이는 9.11 테러가 단순히 물리적 피해를 야기한 사건이 아니라, 기존 국제법과 규범의 경계를 무너뜨린 역사적 분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변(事變)'으로 확대된 9.11 테러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큰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변(事變)'이란 말이 있다. 이 '사변(事變)'에는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이라는 뜻도 있는데, 과거 한국 전쟁을 '6.25 사변'이라고 불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결국 9.11 테러는 국제 질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군사적, 정치적 '변화(變)' 즉, '사변'(事變)이 되어버렸다.

미국은 상당한 미군의 희생과 전쟁비용을 들여 기어이 '9.11 테러'의 원흉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수십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와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게다가 이라크에서는 미국과의 전쟁 과정에서 이슬람국가(ISIS)의 탄생이라는 미국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로 이어졌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는 소수세력이었던 탈레반이 20년 만에 정권을 잡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9.11 테러'는 21세기 국제사회를 새로운 갈등의 시대로 이끄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고작 4반세기도 지나기 전에 벌어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2014)과 연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2022), 그리고 올해 이스라엘이 자위권 발동 차원이라며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습과 지휘부에 대한 치밀한 암살작전, 뒤이은 미국의 이란 포르도 핵시설에 대한 GBU-57 초대형 벙커 버스터 폭격까지 국제사회는 이제 통제할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음모론과 가짜뉴스 확산의 시발점이 된 '9.11 테러'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은 미국사회에서 인터넷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1980년대 연구와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된 인터넷은 1990년대에 들어서 월드와이드웹(WWW)과 그래픽 웹 브라우저(1993년의 Mosaic)가 개발되면서 일반 대중도 인터넷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95년 NSFNET(National Science Foundation Network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구축, 운영한 학술 네트워크)이 민간에 개방되고, 이를 바탕으로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이 ADSL과 케이블 모뎀, 정액제 요금제 등으로 인터넷 이용자들을 늘려나가면서 1995년 이후 미국 내 인터넷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 당시 미국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고, 성인 인구 기준으로 약 64%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9.11 테러는 지금까지 미국사회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사건의 배경·동기·결과 모두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미국 시민들은 정부 공식 발표나 주류 언론 보도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부족한 정보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곧 정부 발표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시민들은 복잡한 진실보다는 그들이 알고 싶은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떠돌던 "부시 행정부의 자작극", "WTC 붕괴는 비행기 충돌이 아니라 건물 내부 폭발물 때문", "유대인과 미국 정부의 공모" 등 각종 근거 없는 음모론이 인터넷을 넘어 다큐멘터리, 책, 영상 플랫폼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미확인 증언, 왜곡된 데이터들이 그럴싸하게 포장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주장, 각종 괴담, 허위자료들이 서로를 인용하며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사회 전반에 ‘가짜뉴스’와 ‘대중적 음모론’이 일상적으로 논의되는 기류가 정착되었다. 실제로 9.11 이전에도 음모론은 존재했지만, 그 확산 속도와 파급력, 집단적 공론장의 형성은 이 사건을 계기로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많다.

9.11 테러는 현대 사회에서 정보 과잉·불신·분열의 시대적 풍경을 만든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최근에는 AI까지 가세해 거짓 정보와 '딥 페이크'같은 사실 같은 가짜영상이 범람하고 있다 보니, '9.11 테러'의 여파는 정말 가늠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불편한 진실을 감내하고, 대면할 수 있는 용기(시청자), 진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정부), 그리고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자들에 맞설 수 있는 용기(언론)... 우리에겐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 그동안 브런치 글을 시로 끝내왔는데 오늘은 글의 무게 때문에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으며 끝내고자 한다.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와중에 트럼프가 아끼던 젊은 우파 지도자 찰리 커크의 암살 소식에 또다시 미국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ㅠㅠ

- https://youtu.be/kRCubAtPiKg?si=v6L2BuieVRpwNMz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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