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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싸우면 반드시 패배한다

전제 2

많은 사람들이 '나'는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과 끝임없는 전투를 치른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과 관련하여서 그렇다. 그러한 전투는 결국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실패할 것이 뻔한 길로 들어서곤 한다. 세 명 중 한 명은 살면서 임상적인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다. 미국인의 다섯 명 중 한 명은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패할 것이 뻔한 전투를 시작하는지 상상이 되는가? 그들이 치르는 전투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전투는 '굴복'이다. 이것도 전투라면 전투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자기확언적인 전투다. 사람들은 종종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에 그대로 굴복하곤 한다. "나는 겁쟁이야", "나 같은 게 뭘...", "어차피 해도 안 될 거야",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맞아", "그렇지"와 같이 반응한다. 결과는 뻔하다. 위축되고, 우울하고, 불안함이 커진다. 다시 "나는 겁쟁이야", "나 같은 게 뭘...", "어차피 해도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더 자주 마음속에 떠오르게 된다. 몇 개월 이 과정을 반복하면 결국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곤 만다. 다시 생각을 팝콘에 비유해보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은 마치 검은 팝콘과 같다. '굴복'으로 전투를 치르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튀어오르는 다양한 팝콘 중 검은 팝콘을 모아 쌓아두고 그것만 바라보며 삶을 살아간다.

그림 1. 누군가는 부정적인 생각을 쌓아두고 그것만 바라보며 삶을 산다.


두 번째 전투는 '과잉보상'이다. 과잉보상은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어떤 사람의 깊은 마음속에서 종종 떠오른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일을 더 잘하려고 애쓰고, 실제 성과를 잘 내기도 한다. 얼핏 보면 과잉보상은 성공적으로 작용하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설령 그것이 성공적으로 작용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잉보상하는 과정에서 소진되곤 한다. 결코 충족할 수 없는 것을 충족하려는 노력을 반복하다 보면 탈진되기 마련이다. 이는 번아웃, 삶에 대한 무의미함 등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잉보상으로 쌓아올린 자존감은 아슬아슬한 탑과 같다. 과잉보상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감춰둔 사람들은 압박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안할 가능성이 높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회복탄력성이 저하되는 경향도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보다 빠르게 쌓아둔 것들이 무너지면서 더 강하게 바닥으로 고꾸라지기도 한다.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쏟았던 노력이 소용없음을 마주하는 순간은 보다 강렬하기 때문이다.


과잉보상은 마치 검은 팝콘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며 그것이 하얀 팝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한 입 베어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듯, 검은 팝콘은 검은 색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검은 팝콘은 하얀 팝콘이 될 수 없다. 어떠한 경우든 그러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림 2. 누군가는 부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바꿔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세 번째 전투는 '회피'다. 회피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긍정적이고 올바른 생각만 하자"라고 이야기하며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그 생각을 더 강하게 상기할 뿐이다. '핑크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강하게 핑크색 코끼리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몰아내려고 할수록 그 생각은 우리 마음속에 더 자주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은 마음대로 몰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시간을 쏟는 꼴이 된다. 결국 우리 삶의 주제는 점점 더 강하게 우리가 피하고 싶은 생각으로 옮겨가며, 우리는 그 생각으로부터 더 강한 영향을 받게 된다.


다른 방식의 회피도 있다. 누군가는 부정적인 생각을 확인해 주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이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마주하기 힘들어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과의 모임에는 나가지 않고, 지인들과의 연락도 잘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없다"라는 생각을 마주할 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없다"라는 생각은 더 강력한 사실로 확증하게 된다.


회피는 팝콘 기계에서 튀어나온 검은 팝콘을 숨기려는 시도와 같다. 천으로 가리든, 다른 곳에 꼭꼭 숨겨두든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한다고 검은 팝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쩌면 잘 숨겨오다가 사실은 수많은 팝콘이 나의 그릇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한 번에 마주하고는 더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림 3. 누군가는 부정적인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그 전투에서부터 임상적인 수준에서의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PTSD나 강박장애와 같은 경우에는  머릿속에 침습하는 외상(trauma) 기억이나 강박사고를 피하려는 노력 자체가 진단 기준에 포함된다. 즉,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과 전투하려는 과정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공황장애의 경우, 상당 부분 불안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 발전할 때가 많다. "가슴이 답답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러다가 쓰러지는 게 아닐까. 여기서 탈출해야 해. 이렇게 있다간 줄을 것 같아."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죽을 것 같다"라는 결론으로 뻗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결론은 패닉, 즉, 공황을 만들어낸다. 우울증의 경우, "세상은 희망이 없다" 또는 "나는 무능하다"라는 생각에 대한 회피로 활동 반경을 좁히고 무기력하게 침대 위에서만 생활하게 된다. 밖에 나가봤자 그러한 생각을 다시 마주할 게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울은 현실이 된다.


어떠한 전투든, 생각과 싸우면 반드시 패배하기 마련이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설령 지금은 생각과 싸우며 이기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그 전투는 큰 패배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나'는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믿으며, 마음속에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과 다양한 방식으로 싸우곤 한다. 그 결과,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유병률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젠 인구의 1/3이 살면서 한 번 쯤은 그러한 문제를 겪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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