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흐르는 눈물...

- 2025년 9월 10일 수요일 -

by 최용수

♡ 가에타노 도니제티 ( Domenico Gaetano Maria Donizetti, 1797~1848)

<오페라『사랑의 묘약』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 from Opera『L'ELISIR D'AMORE 』>


https://www.youtube.com/watch?v=sEP_sTEKVe8


지난 월요일 백로(白露)를 지나자마자 마치 마술처럼 밤새 내린 이슬이 아파트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천정과 보닛에 맺혀있다. 반팔 차림으로 산책에 나섰다가 서늘한 기운에 이제 긴팔 운동복들을 꺼내두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를 따라 만들어진 24절기는 아무리 지구온난화로 지구대기가 뜨거워졌어도 그 시간의 경계를 어긋나지 않고 제 위치를 지켜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서늘해진 가을 하늘 서쪽엔 보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풍만한 원형을 지닌 채 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저 달이 삭(朔)을 지나 다시 보름달이 되면 풍요와 감사의 명절 한가위 추석(秋夕)이다.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 때문에 뒤틀려있던 지구의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를 찾아가니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벌써 2025년의 끝이 저만치 다가서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올해 하고 싶었던 일들이나 꼭 했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빠르게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간다.


어릴 땐 나이 먹은 어른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아무리 급하고 복잡한 일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일머리를 잡아 꼼꼼하게 처리해 나가는 걸 보면서 나도 나이만 먹으면 그런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세상의 지혜는 그냥 나이만 먹는다고 생겨나는 게 아님을 50을 넘기고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40을 넘기면서 어렴풋이 느끼긴 했는데, 50대에 접어드니 내 부모님들께서 살아내셨던 그 시절, 어린 내 눈에는 정말 평온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그 많았던 일들이 사실은 어느 하나 쉽고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식들 모르게 속을 끓이고 정말 힘들어하셨으면서도 우리에겐 내색이나 생색 한 번 제대로 내지 않으셨던 당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셨는지...


안타깝게도 이런 깨달음의 시간은 절대 앞서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다. 그것은 삶의 무게가 쌓여 정확히 그 무게만큼의 힘으로 잊혀 있던 기억창고의 빗장을 열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필 당신들과의 예정된 이별의 시간을 앞두고서야 겨우 깨닫게 되는...


우리 딸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도 나의 훌륭한 부모님처럼 그렇게 기억될 수 있을까?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서일까? 아침부터 왜 이런 무거운 감상에 빠지게 되었는지 주변을 되돌아보니 아무래도 이 사단(事端)의 원인이 이 무렵이면 즐겨 듣던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흘린 눈물' 때문인 듯하다. 아침을 여는 선곡은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 ㅠㅠ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은 오페라『사랑의 묘약』의 2막에서 남자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로만차(Romanza)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테너 아리아 중 하나로 네모리노가 여자 주인공 아디나가 몰래 흘리는 눈물을 보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부르는 노래다.

(로만차(Romanza)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성격의 독창곡으로 일종의 아리아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선율 중심이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서정시처럼 부르는 노래다)

그래서 가사의 내용은 매우 섬세하고 감동적이다. "Una furtiva lagrima negl'occhi suoi spuntò(그녀의 눈에서 남몰래 눈물이 흘러요)"로 시작되는 이 아리아는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을 발견한 순간의 감격을 담고 있다. 특히 "M'ama, sì, m'ama, lo vedo, lo vedo(그녀는 나를 사랑해요, 그래요, 나를 사랑해요, 보여요, 보여요)"라는 부분에서 네모리노의 기쁨은 절정에 달한다. 번역된 가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녀의 눈에서 남몰래 눈물이 흘러요.

유쾌한 젊은이들이 질투를 하네요,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그녀는 나를 사랑해요 그래요, 그녀는 나를 사랑해요 보여요, 보여요.

한순간 심장의 고동소리,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의 고동소리를 느껴요.

내 한숨과 혼란스러움이 그녀의 한숨에 섞여있다면, 그 고동소리, 그 고동소리를 느껴요.

혼란스러움과 내 한숨이 그녀의 한숨에 섞였다면, 그래요 나는 죽을 수 있어요. 죽을 수 있어요

더 이상 바라지 않아요, 바라지 않아요. 아 하늘이시여! 난 할 수 있어요, 난 죽을 수 있어요.

더 이상 바라지 않아요, 바라지 않아요. 그래요, 나는 죽을 수 있어요, 사랑을 위해서라면"


가사의 서정성이 아름다운 선율과 찰떡처럼 어울려 있는 이 로만차는 테너의 기교보다는 감정의 진정성을 중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19세기 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


도니제티의 오페라『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은 고작 6주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된(작곡에는 고작 2주 정도의 시간만 주어졌다) 오페라지만 로시니의 오페라『세비야의 이발사』와 함께 당대 가장 유명한 희극 오페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1832년 5월 12일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아무래도 6주라는 짧은 작곡기간 때문에 무대 리허설조차 충분하지 못했던 이 공연은 실패했다. 도니제티조차 당시 초연 공연에 대해 "네모리노는 겨우 들어줄 만했고, 아디나와 벨코레는 완벽하지 못했으며, 둘카마라는 마치 자기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인 것처럼 과장된 연기로 일관했다"고 자평했을 정도였다. 이 오페라의 대본을 쓴 당대 최고의 대본작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 는 더 신랄하게 "테너가 말더듬이인 줄 알았다"고 했단다.

하지만 초연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선율 중심의 음악, 친근한 매력을 가진 등장인물, 해피엔딩의 감동적인 스토리',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감동적인 로만차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많은 극장들이 이 오페라를 그들의 레퍼토리에 포함시켰고, 그 덕분에 1838년부터 1848년 사이『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가 되었다. 무려 10년 동안 지속된 압도적 인기였다.


제작기간은 고작 6주였지만, 원작을 능가해 버린 작품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의 대본은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최고 대본작가로 평가받는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가 1832년 썼다. 그녀는 도니제티뿐만 아니라 벨칸토 오페라의 대부격인 벨리니를 위해서도 수많은 대본을 써준 거장이었다.

로마니는 도니제티가 급히 요청했을 때 단 1주일 만에 이 대본을 완성해 주었는데, 당시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의 극장장이 마감 한 달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도니제티에게 신작을 의뢰했고, 도니제티는 로마니에게 1주일 내 대본 완성을 조건으로 작업을 승낙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묘약』의 원작은 프랑스의 극작가 외젠 스크리브(Eugène Scribe)가 쓴 오페라 대본《필터(Le philtre, 우리말로 '묘약'으로 번역)》다. 이 대본을 바탕으로 1831년 프랑스의 작곡가 다니엘 오베르(Daniel Auber, 1782-1871)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스크리브의 《필터》도 완전한 창작은 아니다. 사실 이 '묘약'과 관련된 이야기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사랑의 묘약'이다. 이 모티프를 바탕으로 최초로 오페라로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말라페르타(Silvio Malaperta)였다. 말라페르타는 『묘약(Il filtro)』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오페라를 만들었고, 스크리브는 이 이탈리아어 대본을 프랑스어로 각색하여 오베르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도니제티의 오페라『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이 파리로 진출한 후에는 원작인 오베르의 오페라『필터』와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결과는 원작의 완패. 이 작품은 『사랑의 묘약』에 밀려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희비극을 넘어선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도니제티


가에타노 도니제티는 1797년 11월 29일 북부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다.

1807년, 9살의 도니제티는 베르가모의 한 자선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평생의 은사(恩師) 시몬 마이어를 만나게 된다. 시몬 마이어는 베르가모 대성당의 지휘자 겸 음악감독로 활동한 인물로 당시 도니제티가 입학한 자선 음악학교의 책임자였다. 시몬 마이어는 일찍이 도니제티의 천부적인 음악적 자질을 확인하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와주었는데, 특히 1815년 마이어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도니제티가 볼로냐에서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장학금까지 마련해 주면서 그의 유학을 도왔다. 도니제티가 본격적인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볼로냐에서 도니제티는 저명한 스타니슬라오 마테이 신부 밑에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 마테이는 로시니의 스승이기도 했다. 1817년 도니제티는 마이어의 요청으로 베르가모로 돌아와 현악 사중주 활동을 하며 음악적 시야를 넓혔으며 마이어와 함께 1822년까지 150여 곡에 이르는 종교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경력은 1818년 베니스에서 초연된 《부르고뉴의 엔리코》로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중세 부르고뉴를 배경으로 한 2막 구성의 '오페라 에로이카(영웅 오페라)'로 큰 성공은 아니었지만, 평단의 호평과 함께 곧 도니제티는 다양한 오페라 작곡 제안을 받게 된다. 그리고, 1822년 나폴리의 테아트로 산 카를로에서 초연한 《그라나다의 조라이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나폴리로 활동 거점을 옮기게 된다.

도니제티는 나폴리의 3대 극장인 산 카를로, 폰도, 누오보 극장에서 활발히 작품을 발표했으며, 1826년에는 일 년에 네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기로 계약할 정도로 인기 작곡가가 되었다.

1828년에는 음악가로서의 성공 덕분에 로마 법률가의 딸 비르지니아 바셀리와 결혼하게 되고 나폴리 궁정 가극장 음악감독에도 임명되었다. 이 시기 도니제티는 나폴리에서만 약 30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총 51편의 작품이 나폴리에서 공연되었다. 1830년 이전에는 주로 희극 오페라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진지한 비극 오페라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리고, 1830년 그는 운명의 전환점을 만든 또 하나의 대작을 발표하게 된다.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으로 작곡한 《안나 볼레나》는 12월 26일 밀라노 카르카노 극장에서 초연되자마자 즉각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체에 명성을 떨치며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은 도니제티의 이전 작품들이 주로 나폴리에서 공연된 것과 달리 밀라노를 거쳐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에서도 무대에 올려질만큼 큰 인기를 모았다.

《안나 볼레나》의 성공으로 로시니가 그만 은퇴를 선언해 버리는 바람에 이 작품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계는 거의 도니제티의 독무대가 되었다. 이후 도니제티는 2년 후 《사랑의 묘약》(1832),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 등 벨칸토 오페라의 걸작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도니제티는 19세기 벨칸토 시대의 가장 다재다능한 오페라 작곡가로, 희극과 비극 오페라 모두에서 걸작을 남긴 진정한 양 장르의 대가였다. 동시대 작곡가들이 특정 장르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로시니는 주로 희극에서 벨리니는 주로 비극에서 장기를 보여주었다) 도니제티는 두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그의 희극 오페라 중 최고작은 《사랑의 묘약》(1832)과 《돈 파스콸레》(1843)로, 이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세계 오페라 하우스의 필수 레퍼토리로 자리 잡고 있다. 《돈 파스콸레》는 그의 마지막 희극 걸작으로 노인과 젊은 여성의 결혼을 둘러싼 유쾌한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비극 오페라에서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가 최고봉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루치아의 광란의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안나 볼레나》(1830)는 그에게 국제적 성공을 안겨준 첫 대작으로, 헨리 8세와 안나 볼레나의 비극을 다루었다. 이 외에도 《마리아 스투아르다》, 《로베르토 데브뢰》, 《벨리사리오》 등의 비극 오페라들이 있다.

도니제티는 약 67편에서 75편에 이르는 오페라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유실 대본 때문에 정확한 편수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중 희극과 비극이 거의 반반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 희극에서는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를, 비극에서는 깊은 감정과 극적 긴장감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특히 그의 비극 오페라에 자주 등장하는 "광기의 장면"은 《안나 볼레나》이후 도니제티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의 음악적 특징은 이탈리아 벨칸토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점에 있으며, 선율의 아름다움과 극적 표현력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특히 오늘 소개한《사랑의 묘약》은 단순한 희극적 서사를 넘어 코믹한 요소까지 가미된 전통적인 오페라 부파의 틀을 확장시킨 혁신적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오페라『사랑의 묘약』의 개략적인 줄거리


1막

가난한 농부 네모리노는 부잣집 딸 아디나를 짝사랑 한다. 어느 날 아디나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묘약 이야기를 들려주자 네모리노는 자신에게도 그런 묘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을에 온 군인 벨코레가 아디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 구애하자 네모리노는 질투에 빠진다. 이때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가 나타나 자신이 전설의 '사랑의 묘약'이 있다고 속여 네모리노는 전 재산을 털어 그 묘약을 산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싸구려 포도주였다. 하지만, 술에 취한 네모리노는 평소와 달리 아디나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런데, 벨코레는 내일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에 아디나에게 오늘 당장 결혼하자고 청혼하자, 아디나는 네모리노를 자극하려고 이를 승낙해 버린다.


2막

절망한 네모리노는 더 강한 묘약을 사기로 마음먹지만 돈이 없어 결국 벨코레에게 군대 입대금을 받고 입대를 결심한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에서 네모리노가 부유한 삼촌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을의 젊은 여성들이 갑자기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네모리노는 이것이 묘약의 효과라고 믿고 기뻐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아디나는 질투심과 함께 비로소 네모리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네모리노가 자신을 위해 군대에 입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디나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네모리노는 아디나의 눈물을 보고 그녀의 사랑을 확신하며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부른다. 아디나는 벨코레에게서 네모리노의 입대 계약서를 되사오고, 두 사람은 마침내 사랑을 고백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 원체 유명한 이 로만차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테너로 평가받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전성기 시절의 목소리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YOA0mxmSfsM


■ 영화《위대한 카루소》(1951)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테너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폭식과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마리오 란자의 연주로도 서정적이며 감동적인 이 로만차를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I6RMX7tc3cc



♥ 사랑


- 정 호 승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

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 밖에 가난한 등불 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볓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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