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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냐고 물으신다면 (1)

Run, Run, Run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새벽 5시 50분, 머리맡에서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고 화면을 확인한다. 오늘은 2022년 5월 20일.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어느새 날이 밝았네. 위아래로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쭈욱 펴고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일어나기 전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눈을 감고 기원한다. 오늘 하루도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랍니다. 오늘도 온전히 내 정신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눈을 비비며 옷장으로 걸어가 운동복이 든 서랍을 연다. 아직은 새벽 공기가 좀 쌀쌀하니 위에는 긴팔을 입어야겠다. 아래는 검은색 내 애착 반바지. 자는 동안 번개 모양으로 찌그러진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꼼꼼하게 묶는다. 뛰는 동안 앞머리가 흘러내리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니까. 이제 러닝용 양말을 챙겨 신고 간밤에 충전해 놓은 애플워치를 손목에 찬다. 최근 고가를 주고 구매한 나이키 베이퍼플라이3의 끈을 소중하게 매어주고 조용히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어느새 일어난 엄마가 내 등뒤로 외친다. 밝은 데로만 다녀!


일층에 도착해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먼저 풀어준다. 오늘도 집 앞에서 출발해 근처 호수 공원을 한 바퀴 반 돌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 코스다. 그러면 대충 5km 정도 되니까 30분 뛰기 딱이다. 오른쪽 종아리, 왼쪽 종아리, 다시 오른쪽 허벅지, 왼쪽 허벅지를 순서대로 충분히 늘려준다. 목도 가볍게 돌려주고. 이제 애플워치에서 나이키 러닝 어플을 켠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3, 2, 1, Start!


흡흡하하, 흡흡하하. 호흡과 함께 맑은 새벽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아직 체온이 오르지 않아 좀 쌀쌀하다. 춥지 않으려면 뛰는 수밖에. 다리가 약간 무겁게 느껴진다. 기록을 잘 내고 싶은 욕심에 어제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뛴 탓이리라. 하지만 괜찮다. 천천히 뛰면 된다. 중요한 건 쉬지 않고 계속 뛰는 것이다.


새벽의 거리는 맑고 고요하다. 거리엔 지난밤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배회하던 술 취한 행인도, 너 왜 그랬는데 너는 왜 그랬는데 하며 싸우던 연인도, 갓난아기처럼 울부짖던 고양이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푸르른 새벽 공기만이 곧 떠오를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중년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달리며 생각한다. 아저씨도 새벽을 좋아하시나요? 용기가 더 있었다면 가벼운 목인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줍은 러너이기에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빠르게 지나간다.


1km 정도 달리자 호수 공원 입구가 보인다. 거기엔 이미 알록달록한 색의 모자를 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나누고 있다. 아, 이제 몸이 좀 풀린다. 쌀쌀한 기운도 많이 사라졌다. 공원에는 탄성 매트가 깔려 있어 달리기에 최적이다. 계단을 따라 입구를 내려간 뒤 달리기 코스에 진입한다. 나는 매트를 밟고 달리기 시작한다.


호수 주변으로 조성된 공원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모두 담는다. 봄엔 연분홍색, 여름엔 초록색, 가을엔 주황색, 겨울엔 흰색. 나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공원 초입 울창한 나무 밑을 지나간다. 이맘때는 호수의 잔잔하고 반짝이는 표면과 초여름 나뭇잎의 쨍한 초록색이 멋진 대비를 이룬다. 매일 보면서도 더 보고 싶은 광경이다.


나는 호수의 모든 계절을 사랑한다. 호수의 오리들도 어디론가 숨어버릴 정도로 유난스럽게 더운 한여름에도, 깜깜한 새벽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겨울에도 난 호수를 사랑한다. 호수는 나에게 꿈꿀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이곳에서 달리며 나는 매일 희망할 수 있다. 지금처럼만 컨디션을 잘 유지하면 언젠가는 약을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이렇게 꿈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공원을 반 바퀴쯤 돌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몸이 처음보다 가벼워졌다. 조금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컨디션이 좋다. 에잇, 조금만 더 빠르게 달려보자. 후회는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진다. 이마와 등에선 땀방울이 하나둘 흘러내리지만 닦을 시간이 없다. 앞으로 힘차게 박차고 나간다.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수록 나는 상상한다. 내 앞에 어딘가에 있을 건강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앞으로 내딛는 매 스텝마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고. 너무나도 중독적인 이 느낌. 나는 이 느낌을 도저히 놓칠 수 없다.


어느새 공원을 한 바퀴 다 달리고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이제 반바퀴만 더 돌면 된다. 아까보단 속도가 조금 느려졌지만 괜찮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요한 건 쉬지 않고 계속 뛰는 거다. 쉬지만 않으면 된다. 선선한 아침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힌다. 운동을 마치고 아침으로 먹을 그릭요거트 생각에 나는 침을 꼴깍 삼킨다.


이제 공원을 빠져나와 다시 집으로 향한다. 아까보단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들 벌써 출근 준비를 마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함으로 치면 세계 1등 아닐까. 어, 저기 앞에 항상 이 시간에 마주치는 여자가 온다. 그녀는 오늘도 베이지색 땀복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향해 걸어간다. 처음 마주쳤을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지셨네. 어느샌가부터 매일 이 시간에 운동을 나오기 시작한 그녀는 볼 때마다 더 슬림해지는 모습이다. 그녀에게도 나처럼 매일 운동을 해야만 하는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다. 속으로 그녀에게 오늘도 화이팅 하세요, 하고 응원을 외친 후 시선을 앞에 고정한다. 나는 수줍은 러너니까.


어느덧 집 앞 출발지점이 눈에 보인다. 애플워치를 확인하자 지금까지 뛴 거리는 4.79km. 딱 5km만 채우자. 나는 남은 거리를 채우기 위해 온 길을 다시 되돌아 달린다. 나의 지난 달리기 경력으로 보아 앞의 저 가로등까지만 다시 뛰었다 돌아오면 5km가 딱 채워질 것 같다. 하지만 가로등을 돌아 나옴과 동시에 애플워치에서 알리는 “거리 5km, 평균 속도 6분 13초...” 나는 속으로 잠시 고민한다. 어차피 5km를 다 채웠는데 이제 걸을까? 아니면 처음에 정한 대로 다 뛸까? 에잇, 얼마 남지 않았으니 끝까지 뛴다. 집 앞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10m 남짓. 5m, 4m, 3m, 2m, 1m, 끝! 드디어 도착!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주변을 천천히 걷는다. 호흡이 점차 가라앉는다. 어느새 아침 태양이 하늘 높이 자리 잡고 등뒤로 뜨거운 시선을 보낸다. 오늘 하루도 이제 시작됐다고 내게 알려오는 듯하다. 나는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상의 소맷자락을 당겨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는다. 땀이 온몸에서 배출되는 이 느낌, 정말 시원하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나는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겠어!




뇌전증에 관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QnA #7

Q: 뇌전증 환자에게 운동이 도움이 되나요?
A: 네, 적절한 신체 운동은 발작 횟수를 낮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뇌전증 환자들에게 적극적인 신체 활동 및 운동을 권유하는 추세입니다. 

(출처: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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