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프롤로그: 2015년 그날 학교 식당에서

나는 처음 뇌전증을 만났다.


장마철이 지난 여름이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여느 대학원생이 그러하듯이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도교수와의 관계는 최악이었고, 논문은 답과 끝이 없어 보였으며, 졸업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루틴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밤을 새고 그 다음날 해가 뜰 때 잠에 들고, 끼니를 내내 거르다가 갑자기 한 끼를 폭식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 식당에서 친한 대학원 언니들과 밥을 먹던 중이었다. 한참 신나게 교수님들 욕을 하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특정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점점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숟가락을 놓치고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설마, 세상에 설마, 내가 그 자리에서 경기를 하고 의식을 잃을 줄 꿈에도 몰랐으니.


눈을 떠보니 구급차 안이었다. 낯선 광경에 겁에 질렸다. 여기가 어딘지, 옆에 이 사람들은 누군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곧 내 하반신이 축축한 걸 느꼈다. 의식이 없을 때 소변을 지린 것 같았다. 내 옆에 함께 점심을 먹던 언니 중 한 명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더 겁을 먹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병상을 배정받자마자 엄마의 내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응급실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왔다. 엄마의 헝크러진 머리와 옷 매무새를 보니 집안일을 하다가 연락을 받고 다급히 나온 것 같았다. 엄마는 나를 보고 바로 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내 이마를 연신 쓸어내렸다. 엄마의 거친 손가락이 이마에 따뜻하게 느껴졌다. 엄마를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온통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던 곳에서 내게 확신을 주는 단 한 사람이 나타나 안정감을 주었다.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는 뇌전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뇌 신경세포에서 일시적으로 비정상적인 스파크가 튀면서 발작을 일으킨다고 했다. 의사는 그날 바로 입원을 해서 몇 가지 검사를 받는 것을 추천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드라마의 병원에서의 한 장면에 내가 엑스트라로 출연한듯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중 내 머리를 지배한 하나의 질문은,


뇌전증이 뭐지? 였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작가가 되자마자 신이 나서 브런치 스토리에 한 번에 발행했던 글들 중 몇 개를 다시 다듬어서 매주 수요일 브런치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브런치북으로 편집하느라 원래 브런치 스토리에 올려놨던 글들을 발행 취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글들을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신 분들께 모두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