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3
'나'는 착각이다. 그리고 생각과 맞서 싸우려는 시도는 항상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두 전제를 이해하고 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생각은 내가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닌 상황에서 마음속에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에 싸우지도 말라니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냥 떠오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일까?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니 체념하고 인내하라는 말일까?
이 지점에서 중요한 변화가 만들어진다. 당신은 이제 '생각은 마음속에 떠오른 하나의 심리적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에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음속에 떠오른 모든 생각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인지과학에 기반한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어떤 생각에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착각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것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생각이 하나의 심리적 사건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 여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떠오를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하는가? 우리는 늘 그것에 굴복하거나, 과잉보상하거나, 회피했다.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그건 효과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 순간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를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 내 마음속엔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네. 이건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이야."
"젠장, 불안해 죽을 것 같아"라는 생각과, "나는 지금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마음속에 떠오른 심리적 사건으로부터 아주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는 반면, 후자는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생각과 자신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공간을 만들 수 있으면 우리는 그 공간 사이로 다른 선택을 집어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전적으로 자신의 가치, 즉,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영위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석가모니의 말이다. 이 주장은 현대의 인지과학적 발견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마음속에 고통스러운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순 없다. 우리 모두 고통을 겪는다. 그러니 살면서 세 명 중 한 명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마주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좌절감을 느낀다. 때론 지우고 싶은 어릴적 기억으로부터 고통 받기도 한다. 직장에서 모멸감을 느끼기도 하고, 큰 기대를 품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일이 엎어지며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기도 하고, 부모님이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생각이 '나'라고 착각하며 그에 굴복하고, 과잉보상하고, 회피하며 삶의 대부분을 낭비하지 않을 순 있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자신을 갉아먹지 않을 순 있다. 우리가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그에 반응하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다. 즉, 삶이란 게 그렇듯 마음속에 고통스러운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는 건 막을 수 없겠지만, 그에 반응하며 괴로워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이 문장은 현대의 주요 인지치료 이론을 정확하게 대변한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도, 체화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 체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석가모니처럼 영적 수련을 통해 그 깨달음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이 잘 개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당신의 마음이다. 우울과 불안을 만들어내는 건 외부의 사건이나 기억이 아닌, 심지어 호르몬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 이것이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수행자들이 발견한 단 하나의 깨달음이자, 최신 인지과학의 주류 이론이자, 심리치료의 공통된 뼈대이자, 스티브 잡스와 같은 영적인 지도자들이 굳게 믿고 따랐던 단 하나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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