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단상(1).‘잘 계십니까?’

-2025년 성탄절 4주 전: 기다림과 그리움, 망각 사이

by 푸른킴


대강, 대탐, 대시의 절기


1.

비 내릴 듯 습하고 쌀쌀한 듯 눅눅한 초겨울 아침,

골목 너머 작은 공원,

최후의 단풍 노란 은행잎 붉게 물들이는 흐릿한 햇살

성당예배를 마치고 쏟아지는 노년의 느릿한 걸음

융단을 걷는 듯하다.


2.

다섯째 주, 자유롭게 흩어져 예배하는 날,

대림절 첫 번째 주

이른 아침 나는 안식한다.

사이,

나는 습관대로 아침을 먹고,

멀리 오래 걸을 준비를 하며

쓰다 남았던 단가(短歌)의 마지막 단추를 꿰어준다

음악을 연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1995)의

한 대사가 흐른다.


“잘 계십니까? 나는 잘 있습니다.”


오래된 DJ는 호흡을 고르며 덧붙인다.


‘눈 덮인 채 아무 말이 없는 산을 향한 이 인사는
그 답 없음으로 기다림이 되고
다시 그리움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잊는다는 고백일지 모른다’고.


라디오는 가끔

방지턱 같은 ‘덜컹거림’을 선물처럼 가져다준다.

“기다림과 그리움 사이에 집요하게 끼어드는 망각.”

나는 여기서 의식의 개여울을 만난다.


3.

나에게 기다림의 절기는 그리움의 사건과 잇대어 있다.

기다림은 한 존재의 거룩한 탄생으로,

그리움은 그의 숭엄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탄생이 기다림의 끝이라면

죽음은 그리움의 시작이다.

동시성(Concurrency)의 카이로스다.

예수를 따르겠다고 서약한 젊었던 나는

떨어진 단풍처럼 빨리 늙진 않는다.

이 세계에서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기다림과 그리움 사이를 순서 없이 걷는 중이다.


‘무엇을 따르겠다는 것이었을까?’


묻고 또 묻는다.

어느 날 문득, 길을 걷다

‘나는 그가 세계를 관찰하고, 사유하고,

가장 가까운 곳부터 다듬어가는 삶의 방식을 뒤따르겠다’라고

생각을 접었다.

이 틈에

망각은 쉼 없이 침투하여 그 장엄한 다짐,

숭고한 바람을 빼버리려 힘을 쓴다.


4.

대림절 망각이란,

탄생 추억은 희미해지고

죽음 기억은 흐릿해지며

그가 남긴 말들과 표정은 모래성처럼 흐물 하게 만드는 기억의 파괴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버텨도

그의 구원의 이야기들이 빠르게 잊혀간다.

나의 젊은 선언도 가벼워진다.

변명 같은 이유도 더 분명해진다.


그가 이 흔들리는 세계에서 아직 침묵한다는 이유로,

그가 자주 ‘잘 있느냐?’라고 묻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는 숨어 있고, 세계를 향한 구원의 손을 거뒀으며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는 이유로.


하여 나에게 망각은 나이 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니

망각하기에 기다림은 빛나는 법.


망각은 그저 기억의 결핍이 아니라

어쩌면 ‘묵은 기억을 비워 여백을 만드는 인간의 한계’,

기다림은 그 빈자리에 천천히 스며드는 기억의 충전


5.

나는 안다.

한 아기의 탄생은 무한한 기다림의 결과라는 것을.

거대한 우주는 작고 여린 나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창조주가 피조물 속으로 스스로 파고들어 “잘 있냐?”라고

질문한다는 것, 이 안부 묻기는

응답이 물처럼 내 삶에 밀려와 있다는 증거,

신은 인간과 불가사의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증표,

별일 아닌 듯, 특별한 사건으로 초대한다는 초대장.


그뿐만 아니다.

“나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잘 버티고 있습니다”

라고 답함으로써

나를 위로하려는 그의 마음을 나도 다독여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흔들리는 세계에서도 하늘의 견고한 질서는

여전히 내 앞에 있음으로써

나의 가속되는 망각에 나도 저항한다는 증명의 주고받음.


6.

마침내 나는,

겨울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이 계절에

나의 야훼가 한 아기를 인간의 손에 선물처럼 들려줌으로써


불편부당한 세계를 자기 몸으로 버텨내는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이 세계의 공존 모순에 저항하는 안식을 위해

아직도 자기 온몸으로 극단의 분투를 지속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니

이 절기에 나는 나에게 다시 말해주어야 한다.

기다림은 내려오는 것이며,

기다림은 찾아내는 것이며,

기다림은 시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대강(待降), 대탐(待探), 대시(待時)의 계절에

낮은 곳으로 가,

숨어있는 이를 찾고,

다시 만날 카이로스를 기억하는

무(無)의 철학을 다시 온몸에 새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나의 세계는 ‘잘 지내는지,’

우리의 세계가 ‘잘 있기 위해’ 내가 어떻게 분투해야 하는지를,


7.

다시 계절을 따라 돌아온 대림절에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한 편의 글에 담아 나의 작은 기도부터

흰 눈

하늘로 올려가듯

날려 보낸다,


세계 어디에서든

씨앗이 되어

싹이 나길 기다리면서―

거기는 어디이며,

그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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