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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같은 남편과 삽니다

럭키비키 결혼생활

by 스텔라윤


남편이 결혼식날 나에게 읽어 준 혼인서약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가 35년간 로또가 되지 않은 이유,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남편은 정말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양팔을 하늘 위로 뻗고 포효하며 신랑입장을 했다.


그는 지금도 나를 자기 삶의 유일한 로또 같은 존재라고 말하곤 한다.


"여보 그럼 나는 뭐야? 여보는 로또 당첨된 것 같은 결혼을 했는데 나는?"


나의 추궁에 그는 코 옆을 긁적거리며 자리를 피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난 7년 간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면 남편 역시 나에게 로또 같은 존재였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남편은 시어머님께 전화해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하곤 했다.


"엄마, 나 집 좀 해줘."


시어머님은 결혼할 때 집은 남자 쪽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


"아들내미 결혼하는데 엄마가 집 해줘야지."


"응. 엄마 나 판교에 집 해줘."


어머님은 판교가 어디인지 잘 모르셨다.


"그래 판교에 해줄게. 얼마면 되노?"


"10억."


"여보세요?"



결국 우리 둘의 형편에 맞게 빌라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학벌도 경력도 별 볼 일 없는 백수 남편과 살아갈 미래가 까마득했다.


남편의 불확실한 미래 덕분에 나는 결혼 후 부동산에 눈을 떴다.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집을 사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라서도 은행 빚 없이 온전한 우리 집 한 채는 꼭 갖고 싶었다.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집을 샀다. 그것도 3채나.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남편의 공이 가장 컸다.


다행히 부동산은 내 적성에 잘 맞았고 운도 따라주었다. 남편이 집을 사주진 않았지만, 내가 부동산에 눈을 뜨게 해 줬으니 남편 덕분에 집을 산거나 다름없다.


운 좋게도 3채의 아파트는 매년 가치가 상승했고 나를 향한 남편의 사랑도 덩달아 치솟았다. 다소 자본주의적 사랑인 듯 하지만, 덕분에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다.

여보 나 공동명의로 껴줘서 고마워



남편 덕분에 집만 산 게 아니라 책도 썼다.


어릴 적부터 나의 '결핍'이었던 사랑에 대한 주제가 남편과 12년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본질'로 연결되었고, <사랑이 이긴다>라는 짧은 에세이 한 편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내가 책을 쓸 수 있도록 남편이 경제적으로 안정감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진 못했다. 9년 전 나의 삶을 살겠다며 퇴사했지만, 결혼한 후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다. '나는 언제쯤 다시 나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남편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마음껏 창작을 이어가는 작가들을 볼 때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 가정의 경제는 7년 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당장은 돈이 되진 않지만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물론 돈도 벌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쫄깃한 현실은 오히려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 덕분에 나의 생존본능은 늘 생생하게 살아있다.


남편은 경제적 안정감 대신 끊임없는 에피소드를 생성해 주고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준다. 내가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다며 남편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앉아서 글만 쓰는 나를 보면서도 '그게 돈이 되냐.' 타박하지 않고 '정말 작가 같다.'라며 북돋아주는 남편이 있기에 계속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결국 남편이 돈 대신 지원해 준 에피소드와 응원 덕분에 책도 썼다. 지금 이 브런치북도 남편 덕분에 연재하고 있지 않은가.


알겠으니까 귀에 침 튀기지 말아 줄래?


내가 결혼식날 남편에게 읽어준 혼인서약서에는 이렇게 썼다.


한결같이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
나는 당신을 만나 자유로워졌고
당신의 사랑 안에서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늘 내 편인 사람.
때때로 진지하고 무거운 나의 일상에
크고 작은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내 옆자리에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어
천진난만하게 웃는 당신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언제 떠올려도 사랑스러운 당신.
소중한 당신이 내 옆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살아가겠습니다.
후회 없이 사랑하겠습니다.

나에게 와주어 고맙습니다.
오늘 잡은 당신의 손,
놓지 않고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2018.09.16.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면 '어쩜 저렇게 행복한 부부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역시 냉혹한 현실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부부다. 현실에 치여 다 내려놓고 싶을 때면 결혼할 때 내가 남편에게 했던 약속들을 떠올린다. 후회 없이 사랑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겠다던 약속을. 귀여운 할아버지가 된 그의 손을 잡고 옆에 있겠다는 약속을.


로또는 당첨된 순간보다 당첨되고 난 후가 더 중요하다. 로또 당첨되고 오히려 인생 망한 사람 이야기도 흔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서약은 순간일 뿐, 결혼하고 난 후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로또든 결혼이든 나에게 행운이 될지 불운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와의 만남을 내 인생의 행운으로 만들어가 보려고 한다.



[쿠키]


그는 나와 결혼하며 로또가 된 것 같다고 말해놓고 여전히 매주 착실하게 로또를 사고 있다.


"여보 나로는 부족한가 봐?"

"이게 다 여보를 위해서야~ 여보 연금복권 되면 한 번에 받을래? 매달 받을래?"

"제발 당첨되고 나서 좀 물어봐줄래?"


알고 보면 그는 진짜 내게 주어진 천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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