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단상(2),
지금 어떻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by 푸른킴

붉은 온도계 내려가다

지난밤, 기온이 온도계 표면을 뚫고 내려갔다. 올해 1월에도 겨울이었건만 한해 끝에도 붉은색 온도계가 다시 붉게 물들었다. 파릇한, 지난한, 화려한 봄-여름-가을이 살갑게 쌓여야만 비로소 새로운 겨울이 들어설 자격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알다시피, 겨울은 세계의 검고 어둑한 생채기들을 몸속 깊이 저장하는 계절의 비기(祕器)다. 겨울이 오고, 눈 내리면 삶의 모든 흔적은 숨죽이다 눈 녹으면 뒤엉킨 모습으로 나타나겠지만, 겨울눈 내리는 그 찰나만큼은 추위에도 언제나 하늘의 선물이다.


길로 나가다

본래 오늘은 길을 걷는 날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곤두박질한 기온에 실내에서 꼼짝 않으려 했다. 그래도 추워진 바깥 세계가 궁금해서 바람이 조금 멈춘 틈을 타서 우체국을 핑계 삼아 밖으로 나가 길을 걸었다. 예상대로 거리에는 몸을 움츠린 책 걷는 사람들 모습만 가득하다. 욕심내서 앞 산을 좀 올라볼까 하다가 그만 돌아섰다. 먼 길을 뒤로하고, 가까운 동네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섰다. 길을 걷다 내 삶의 노래를 가만히 떠올렸다. 임재범의 ‘비상(1997년)’이다.


역동한다

이 노래를 평소 부르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가사를 음미하기 좋은 노래다. 특히 ‘너무 많은 생각에 자신을 가둬두는’ 사람들에게 ‘고독은 꼭 나쁜 것은 아니며’,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것을 깨닫게 했다’라고 다독이는 대목이다. 생각해 보면 ‘비상’은 곧 고독 속으로 스스로 하강하다 솟아오르는 날갯짓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거스르는 움직임, 역동(逆動) 말이다.


멀리도 왔네

이 계절에 또 기억하는 다른 노래도 있다. 첫눈이 펑펑 오는 날에는 꼭 찾아 듣는 노래다. 송창식의 ‘밤눈’이다. 가사를 쓴 사람은 소설가 故 최인호(1945~2013) 님이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 이 가사를 쓰고 송창식은 군에 입대하기 전, 이 가사에 곡을 붙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불안한 앞날에 이 노래를 바친 것이다. 삶이 곤두박질칠지, 아니면 비상할지 예측할 수 없어 흔들리는 자신을 다독이는 듯하다. 한밤중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자신을 따뜻하게 해 주기를 은유하며 토닥토닥하는 것이리라. 이 대목에선 곡조에 마음이 기운다. 가사를 마음으로 끌어올리는 느낌에 흐뭇해진다. 이 노래를 상상하며 듣는 이유도 그것이다.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눈이 덮인 밤길, 한 걸음씩 걸어 그물 던질만한 삶의 깊은 곳까지 진격한 ‘나’가 거기 있다. ‘너’도 거기 있을까?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네

‘밤눈’이라 하면, 시인 김광규의 시도 있다.


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수록. 『좀팽이처럼』, (문학과지성사, 2001)-


이 시에는 두 사람이 있다. 겨울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어느 노천 역에 서 있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추위 속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시인은 상대에게 ‘따스한 방’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그뿐 아니다. ‘눈.’ ‘바람’이 밤새 쏟아-불어도, ‘서로의 바깥’이 되어 밤을 지새우고 싶은 사랑이 차오른다. ‘나’는 ‘너’를 위해 기꺼이 ‘바깥’이 될 수 있다고. 시인의 간절한 상상은 현실이 되었을까? 아니 현실이 아니라면 어떤가. 그보다 아침까지 내릴 저 밤눈 속에서 이 老시인의 마음눈으로 ‘너’를 위해 ‘나’를 내어버릴 만큼 역동하는 ‘사랑’이 이 세계를 따뜻하게 응시한다는 것을 실감하면 좋겠다.


이불처럼 되고 싶다

그뿐인가. 겨울, 밤새 내린 눈을 따뜻하게 그려낸 시인은 또 있다. 시인 故 윤동주(1917~ 1945)다. 그날도 눈이 ‘밤’에 내렸던 모양이다.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눈」, 1936)


아침에 별천지처럼 ‘소오복’ 쌓인 눈을 시인은 ‘세계를 덮어 준 이불’로 그려냈다. 추운 세계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하늘의 이불 말이다. 그의 동시가 눈 덮인 오늘 내 삶을 ‘스치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시인은 모름지기 차가운 세계 아래서 따스한 세계를 발굴해야 할 운명을 짊어진 사람처럼 보인다.


12월 365일

세계는 여전히 겨울이다. 밤이다. 2024년 12월 3일이 365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 밤에 어둠 속으로 눈처럼 헬리콥터가 내렸다. 그런데 한밤중에 그 ‘눈이 내렸다’ 해서 세계가 햐햔 낮이 되진 않았다. 눈 덮인 밤은 낮이 아니다. 그저 밤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밤은 ‘영원’ 하지 않다. 낮 같은 밤도 끝은 온다. 밤 같은 세계는 동틀 때 균열한다. 새벽은 첫눈처럼 임재하는 균열의 시간이다. 삶을 계엄하려는 것은 두려움의 끝판이다. 누구도 자유를 얽매고 싶지 않은 세계에서 스스로 오랏줄을 받는 것은 불행하다.


따뜻해지다

오늘, 그날 이 겨울, 나의 일은 명확하다. 이 불안한 세계의 밤에서 그 새벽이 아침에게 길을 열어주길 고요히 ‘기다린다.’ 밤의 꼬리를 붙잡고 끝내 아침을 막아보려는 어리석음에 나를 내던지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나는 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나의 예수, 그의 ‘성육신’이 어디에 둥지를 틀었는지 찾아야겠다. 서로 바깥이 되기를 힘쓰고, 따스한 이불이 되어주도록 애써야겠다. 시들은 성탄절이 소생하는 것보다, 시나브로, 한밤중 첫눈 선물 같은 어린 아기가 방긋 웃고 있다. 따스한 대림절이 저 끝에서 이미 저만치 와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기다림’은 밤눈이 순식간에 땅을 덮은 것처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망각해 버렸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이의 솟구치는 자기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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