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詩 19. 곱고 아름다운
사람의 소리, 노래

-한글날 아침에

by 푸른킴

살+암,

사람의

샬롬한 삶


처럼


싸목싸목

옹골차게

포도시 살아왔어도

성긋한 결실


“그래도 돼-”


하루하루 투덕투덕

힘힘한 삶이었을지라도

끝내

문실문실 하게 버텨온

너의 느루


“잘 살아왔다-”


위태로운 걸음

하잔한 삶

오롯이 버티며

새포름한 웃음


“이젠 더 그랬으면 좋겠네-”


한 글자,

한 노래

사붓사붓 걸으며

가든하고 얄캉한

지난한

한 글 인생


도도한 한 자라도 넘볼 수 없는

꺽진 민중의 소리

지긋이 살을 깨우는 함성


娥優聲謠!-


아니

곱고 아름다운 사람의 소리, 노래!



<해설>

한글날 아침, 힘겨욺과 올곧은 세월을 함께 이어온 한글의 삶


1. 우리말의 울림과 삶의 질감

이 시는 나름대로 우리말의 깊은 맛을 찾아 배열했습니다. '싸목싸목', '포도시', '투덕투덕', '느루', '하잔한' 등 토속적인 고유어들은 그동안 읽고, 써보고, 경험했다면서 관찰했던 언어들입니다. 삶의 고단함과 그 끈질김이 피부에 와닿는 우리말입니다.


‘살+암’은 ‘살아온 어떤 결실’을 이미지화합니다. 즉, 사람입니다. 나아가 ㅅ+ㄹ+ㅁ의 조합은 ‘샬롬’과도 이어집니다. 따라서, 사람은 샬롬을 추구한다는 뜻이 가능해집니다. 한글이기 때문에 이런 만들기가 가능합니다. ‘샬롬한 삶’은 오래전 히브리어의 ‘평화,’ ‘질서 잡힌 삶’을 뜻합니다. 이 ‘샬롬’과 우리말 ‘삶’은 발음과 의미상으로 생각 안에서 맴돌 수 있습니다. 나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절대 쉽지 않은 '살아감(살+암)'의 투쟁 속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이 한글 조합을 통해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문실문실 하게 버텨온 너의 느루’는 ‘느루(오래 형성된 삶의 자태)’라는 시간, 삶의 개념을 ‘문실문실 하다(나무처럼 기운차게 뻗어 오르다)’라는 생명력과 결합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는 오랜 고통 속에서도 결국 푸르게 솟아나는 한글의 강인한 생명력을 시각화하려는 것입니다.


2. 고난 속의 따뜻한 위로

시 전반에 걸쳐 짧은 대화체 구절들을 넣었습니다. 이 구절 중 가수 조용필의 노래에서 빌린 것도 있습니다. 그의 노래에 실린 한글은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숨결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돼-,” “잘 살아왔다-” “이젠 더 그랬으면 좋겠네-”


나아가, 이 위로어는 관념적인 구호이거나 시를 위한 문장으로만 만든 것은 아닙니다. ‘힘힘한 삶,’ ‘위태로운 걸음’을 ‘오롯이 버티며’ 얻어낸 ‘성긋한 결실’ 즉 말없이 웃음 짓게 하는 열매와 잇대어 표현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도 이런 표현이 이어집니다. ‘위태로운 걸음’을 ‘하잔한 삶’(무엇을 잃은 듯한 허전한 삶) 속에서도 피어나는 ‘새포름한 웃음’(상큼하게 푸릇푸릇한 웃음)으로 비유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한 글의 삶이 지나온 연대기는 고통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고 솟아나는 희망의 본질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글자가 그렇다면, 그 글자를 쓰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3. '한 글 인생'의 철학적 의미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시는 단순한 개인의 서정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글날 아침’이라는 시점을 바탕으로 ‘한 글 인생’을 사람의 삶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즉 한글로 기록된 모든 이의 삶의 궤적이 그 자체로 고유하고 가치 있는 서사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시의 절정은 ‘도도한 한 자라도 넘볼 수 없는 / 꺽진 민중의 소리’입니다. 여기서 ‘한 자(漢字)’는 어쩔 수 없이 오랜 기간 지식과 권위를 독점해 온 기득권의 상징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해진 틀, 그 틀에서 의미는 갇힐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꺽진 민중의 소리’는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한글을 상징해 왔습니다. 자유롭게 달라지고, 뜻이 여러 길에서 터져 나오는 한글은 땅의 사람들이 몸으로 써낸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는 유연한 그릇입니다. 이 ‘꺽진 소리’가 ‘지긋이 살을 깨우는 함성’으로 전환됩니다. 고통의 아우성이 침묵이 아니라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일깨움’의 외침이 된 것입니다.


4. 마지막 문장

마지막에 만든 한자어 ‘娥優聲謠!’는 ‘곱고 아름다운 사람의 소리,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이 풀어쓴 표현이 더 몸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이 뜻이, 이 시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즉, 한글이 담아내는 소리는 어떠한 권위나 외세적 수식 없이도 그 자체로 곱고 아름다우며, 그것이야말로 ‘샬롬한 삶’으로 전진하는 힘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늘 이즈음에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한글, 그 민중의 가장 진실한 노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굳이 세계의 그릇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세계가 누리고 싶은 우리의 그릇이면 충분합니다.


이 시는 힘들어도 기어이 살아남은 모든 ‘한 글 인생’, 그 한글을 지켜내기 위해 싸목싸목 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작은 헌사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한글이 따뜻한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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