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rden May 12. 2024

둘째예찬

내인생의 마지막 아기를 대할 때,

우리 둘째 태명은 다낭이다.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유. 공노비가 될 준비를 마치고 첫출근을 여 앞뒀던 6년 전 7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분이라는 ‘합격자’ 의 지위로 우리 셋이 홀가분하게 떠난 다낭으로의 여행. 다낭이는 거기에서 생겼다. 6세가 된 첫째랑 떠 해외여행에서  나는 이게 바로 우아한 육아인거구나,,,를 몸소 체험했고 6살즈음이 비로소 생명체에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경이로운 시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삶의 질과 여행의 질은 정말앞으로 수직상승할 일만 남아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 우리 둘째는 아무런 계획도 없고 준비도 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비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둘째를 고민하는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이 많았지만 나는 한 번도 고민을 해보지 않았을만큼, 내인생에 아이는 하나뿐인, 애보다 내가 더 중요한 안되는 엄마였다. 그런 나에게 둘째라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흐름. 처음에는 아연실색, 중간에는 청천벽력, 마지막에는 대성통곡.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이 ‘나는 망했다.’ 였던걸로 기억한다. 육아를 다시 해야하다니. 이제야 고된 노역같은 육아에서 놓여나 우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시 한번 지옥행 급행열차에 탑승하게 되다니. 사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 게 육아였다. 살림과 육아에 전혀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곧바로 나의 쓸모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고 시험준비와 합격은 인간실격같던 깜깜한 내 터널 끝의 한줄기 빛같은, 인생 전체를 놓고본다해도 특별하달 수 있는 선물같은 이벤트였다.  


그런 나에게 예고도, 기척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둘째는 배속에서 손하나 까딱 안하고도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많은 일들을 해냈다. 첫출근때부터 이미 배속에 자리한 채로 일한지 6개월만에 출산휴가 나를 주저 앉히셨고, 3년의 육아휴직 끝에(이때 첫째의 육아휴직으로 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 창궐하는 코로나로 1년을 더 쉬게 하셨으며, 복직해서도 매일 2시간의 육아시간에 들게 하셨다.


그래서였을지 정말 '막' 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만큼 아무렇게나 키웠다. 전에 언젠가 잠깐 글에서 언급한대로, 세상 제일가는 옷순이인 나는 예쁜거 안예쁜거 싼거 비싼거 국산 수입품 백화점 시장표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옷을 공수해다가 꾸며주고 입혀주며 고이고이 첫째를 키웠다면, 우리 둘째는  한 벌 안사주고 심지어 머리도 집에서 깎아주며 아무런 학습지 및 교육없이 그저 몸만을 '키웠다'.


둘째의 경사에 절대 단독축하란 없었다. 생일겸 이사라든가, 어린이날 겸 생일 이라든가, 무언가 행사가 겹치면 '겸사겸사' 로 버무려서 축하해줬던 것 같다. 육아에 대한 열정도 안되는데 체력까지 안되는 엄마의 생존전략이었다.  돌잔치를 요란하게 하고도 태어난지 500일을, 700일을 축하하고도 두돌을 기념해줬던, 부러 행사를 만들던 첫째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육아였다.


내 한몸 건사하는 것도 부치고 버거운 주제에 육아에 일까지 하던 나를 둘째는 또한 번 2년의 육아휴직에 들게 하셨다.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시기. 바로 지금이다. 그렇게 또 한번 주어진 휴식기의 출발점에서 , 나는 우리 둘째의 새로운 면을 본다.


첫째와 여섯살이나 지는 터울탓에 집에서는 늘 쥐콩만해서 아기같귀엽기만 한 둘째는 내가 육아와 일 사이에서 허덕이는 동안 어느덧 유치원에서 가장 형님반이 되어 있었다. 밖에 나가면 이제 더는 아기가 아니고 작지만도 않은 둘째를 보며 나는 이제 내 인생의 아기는 손주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게 웬 할머니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안에서든 밖에서든 둘째를 물고 빨고 핥고 그냥 두질 않는다. 첫째는 아기때부터 별명이 참새, 인간트위티였을만큼 쁘고 말도 빠른 데다가 내가 최대치로 꾸며준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기때문에 어디서든 예쁨과 주목을 받는 입장이었다. 그게 의식이 되어서 나는 내 체면이 중요한 엄마이므로  꼴불견이 될까봐, 팔불출같다고 할까봐 마음껏 예뻐해주지 못했고, 나름대로 엄격하게 키웠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주관적으로는 자유분방하고 객관적으로는 처지는 외모를 가진 둘째를 이제는 남의 눈치 안보고 시선 신경안쓰고 아무데서나 혀 반토막난 소리로 불러주고 답해주고 예뻐해주고 사랑해준다. 아니 그런데 희한하게 예쁘니 절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걸 무어 어째.  남들이 뭐라고 하면 어때. 내인생엔 다시없을 마지막 내 기인데.


렇게 혀짧은 소리 몇 번 하다보면 자연스레 우리 첫째가 아기시절에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었는 떠오른다. 그때 못해줬던 것들, 몰랐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면서 애틋하고 짠하고 고마운 마음을 첫째에게 느끼게 되고 그걸 쪽지나 짧은 편지로 전달해준다. 엄마는 너를 예전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고 너를 얼마나 믿는지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에게 엄마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을 둘째가 만들어준달까.

 

상황을 낙관하는 여유도 생겼다. 예전에는 용납이 안되었던 돌발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나 사사롭고 소소한 사건사고들을 처리하는 것도 한층 능숙해졌다. 공항가는 택시 뒷좌석에서 토를 좀 하면 어때, 아저씨께 울면서 거듭 사과드리고 뒤처리 하면 되지. ktx 탈 시간맞춰 역에 도착했는데 기저귀랑 분유통 든 가방 좀 빼먹었으면 어때, 집에 가서 찾아 오고 다음꺼 타면 되지.수십만원에 육박하는 접시랑 밥그릇을 동시에 깨먹은 게 뭐가 대수야, 아이가 안다쳤는데. 하하. 이렇게 되었달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의지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 신경쓰고 다 완벽하게 해보겠다고 깝치다간 깜냥도 그릇도 안되는 내가 죽겠으니 생존차원에서 매사를 '포기' 하게 되었다는 쪽이 맞겠지만 아무렴 어때. 핵심이 '관조하게 되었다'인 것을.  


우리 둘째는 덧없는 나의 늙음과, 정처없이 가속페달을 밟 노화에 영원한 면죄부다. 정수리 부분이 휑해진 것도, 얼굴이 점점 길어지고 입술이 얇아져서 못생김의 역치를 매일 갱신하는 것도, 몸통이 두둑해지고 콕 찝어서 말하지 못할 몸의 곳곳 어딘가에 후덕하게 살이 붙는 것도, 정신머리가 없어서 까먹고 빼먹고 틀리는 것도 전부 둘째 출산때문으로 갈음할 수 있다. 뭐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아니고 그 사실들이 달라지는  아니지만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정신승리를 하는 최소한의 방패랄까.


둘째를 낳기 두렵게 만드는 존재가 첫째라면, 셋째를 낳고싶게 만드는 존재가 나에게는 둘째다. 내인생에 아기는 하나뿐이라던 내가 요즘에, 물론, 낳을 마음은 절대 없지만! 셋째낳는 사람들의 마음을 구구절절이 공감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어떤 것 개의치 않고 둘째의 몸만을 막키운 엄마지만, 내 마음속에 사랑까지 없던 건 아니었으므로,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건 사랑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도하고 말과 표현에 낯선 첫째와는 다르게 우리 둘째는 곰살맞고 애교있고 오지랖도 어찌나 넓은지 거절을 당해보지 않아 정도와 선을 모르는 천진한 아이다운 데가 있다. 자랑은 아니다. 지금은 정도와 선에 대해 훈육중이다. 특히 우리 엄마는 둘째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누가 따라가자면 가버릴 것 같다고 하셔 그 부분 역시 집중 교육중이다. 하하.

 

누군가 첫째를 낳은 나한테

'"어떠니, 니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아이를 낳은거지?" 라고 물었을 때 고개를 세차게 저었었다. 고작 아이를 낳은게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라니. 그런 지리멸렬한 인생이라니. 그땐 그랬었다. 그렇게 세차게 도리질을 치고도 하나를 더 낳아 아이 둘을 기르는 엄마가 된 나는, 여전히 사춘기를 맞은 열세 살 첫째 엄마로는 또 첫날이고, 첫째에 치이 일곱 살짜리 둘째 엄마로도 처음맞는 오늘이라 또 서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얘기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은 얘네를 얻은거예요. 특히 둘째없는 내인생, 생각할 수가 없어요."


남들보다 뒤늦게 입사하고 육아휴직 6년을 연달아 쓰면 어때, 매일 육아시간을 2시간씩 써서 주변인들의 눈총을 받았으면 어때, 내가 그딴식(?)으로 근무하고 있는 게 소문이 좀 났으면 어때

 그래서 승진에서 누락됐으면 어때, 둘째 육아의 끝이 내 면직이면 어때. 요거없으면 무슨재미로 살았을 지 도통 모르겠는 어화둥둥 둘째인것을. 일단은 그렇다.  


이전 01화 이런 이별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