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11] 사랑과 투쟁의 언어

사진을 찍는 마음

by 용호


Lucy Dacus <Hot & Heavy>




1. 퇴사를 자축하며 300만 원을 투자해 카메라를 장만했다. 과거의 나에게 이렇게나 비싼 카메라를 살 줄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정색하며 도리질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변한다. 가끔 나는 변하지 않는 것보다 변하는 것들이 어떤 사람을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한다.


2.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가을마다 엄마가 끓여주시던 꽃게탕, 스물 초입에 새벽 달리기 후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올려다본 청아한 새벽달,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누군가의 뒷모습. 어떤 기억이든 돌이킬 때면 애틋한 마음이 일렁이는 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기억이 없었다. 그 기억들이 모여 오늘의 내가 완성되었고, 그 기억들로 인해 나는 살 수 있었으므로.


그런데 어느 순간 기억은 침식되고 풍화되어 묘연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구한 표정으로 살아가는 스스로가 나는 그리도 서운했더랬다. 사진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 지금 이 순간을 영속적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3. 사진을 찍는 일은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본격적인 카메라를 쥐면 나도 모르게 결연해진다. 이 순간을 가능한 한 예쁘게 새겨두고 싶다는 열정이 활활 타오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지금의 나를 망각하게 된다. 비둘기의 시선으로 잔가지 위에 올라 나뭇잎 사이의 친구를 주시하고, 개미가 되어 수풀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익숙한 세상이 이면을 드러내며, 평소엔 스쳐 지나갔을 못다 핀 꽃 한 송이와 낮잠을 청하는 행인, 과자 부스러기가 남아있는 벤치에도 의미가 생긴다.


의미는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 의미는 부여하는 것이다. 따분한 세상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다. 나는 셔터를 몇 번 누르는 것만으로 과분한 깨달음을 얻었다.


4.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촬영은 인물 촬영이다. 인물 촬영의 성패는 사진사의 가이드에 달려 있다.


“고개 살짝 틀어봐. 넌 오른쪽 얼굴이 예뻐. 그리고 살짝 웃어봐”


친구의 가장 반짝이는 모습을 담기 위해선 세심하고 적극적인 가이드가 필수다. 누군가에겐 웃는 모습이 잘 어울리고, 누군가는 시큰둥하게 분위기를 잡을 때 매력이 증폭된다. 여기서 사진가의 애정이 드러난다. 평소 주의 깊은 관찰력으로 바라본 사람을 찍을 때면 입술이 주술에 걸린 것처럼 가이드가 술술 흘러나온다. 예쁜 마음으로 찍으면 예쁜 사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된다. 물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는 없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모델에게는 용모와 매무새를 정돈하고 사진사를 무한히 신뢰할 역할이 있다.


엄마와 아빠가 꽃 무리에 폭삭 안겨 있다. 그 꽃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향기롭고 포근한 존재가 되어 두 사람을 빛내주는 배경으로 만발하고 싶다.


5. 카메라를 장만하면서 사진에 가장 담고 싶었던 사람은 부모님이다. 지난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대대적인 꽃놀이를 다녀왔다. 출발하기 전부터 나는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오늘 사진 엄청나게 찍을 거니까, 제대로 협조해 줘야 해.”


예상한 대로 엄마는 툴툴거리며 싫은 내색을 했다.


“쭈글쭈글 주름만 보이는데 엄마 사진을 왜 찍어.”


“엄마랑 아빠 사진이 너무 없더라고. 엄마랑 아빠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사진을 많이 남겨두고 싶어. 지금이 남은 생 중 가장 젊을 때라잖아.”


엄마는 잠시간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수십 년의 세월이 엄마의 얼굴을 스쳐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금세 꺼져버릴 촛불처럼 바라보는 엄마. 아니, 금세 꺼져버릴 촛불처럼 나를 바라보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면 속수무책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애써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엄마의 얼굴에 가늠할 수 없이 깊은 슬픔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6. 저런 건 어디서 보고 배운 걸까? 거친 손가락으로 투박한 하트를 만드는 아빠. 그저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쭈뼛대며 손톱달처럼 입꼬리를 당기는 엄마. 더 환하게 웃어야지, 엄마. 주름져서 싫어. 엄마는 주름진 모습도 예뻐, 그러니까 웃어봐. 아이참, 싫어. 이럴 땐 최후의 방책을 써야 한다. 나 낳았을 때 생각해 봐. 뷰파인더 안에서 엄마가 배시시 웃는다. 물기 가득한 눈이 화면 가운데서 유리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아빠는 엄마 살짝 안아주고, 둘이 마주 봐봐. 엄마와 아빠가 꽃 무리에 폭삭 안겨 있다. 그 꽃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향기롭고 포근한 존재가 되어 두 사람을 빛내주는 배경으로 만발하고 싶다.


7. 과거의 나는 사진과 담을 찍고 살았다.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딱히 즐기지 않았다. 과거의 내가 부모님과 꽃놀이하러 갔다면 어땠을까? 봄날의 뙤약볕이 꽤나 따갑다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피로하다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걸었을까? 종국에는 이 외출이 조금은 무용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나날이 줄어들 것을 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순간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마저 잊게 될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안다. 하여 카메라를 쥔다. 하나, 둘, 셋. 지금을 기록한다.

8. 지금은 누가 나를 찍어준다고 하면 흔쾌히 앞에 나선다. 사진사가 되어보니 알겠다. 온 집중력을 피사체에 쏟는 것. 한 컷을 건지기 위해 몇 분, 몇 시간을 투자하는 것. 그러고 나서 선별과 보정에 곱절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 한 컷의 사진은 그러한 지극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사진이 순수한 헌신이 아니라면, 세상에 또 무엇이 순수한 헌신일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조건이 된다”라고 전했다. 나는 사진을 통해 말한다. 내가 당신을 이만큼 아낀답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배운다. 다른 사람의 헌신을 수용함으로써 나를 사랑하는 법을. 사진을 찍을수록 내 안의 사랑 곳간이 풍족해진다.


9. 사진을 시작하며 내가 사랑하게 된 것들. 흰 나비들이 자유롭게 활개 치는 동네 산책로, 그 산책로 너머 안개에 잠긴 편백 군락과 희미하게 손길을 뻗어 잔가지를 더듬는 일광, 정오의 햇살이 투과되어 금빛을 산발하는 호박 차,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언제든 사진으로 되뇔 수 있다는 든든한 믿음.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많았나?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었나? 내 동네를, 내 친구를, 내 가족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순간을 더욱 사랑하게 된 내가 나는 꽤 마음에 든다.


카메라를 쥔다는 것은 곧, 회한하는 수동에서 예비하는 능동으로의 교정이자, 당돌한 시간에 맞서는 발칙한 태세 전환이며, 피사체를 향한 소심하지만 진솔한 고백이다.


10. 사랑은 사진이 전수해 준 가장 큰 가르침이다. 사진으로부터 얻은 또 하나의 깨달음은 우리는 결코 이 순간을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본격적으로 찍은 사진보다는 소파에 누워 나의 어린 시절을 흐뭇하게 추억하는 아빠의 모습이 훨씬 아름답고, 오래된 친구와 눈을 가만히 맞추고 있을 때의 충만함은 사진으로 포착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으로 마음에 물들지 못한다. 카메라를 들이미는 순간 우리의 교류는 단절될 것이기에.


사진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단정하는 건 껍질만 보고 사과가 빨갛다고 단언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실제로 그 안이 시뻘걸지, 푸르딩딩할지, 아니면 반전 없이 희멀걸지는 대면하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순간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맥없이 허물어지는 때가 자주 찾아온다.


11. 사진은 순간 앞에 무력하고, 사진을 찍는 행위가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일을 차단하지는 못한다. 나는 여전히 고삐를 문 노새처럼 과거의 손아귀에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그럼에도 사진 찍는 행위를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시간 앞에 무력한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분투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쥔다는 것은 곧, 회한하는 수동에서 예비하는 능동으로의 교정이자, 당돌한 시간에 맞서는 발칙한 태세 전환이며, 피사체를 향한 소심하지만 진솔한 고백이다. 내가 찍은 대부분의 사진은 그리 대단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만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순간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12. 카메라를 구매한 뒤로 생긴 습관이 있다. 카메라를 늘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다. 언젠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지인은 조언해 주었다.


“찍고 싶은 게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늘 갖고 다니는 게 좋아요.”


아니나 다를까, 장을 보러 가다가 발견한 주공 아파트 단지의 장미를 발견하곤 심장이 달음박질한다.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는 확실한 예감이 든다. 살면서 이토록 확신하는 순간은 많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면, 지금 이 순간은 또 아름다운 한 페이지가 되겠지. 사진을 찍을 기회가 많아져서 더없이 행복하다. 카메라를 사길 참 잘했다.


- 2025.05




마음 생태보고서


수심: ●●○○○



바르트는 언젠가 사진과 함께 기어이 소멸할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이 문장으로부터 도리어 사랑의 잔존을 읽어낸다. 그때까지, 사랑이 있을 것이다. 종이로 인화된 사진의 소멸이야 그다지 안타까울 것 없는 시대. 혹여 저장된 파일이 지워지더라도 사진은 사라진다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사진은 애초부터 물성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다. 촬영된 이미지를 일별하는 것만으로 내게 그 사진은 영영 존재한다. 한때 사랑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며. 그리하여 사랑이 끝난 뒤에, 사랑이 남을 것이다.


이때 사랑은 여전히 과거형일까. 아니면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탈주하여, 시대착오적으로, 현재형일까. 수많은 시대착오적인 고통이 그러하듯이.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목정원 지음, 아침달 펴냄)』 75p, 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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