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롭게
겨울 옷가지들을 담아둔 컨테이너 상자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작년 요맘때 집에 돌아온 후 동생이 가지고 있는 걸 보고는 다른 패턴으로 따라 샀던 아메리칸 이글 플리스 짚업넥, 광장시장에서 2만원에 건졌던 아이보리 울 100% 꽈배기 스웨터, 브루클린 Beacon's Closet에서 득템했던 앙고라 100% 회색 브이넥 스웨터, 고속터미널 쇼핑센터에서 만원에 집어 든 목폴라 등등등... 주로 뉴욕 대학 시절과 서울 대학원 시절의 거센 겨울바람에 맞설 수 있도록 나를 도왔던, 지난 10여 년간 매해 옷 정리 시즌마다 나의 픽을 받아 옷장을 지켜준 귀한 겨울 옷 친구들이었다. 분명 큰 플라스틱 정리함에 담아서 집 어딘가에 두었던 것 같은데, 7월 초 이사를 하려고 보니 구석구석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어딘 가에 있겠지.
아니, 대체 어딜 간 거야.
누군가 훔쳐간 게 분명해...
누가 남이 입던 옷을 훔쳐가, 진짜 저질이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누군가를 원망해봤자 내 시간만 아까운 상황. 여름에 이사를 하면서 겨울 옷은 겨울에 걱정을 하자, 하고 마음 한편에 미뤄두었다. 그러다 밴쿠버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나의 기억 속 밴쿠버의 겨울은 늦가을 비로 상쾌하고 주로 영상의 온도를 유지하는, 그나마 견디기 비교적 쉬운 겨울이었다. 아차! 뼈가 시리고 근육이 아려오는 밴쿠버 특유의 추위를 잊고 있었다. 내 두 손은 옷장 안을 뒤지며 바삐 셔츠와 바지 안에 받쳐 입을 내복을 찾고 있었다. 아, 맞다! 겨울옷 다 잃어버렸지...?
엄마와 동생에게 긴급 시그널을 보냈다. 엄마는 저번 한국 방문 때 사놓고 입지 않은 연초록 목폴라와 예~전에 사서 몇 번 입다가 이제는 손이 가지 않는 베이지 목폴라를 가져다주었다. 동생은 자신의 스웨터 컬렉션에서 마음껏 골라보라고 했지만, 입고 언젠간 세탁해서 돌려줘야 하는 불편함에 고맙다며 거절했다.
어디에 살건, 몇 살이건, 성별이 무엇이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면 적어도 0살은 아닐 거란 것.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든 다시는 0살의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 이 땅에 왔지만 어느새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넓은 집과 럭셔리한 차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운 겨울 두 발을 지켜줄 신발 한 켤레와 몸을 감싸줄 재킷을 가지고 있다. 물건을 담아 움직일 가방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 스마트폰도, 당장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음식 재료 몇 가지도 구비되어 있다. 모두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겨울 스웨터를 전부 잃어버리고 나니 처음엔 몹시 허탈했다. 며칠이 지나자 이젠 그만 받아들이고 상실감을 털어야겠더라. 그나마 잃어버린 게 돈이나 금, 매일같이 가치가 상승(혹은 하락)하는 주식이나 암호화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스웨터가 하나도 없다는 게 오히려 가뿐함을 주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0의 상태이지 않은가!
1부터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가지고 있는 바지나 아우터에 쉽게 어울릴 만한 검은색과 회색 터틀넥을 시작으로 아이보리 니트 카디건과 라운드넥 스웨터를 구매했다. 주로 동네에 있는 세컨핸드 샵을 애용했다. 득템의 순간에는 지구를 한번 안아주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도 한 계절마다 옷에 할애하는 버젯(Budget)이 정해져 있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만큼의 스웨터를 한꺼번에 살 순 없었다. 이 색깔, 저 패턴, 이 두께, 저 브랜드의 옷을 다 가지면 매일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다채로움에 뿌듯하겠지만, 터틀넥 두 개와 스웨터 두 개, 그리고 카디건 하나에서 멈춰야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레이어링을 좋아하고 매일 다른 옷을 코디에서 입는 것에 짜릿함을 느끼던 사람이다. 그런데 스웨터를 몽땅 다 잃어버리고 나서 몇 가지 장만한 겨울 스웨터로 거의 매주 돌려가다시피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게 웬걸?! 매번의 코디가 너무 만족스럽다!
지루함보다도 익숙함. 매일 무엇을 입지, 라는 고민보다도 아 이 색깔 나랑 참 잘 어울린다, 라는 뿌듯함.
옷을 다 잃고 몇 안 되는 옷을 새로 구매하면서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다.
사고, 모으고, 쌓고, 다시 사다가 쟁기는 인생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간편함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고, 내가 하는 일에 잘 어우러지는 그런 룩. 나의 최근 예상대로 누군가 박스 하나를 들고 도망간 게 맞다면 그의 뒷모습에 대고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훔치고 달아나 줘서 고마워.
너 덕분에 0이 되었고, 10만큼 왔는데 벌써 꽤 만족스러워.
내가 직접 산, 내가 즐겨 입는 스웨터가 하나도 없다는 건 벌거벗은 갓난아기 때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나만의 겨울 옷장을 만든다는 건 불편하면서도 신나는 일이다.
남편의 외할머니께서 며칠 전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결혼 이후 딱 한번 화상통화를 통해 홍콩에 계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결혼식에 모시지 못한 것도 죄송하고, 직접 만나 그분을 더 알아가지 못한 것도 섭섭하다. 올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는 두 분의 사랑스러운 어르신과 이별해야 했다.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일생을 이루고 떠나신 이들을 떠올리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겨울을 맞이하게 될까?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나는 스웨터를 하나하나 모으고, 하나하나 입으면서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나의 겨울 스웨터 컬렉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처음부터 0에서 시작하는 만큼 어떤 스웨터들로 제2의 겨울 옷장을 채워갈지 더욱 신중한 마음이 생긴다.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내 소유의 물건들과, 혹은 나와 꽤 깊은 정을 나누었다고 믿어온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당황하고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 왔듯 시간이 흐르면서 덤덤해진다. 덤덤함을 핑계로 멈추어 서고 싶지 않다. 0이 되면 그다음은 1이니까. 다시 시작하는 시작선에서는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온전히 내 마음에 달려있다.
코 끝이 차고 무릎이 시리는 겨울이 가까워지니 자연스레 달력은 연말을 향해 간다. 올해(2021년)의 마지막 날은 여느 금요일과 다를 것 하나 없는 금요일이고, 내년(2022년)의 첫날은 여느 토요일과 다르지 않은 토요일이다. 이 금요일에 어떤 사람들과 어떤 금요일을 보낼지, 이 토요일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토요일을 맞이할지는 모두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저 두 손 가득 무언가를 쥐어보려고 애쓰는 '안쓰러운 어느 지점(1에서 99 사이)'의 나를 0으로 내려놓기만 한다면,
가장 나답고 자연스러운 1을 향해 고개만 살짝 들어 올려본다면,
멀리 가지 않아도,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아도
0과 100 사이의 어딘가에서
금세 만족감에 흐뭇하게 웃고 있는
평온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난 한 해도 수고가 많으셨다.
스웨터 상자 잃어버렸다고 슬퍼하는 일은 곧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 몸에 꼭 맞는, 걸치기만 해도 얼굴색이 활짝 피는 새 스웨터 하나로부터 새로운 옷장을 꾸려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