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 1
'거리두기(Distancing, 디스턴싱)'는 세 가지 단계로 연습할 수 있다. 하나씩 알아보자. 첫 번째는 '생각 알아차리기'다. 이는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에서 이야기하는 알아차림(Awareness)와 거의 유사하다. 쉽게 말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쯤은 나도 알고 있어." 혹시 방금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조차, 정확히 이야기하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알지 못한다.
최근 당신을 괴롭혔던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려보자.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으로부터 떨어져서 "이 문제를 대하는 나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군"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생각에 대한 당신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이었나? 그 생각에는 어떤 요소가 포함되어있나? 의구심? 불안감? 확신? 후회?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단 한 번이라도 명료하게 바라보았던 적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에 이리저리 휩쓸려갈 뿐이다. 만약 '나'는 착각이라는 것이 사실이고, 생각은 그저 다양한 환경적 자극에 의해 우연의 산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거라면, 그 생각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 삶을 우연에 맡기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스스로는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살아간다고 믿고 있을지언정 말이다(참고로 짚신벌레나 개미도 그 스스로는 주도적으로 살아간다고 느낄 것이다).
간단한 연습을 해보자. 알아차림을 실천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마인드풀니스 명상에서 즐겨 사용하는 호흡명상도 좋은 방법이다. 조금 더 수련자들이 하는 좌선명상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조금 더 실용적이고 생각이 곧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여기 그 목적에 부합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당신의 앞에 강이 놓여있다고 상상해보자. 생각의 강이다. 시냇물은 위에서 아래로 고요히 흐른다. 시냇물 위에는 나뭇잎이 놓여있다. 나뭇잎은 물을 따라 시냇물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떠내려간다. 시냇물은 당신의 마음이다. 나뭇잎은 생각이다. 당신은 시냇물 옆에 있다. 시냇물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당신은 그저 한 발짝 떨어져서 마음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아래와 같은 이미지가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잠시 눈을 감고 강을 바라보자. 첫 시작은 60초면 충분하다. 대신 한 가지만 기억하자. 당신의 자리는 시냇물이 아니라 시냇물 옆이라는 것이다. '나'는 착각일 뿐이다. 생각은 마음속에서 그저 떠오를 뿐이다. 당신은 그 생각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어떠한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든 그저 '생각이구나'하고 바라보면 그뿐이다. 나뭇잎 위에 놓여있는 생각을 따라 강 아래쪽으로 뛰어갈 필요도 없고, 시냇물 안에 들어가서 나뭇잎을 만지작거리며 소란을 피울 필요도 없다. 그냥 그것을 바라보는 데에 집중하라. 만약 어느 순간에 당신이 시냇물 옆에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노력하라.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 뿐이다. 자, 그러면 60초만 강을 바라보자.
어땠는가? 아마 생각을 바라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분명히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 하지 않고 생각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가능은 하다는 것을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단숨에 생각을 알아치리는 능력을 얻을 순 없다.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이 연습은 뇌에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높여준다. 아주 경직된 모습으로 엉켜있던 우리 뇌의 전선을 유연하게 풀어준다는 것이다. 일단 신경이 유연하게 풀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우울, 불안, 공황, 끊임없는 반추 등과 같은 패턴화된 문제를 다시 재처리할 수 있다.
위 연습은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수행하면 된다. 순간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될 때, 마음이 혼란스러운 걸 느낄 때 잠시 눈을 감고 시냇물 옆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신경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것이다. "젠장, 불안해 죽겠어"라는 생각과 "나는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떠올려보자. 나뭇잎에 특정한 생각이 떠내려올 때면 "나는 ...라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또는 "나의 마음속에는 ...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구나"라고 읊조리면 된다. 시간과 장소는 상관없다. 그저 당신이 시냇물 옆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 방법만으로도 우울과 불안이 상당 부분 감소되는 효과를 보였다. 일단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면 그 생각과 감정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같은 질환을 다룰 때에는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는 인지치료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지치료사는 좋은 질문을 통해 알아차리고 거리를 둬야 할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임상적인 수준의 우울과 불안 같은 경우에는 보다 핵심적인 생각들이 작용하여 특정한 생각을 만들곤 하는데, 이런 생각들은 체계적인 질문 없이는 구체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령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일련의 초기 경험(예: 어릴 적 인정을 받지 못했던 적이 많았음, 큰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음)으로 인해 특정한 핵심믿음(예: "나는 부족하다")을 갇게 된다. 이 핵심믿음은 삶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가정(예: 완벽하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태도(예: 도전은 무의미한 것이다), 규칙(예: 완벽하게 해야 한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가정, 태도, 규칙은 우리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예: "이번 프로젝트에서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그땐 돌이킬 수 없을 거야")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다룰 경우에는 이러한 생각 체계(우리는 그것을 '생각지도'라고 부른다)를 파악해야 하고, 그 생각들로부터 '거리두기'를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임상적인 수준의 우울과 불안이 아니라면 위에서 언급한 연습으로도 충분하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잠시 멈추고 생각의 강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연습만 습관적으로 하여도 당신은 상당한 심리적 유연성과 회복탄력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생각의 강에서 연습을 할 때 마음속에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 굴복하거나 과잉보상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것과 싸우고자 하면 전투는 실패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그저 심리적 사건 그 자체로 바라보고 온전히 인정하고자 하면 괴롭진 않을 수 있다. 즉, 부정적인 생각에 굴복하지 않고, 그 생각을 애써 이기려고 하지도 않고, 그 생각을 마음속에서 몰아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있는 그 자체로 그 생각이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는 것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통증의학에서도 매우 잘 입증된 방법이다. 사실 통증도 마음속에 떠오른 하나의 감각에 불과하다. 당신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관찰하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었는가? 다음에 언젠가 혀를 깨물었을 때 혀를 부여잡고 아파하지 말고 아픈 느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관찰해 보라. 악취가 나는 쓰레기 더미를 발견했을 때 괴로워하며 코를 막지 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보라. 당신이 그것을 피하지 않고 진정으로 관찰하고 느끼며 그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각으로 바라보고자 했을 때, 신기하게도 그것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극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당신이 그 생각에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생각을 생각 자체로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비로소 당신은 생각보다 그것이 부정적이지 않은, 그저 마음속에 떠오른 하나의 심리적 사건 중 하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생각의 강에 앉아 떠내려오는 생각들에 굴복하거나, 과잉보상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며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라. 장담컨데 이 연습은 당신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디스턴싱(Distancing) 팀은 인지치료사와 함께 '거리두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울, 불안, 무기력, 번아웃 등의 문제로 고민 중이라면, 아래에서 디스턴싱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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