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詩 8. 비의 고백

by 푸른킴

가을 나무 위로

조용히 뿌려지는 비

형형색색 물드는 시간

나를

살포시 덮는다


오늘도 건너편 성당,

가루비 같은

자신의 생존 위로,

스러지는 죽음

*포도시 받아들인

연로한 순례자들

무색무언의 행진,

길 아래로 천천히

기울어진다


창문 열고 내다보다

비와 나무와 사람

그 어울림

꿈에 본 듯

그 모습 그대로

살갑다


비가 닿으면

세계는

죽어가는 것일까

살아있는 것일까

마음에서

슬며시 싹이 난다


너를 살리고

자신은 사라지는

운명일지

희생일지,

사명일까?

아직 알 수 없어도


들린다,

대지에 닿기 직전

경쾌한

비의 고백


“너를 만나다니,

*無止無知한

기적!”


* 포도시: ‘겨우, 힘을 다 소진할 정도로’라는 남도의 사투리

* 無止無知:‘무지무지’라는 부사를 사자성어로 조어한 것임. 끝이 없고,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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