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 전소영, 달그림
<적당한 거리>는 식물들에게 배운 관계의 거리에 대한 책이다. 식물이든 사람이든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가 있다고. 그걸 알기 위해선 한 발자국 물러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전소영 작가는 식물과 대화하는 능력이 있나 보다. 전작인 <연남천 풀 다발>도 하나하나 밑줄 긋지 않은 내용이 없을 정도인데, 이번 책 또한 말 못 하는 식물들에게 많은 걸 배우게 됐다. 작가의 시선에 기대어 베란다 화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 뼘 되는 화분이 세상의 전부지만 씨앗 때부터 세상의 진리를 품어온 식물들.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세상인 흙의 냄새를 맡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나눴던 이야기를 글로 옮겨본다. 최근 빨갛고 화려한 꽃을 피운 동백과 겨울 추위를 피해 집안으로 이주할 준비를 하는 알로카시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몬스테라, 언제나 한결같지만 신경 써주지 않으면 토라져버리는 다육이들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네 화분들은 어쩜 그리 싱그러워?”
내가 식물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야.
“식물들이 말을 한다고?”
물론 사람들처럼 문자를 사용하는 건 아니야. 그들은 잎으로 말해. 잎의 색깔, 질감, 방향으로 말해.
식물들의 잎과 줄기가 향하는 곳엔 언제나 태양이 있어.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강렬한 빛, 보이지 않는 파장이 식물을 키워내지. 더 멀리 더 높은 곳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초록빛이야.
뿌리는 가려져 있지만 가장 바쁘게 움직이지. 뿌리는 흙 탓을 하지 않아. 물기가 없으면 더 깊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돌이 보이면 피하고 부드러운 흙을 만나면 조금 쉬어 가면서.
식물이 자라는 데 바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
때로는 저항할 수 없어 흔들리고 때로는 버티면서 식물은 단단해져. 바람이 실어오는 소식을 들으며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곤 한대.
그리고 조금 힘들 땐 꽃을 피우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기가 준비한 색깔로 꽃잎을 하나하나 물들여가. 꿀벌과 나비의 찬사를 받지 못하는 화분을 위해 눈길과 손길로 정성 들여 축복의 말을 전해.
태양이 인사를 건네고 흙이 단단해지고 바람이 서늘해지면 가야 할 때를 알고 준비를 하지. 온 힘을 다해 피워낸 꽃을 떨구고 잎을 내려놓고 언제나 그곳에 있어주었던 흙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식물은 태양이 되고 흙이 되고 바람이 된대. 늘 곁에 있어 주었던 소중한 존재들이 되어 영원히 그들 곁에 머무르게 될 거래.
글을 잘 쓰기 위한 100일간의 챌린지
'그림책에서 첫 문장을 빌려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