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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Jun 02. 2024

싸움의 기술

역학관계와 주도권

인간은, 둘만 모여도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대단히 정치적인 존재들이다. 완전히 평등하고 양쪽의 무게가 같은 관계란 세상에 없다. 누구나 갑이 되고 싶어하고 을을 부리고 싶어한다. 태초부터 갑이되는 쪽이 살아남기 쉬웠기에 발현되어온 생존본능같은 것들이지 싶다. 연애초기 상대에게 헌신하며 스스로 을이 되기를 자처했던 연인들도 연애가 무르익고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면 종국에는 본색이 드러나고 갑이 되고 싶어진다. 진짜 역학관계는 이 순간 결정된다. 그래서 결국 결혼이란, 지금까지의 관계를 연습게임이었다 비웃기라도하듯 기가 더 센 사람이 갑이 되고 기가 약한 사람로 만든다. 기가 세다는 것이 꼭 물리적인 폭력이나 공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할 줄 모르고 공감할 줄 모르며, 무턱대고 우기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보통 기가 세고 갑이 되기 쉽다. 대화를 원하고 변할 준비가 되어있고 상대에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을이 된다. 래서 문제다. 문제인 사람이 갑이되기 쉬운 구조, 그게 결혼이라서.


그러니까 반드시 싸움 해보고 결혼해야 한다. 혹자는 결혼할 상대와 사계절을 지내봐야 한다고 얘기하던데 맞는 말이다. 그냥 계절만 같이 지내보는거 말고, 투닥투닥 알콩달콩 사랑놀음 이런 말고, 정말 싸움. 서로의 밑바닥까지 내보이면서 밑장까지 다 털어보이면서 하는 그런 싸움은 반드시 해보고 결혼해야 한다. 그럼 싸우는 과정에 동굴로 숨는 사람인지,  화가 풀릴때까지 상대방을 들들 볶을 사람인지, 문제를 회피한 채 도망가버릴 사람인지 내 기분이나 내가 원하는 바를 시늉이나마 경청해줄 사람인지, 관계개선의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  마치 리트머스 시약지에 색이 서서히 차오르듯, 코로나 진단키트에 서서히 두줄이 나타나듯 그렇게 결혼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가려진다.


싸우면서 판단해야 할 일은 우리 관계를 내가 제어할 수 있는지, 상대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관한 것이다. 제어가 안되는 사람 감당이 안되는 관계는 꾸역꾸역 끌고 가봐야 헤어질 시기만 늦출 뿐이다. 가 나만 좀먹을 뿐이다. 내가 되돌리고 싶을 때, 둘 사이가 틀어졌을 때 대화를 할 마음이 있는 사람, 본인이 잘못을 했을 때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 상대방이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둘 사이의 문제를 둘이 해결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야 결혼생활이 가능하다. 갈등 상황에 상대방이 동굴로만 숨거나 본인의 화가 풀릴때까지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지 는지 반드시 점검해봐야한다.


보통 어려서부터도 싸움은 웬만해선 안하는게 맞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는 게 미덕이기 때문에 싸움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생활에서는 그게 제일 잘못된 생각이다. 평생 함께 살 사람을 고르고 싶다면 싸움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특히나 결혼을 하면 연애시절 다툴 때 나오던 나쁜 버릇이 몇곱절 심해진다. 이건 검증된 진실이다. 반드시 확인해봐야 할 일이다. 또한 둘이 안싸운다고 잘맞는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안일한 것도 없다. 특히 연애말 결혼초에 하는 싸움은 그 사람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또 두 사람 사이의 질서와 규칙을 정하고 나와 너의 역학관계를 규정짓는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치고받고 물고뜯고 죽이네살리네 하는 것만 싸움이 아니기에 연애말기의 갈등과 반목은 그 이후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누구나 갈등은 싫다. 얻을 것이 없는 싸움은 감정적 소모만 키우고 서로를 피폐하게 할 뿐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건데 역으로 내가 가해자가 되싸움은 안하니만 못하다. 특히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는 남녀 모두 연애때보다 권력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구가 강한 상태이기 때문에 둘다 전투력이 엄청나고 이럴땐 보통 싸우는 일이 둘 모두에게 손해인 데다가 싸우는 목적 자체도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사소한 데서 시작했는데 겉잡을 수 없이 번지는 들불처럼 감정의 골만 깊어졌을 때, 그 불을 잠재워야한다는 결심이 섰을 때, 내가 과연 끌 수 있을지, 상대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래대로 돌이킬 수 있어야 그 사람은 결혼해도 되는 사람이다. 물론 상대에게 나도 그럴테고.


사이코패스도 소시오패스도 나르시시스트도 본인이 기분좋을 땐 좋은 사람이다. 우리 엄마가 유영철같은 연쇄살인마 관련 뉴스를 보고나서 자주 했던 얘기다. 본인이 기분이 좋을 때 나쁜 사람은 없다.  문제는 보통 돌발상황, 예상치 못한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럴때 조언을 구하고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싸움에서도 파도를 잘 탄다. 그러니까 둘 사이의 다툼을 큰 판으로 보고 무엇이 잘못인지 우리가 뭘 해결해야하는지 객관적으고 짚고 따지고 묻고 답을 얻을 수 있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 즉 싸움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데 빠져 뭘 해야하는지 알지 못하고 오직 미워하는 데만 온 에너지를 쏟고 그걸로 본인도 시궁창에 빠질 사람이다.  여행도 가보고 갑작스 계획도 변경해보고  기분안좋다고 할심기도 건드려보고 기분안좋을때 나도 안좋다고도 얘기해보면 답이 나온다. 이건 의도적으로 내가 그 사람을 괴롭히는게 아니라 솔직히, 사계절이 넘는 기간, 연애를 깊고 진하게 하다보면 자연스레 거치게 될 과정이다.


결혼생활이란 어쩌면 줄곧 휴전인 상태로 이혼이나 한 사람의 죽음으로만 끝을 볼 수 있는 종전없는 전쟁일 지 모른다. 하지만 전쟁은, 종전이 목적이라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싸움없이 종전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싸움의 기술이 절실하다. 그래야 화해에 이를 수 있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부디 내가 유리할 타이밍에 생산적으로 잘 싸우시라. 그래야 끝이 아니라 다음이 있다.


이 다음번 이야기는 그래서 화해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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