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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Oct 04. 2022

불면증을 앓는 밤 꺼내 볼 이야기

가슴 비워낸 곳에 자리 잡은 확장기는 복원 수술을 위한 토대입니다. 복원 수술 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몇 주에 걸쳐 확장기를 늘려 실리콘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는 거죠. 확장기 들어찬 가슴은 신경이 끊어져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형외과 교수님이 확장기에 식염수를 주사할 때도 내 피부는 바늘의 위협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먹먹하게 감각 없는 가슴이 신기하면서도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난 주차장 가는 길에 몇 번이고 병원 로비 벽을 잡고 서야 했습니다. 아마도 늘어날 여유가 없었던 피부가 확장기를 반대쪽으로 밀어낸 것이 고통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확장기가 갈비뼈를 누르고, 갈비뼈는 그 아래 장기를 누르고, 그렇게 우측 상체는 전체적으로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밀치고 밀리는 상태가 됐던 것 같습니다.


식염수를 넣은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그나마도 저항할 힘을 잃은 갈비뼈는 확장기로부터 무참히 짓눌렸습니다. 나는 낮밤 없이 24시간을 오른쪽 갈비뼈가 칼에 베이는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상체를 꼿꼿이 세워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고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갈비뼈 근처 근육이 난도질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 방 빈 벽에 의자를 바짝 붙여 앉아 미세하게 조정된 각도에 도달하면 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최대한 가만히 있었습니다. 갈비뼈 흉곽이 커지면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깊은숨 대신 얕은 숨을 나눠 쉬었습니다. 배가 고프다 안 고프다 할 것도 없고 낮이니 밤이니 하는 것도 없이 오직 숨 쉬는 것에만 간절했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잠들고도 나는 그대로 있었고, 창문 너머 들어오는 나무 그림자가 내 위를 휩쓰는 것을 보면서도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처음에는 원래 다들 사람들도 이런 고통을 느끼는 건가, 내가 어떤 심리적인 문제로 더 아픈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에 대한 의심이 들어, 정신을 바로잡아 보려고도 해 봤습니다만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이없는 건 이런 와중에도 잠은 몰려온다는 겁니다. 첫날에는 요령이 없어 모든 자세를 실패했습니다. 벽에 이마를 기대는 것도, 관자놀이를 기대는 것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잠을 전혀 한숨도 못 자게 되니 밤이 두려워지고 잠도 두려워졌습니다. 마치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목과 어깨는 찌릿거리고 날갯죽지는 뻐근해졌습니다. 팔다리는 퉁퉁 부었고 정신도 제정신이 아닌 듯했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면서 가슴의 확장기를 뜯어내버리고 허리 밑을 잘라내 버리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나는 이러다가 정말 미쳐버리고 말겠다 싶어 정신을 가다듬고 잘 수 있는 방법을 새로 시도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3일 째에는 쪽잠을 잘 수 있는 자세를 찾았습니다. 나는 책상에 이불과 베개 모두를 접어 내 고개 높이만큼 쌓아 올려놓고 고개만 까딱 기대어 잤습니다. 고개를 올려놓고 눈을 감는데 어찌나 기쁘던지요. 짜증 나고 고통스럽고 열이 받는데 기뻤습니다.


그렇게 5일을 버티면 6일째에는 숨을 쉴 수 있게 됐고 7일째에 다시 식염수를 넣으면 또 5일을 버텼습니다. 나는 나는 4주간 일주일 간격으로 총 4차례 식염수를 넣었습니다. 늘려야 하는 가슴의 크기에 따라 식염수 넣는 횟수가 늘어난다고 했는데, 작은 가슴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이것은 단언컨대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러웠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평생 이 기간을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는 잠자리가 여의치 않을 때나 불면증이 올 때마다 떠올릴 겁니다. 이런 날들도 있었는데 왜 지금 잠을 못 자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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