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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Aug 26. 2017

그 날, 살바도르에서 벌어진 일 1

네번째 이야기. 살바도르(Salvador)

 나는 울면서 내려오는 해인이를 달래 호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하고 활기찬 살바도르의 밤에 취해 방심한 내 잘못이었다.

 

 일주일 중 가장 뜨거운 파티가 펼쳐지는 화요일 밤에 일은 벌어졌다. 그날은 펠로리뉴 지구의 삼바 블로코(카니발을 이끄는 스트리트 밴드)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밤새 연주하며 춤을 추는 축제의 날이었다. 일주일 전 수요일 아침에 펠로리뉴 지구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도 호스텔의 분위기는 나른했고 모두가 늘어져 쉬고 있었다. 처음 본 미국 누나는 너희가 어제 도착했었어야 했다며, 여기서 얼마나 머무를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머무르라고 했던 그날 밤이었다.  

펠로리뉴의 화요일 밤.

 무섭기만 했던 살바도르에 서서히 적응하며 자신감이 들 때쯤 화요일 밤이 돌아왔고 우리는 블로코 밴드가 내는 마법 같은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평소라면 겁이 나서 나가볼 생각도 못할 야심한 밤이지만 그날만큼은 수많은 여행자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블로코를 따라다니며 춤을 췄다. 나는 맥주에도 적당히 취해 더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열광적인 밤을 좀 더 자세히 눈에 담고 싶다는 마음에 해인에게 낮에 축구를 하던 공터로 함께 올라가서 이 밤의 분위기를 눈에 담자고 제안했다. (공터는 펠로리뉴 지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빈 공터는 번화가의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고 낮에도 계속 들락날락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해인과 함께 그쪽으로 올라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바도르와 브라질이 얼마나 재밌는 곳인지 이야기하던 우리의 뒤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조명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부터 두 명의 사내가 빠르게 다가왔다.


펠로리뉴 지구가 내려다 보이는 공터.  낮에는 모두가 모여 축구를 하는 안전한 곳이었다.

 

 덩치가 좋았던 한 사내가 다짜고짜 우리에게 말했다. '이곳은 주인이 있는 사유지고 이렇게 밤늦게 남의 사유지에 들어왔으면 당연히 돈을 낼 생각으로 왔겠지? 너희는 지금 내 땅에 들어와 있고 심지어 방금까지 너희에게 강도를 하려고 칼을 들고 따라오던 남자 세명을 쫓아내고 오는 길이다. 돈을 내지 않으면 너희를 풀어주지 않겠다. 나는 이 동네의 모든 호스텔의 위치와 사장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으니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비록 낮시간에 모두가 축구를 하던 공터가 사유지라고 주장하는 바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들이 어떤 꿍꿍이를 갖고 접근했는지, 어디까지가 진짠지 알 수 없었기에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해인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내가 요구한 액수의 현금을 갖고 있지 않았고, 나는 순간 해인을 호스텔에 보내는 것보다 내가 빨리 호스텔로 뛰어가 돈을 가져오고 해인을 데리고 나오는 게 안전할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디선가는 우리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

 

 해인이 불안하게 혼자 남아 나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호스텔로 향했다. 마침 그때 호스텔의 로비를 맡고 있던 스태프는 펠로 리뉴 출신인 쥬시마였고, 쥬시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쥬시마는 나와 함께 동행해주었다. 액수를 챙겨 공터에 다다를 무렵, 해인이 두 명의 사내로부터 도망쳐 나와 공터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해인은 내가 너무 늦게 왔다며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쥬시마가 그들에게 다가가 일을 해결해주는 동안 나의 무모한 성격이 이런 일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해인이는 겁 없고 당찰 것만 같지만 의외로 유리 멘탈이다. 혼자의 몸으로 남미 배낭여행을 1년이나 하면서 그 어떤 사고도 겪지 않았던 것은 겁 많은 성격이 만든 공포에 대한 결벽 때문이었다. 반면 나는 때로는 무모하기도 하고 감상에 빠져 행동하기도 한다. 한 번씩은 안 해도 될 선택을 해 후회하기도 한다. 연인이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둘만의 감정에 빠져 감상적으로 바뀌기 쉬운데, 돌이켜보면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냉정을 찾아주는 건 항상 해인이었다. 브라질에서의 방심은 곧 위험이고 내가 그 위험요소였다. 나는 공포에 질려 반쯤 이성을 잃은 해인을 호스텔로 데려가며 자책감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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