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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거리두기

단계 2

생각을 알아차렸다면 생각과 거리를 둘 차례다. 생각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생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무턱대고 알아차린 후 "그렇구나" 하기에는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으면 이 세상에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일은 그보다 더 정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다행히 수많은 인지치료 이론들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일련의 생각들을 패턴화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유형은 '정확하지 않은 생각'이다. 우리가 정확하지 않은 생각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을 떠올려보자. 황량한 들판에 한 사람이 서있다. 들판에는 온갖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타부족의 습격, 맹수의 공격, 독을 가진 벌레들. 인간은 어떻게 이 위험한 환경에서 생존하여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species)이 되었을까? 당연히 우리의 인지 능력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당연해보인다. 생각하는 능력이 우리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틀림없다. 우리의 이름도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니던가.


하지만 정확하게 생각의 어떤 능력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았을까? 바로 정확하지 않은 생각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한다. 생각은 여러 가지 판단을 도와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정확하지 않다. 설령 근거가 부족하고, 한쪽으로 편향되고, 과잉 해석일지라도, 생각은 곧바로 결론에 이른다. 이것은 생존에 크나큰 장점이 있다. 아주 세밀하고 꼼꼼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맹수가 습격했을 때 그들은 잘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아닐지라도 일단 줄행랑치는 게 최고의 선택이다. 우물쭈물거리며 '피해야 하는가, 싸워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간 죽기 쉽상이다. 그런 종은 모두 진화의 과정에서 멸종해버렸다. 즉, 인간은 진화적으로 보았을 때 '부족한 근거를 토대로 결론을 내리는 능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대체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편향되게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생존에 큰 이점을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도로를 걷다가 큰 웃음을 소리를 들었다고 해보자. 행복한 웃음소리다.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저 "누가 행복하게 웃는가", 그뿐이다. 우리는 그 행복한 웃음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다. 하지만 큰 경적소리는 어떤가? 우리는 경적소리에 깜짝 놀랜다. "무슨 일이지?", "위험해". 우리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건을 부정적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미리 대비를 하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낙천주의는 멸종의 지름길이었다. 결국 인간은 진화적으로 보았을 때 '미래를 늘 부정적인 방향으로 예측하는 능력', 즉, 부정 편향을 얻게 되었다.


또한 인간은 아주 쉽게 어떠한 일을 자신과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생존에 큰 이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의미부여할 수밖에 없다. "저건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이 질문은 우리를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도록 만든다. 물론 "뭐든 간에"와 같은 태도인 생명체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의미를 자신과 결부짓지 않는 생명체 말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역시나 멸종하고 말았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의 연관성을 과하게 해석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정확하지 않은 생각은 선사시대에서 매우 효과적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더이상 황량한 들판 속에서 맹수를 만나지 않는다. 당장에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위험한 세상은 진작에 끝났다. 하지만 인간의 DNA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확하지 않은 생각은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 남아 여러 가지 정신건강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다. 이는 생각 자체가 곧 자신이라고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특히 인간은 어떠한 대상(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신과 정확히 동일시하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특정한 방식으로 '개념화'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며, 과거의 생각과 사건의 의미를 끊임없이 '반추'하며 마치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다시 경험한다. 평가, 개념화, 반추는 대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다. 작동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세 가지 생각은 모두 동일하게 생각을 심리적 사건 중 하나로 바라보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정확하지 않은 생각과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으로부터 거리두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생각을 알아차렸다면 그 생각에 바로 반응하게 전에 이것이 정확한지,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임상적인 수준에서 우울과 불안을 앓고 있다면 이 단계에서 조금 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간단한 두 질문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은 정확한 생각인가?", "이것은 도움이 되는 생각인가?". 생각을 알아차린 후 이 두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결국 괴로움을 만드는 생각은 정확하지 않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림 1. 부정적인 생각을 포착했으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라. "이것은 정확한가?", "이것은 도움이 되는가?"


첫 번째 단계와 연결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떠올랐는가? 그것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의 강에서 시냇물을 따라 내려오는 나뭇잎을 관찰해라. 단 30초도 좋다. 당신이 시냇물 속이 아니라 시냇물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생각의 강을 바라보아라. 나의 위치가 명확해졌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라. "이것은 정확한가?", "이것은 도움이 되는가?" 이 연습만으로도 당신은 부정적인 생각의 영향으로부터 제법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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