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담는 캐나다 이민생활
202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 교민의 수는 약 730만 명이다. (출처: 외교부 재외동포현황) 대략적으로 교민 인구의 절반이 중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1/3이 북미에, 나머지가 다른 대륙에 흩어져 있다. 전 세계 재외 동포 중 3.23%는 캐나다에 살고 있다. 캐나다 연방정부 인구통계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는 19만여 명의 교민들의 두번째 집이다. (출처: 한국일보)
2021년 12월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인구가 5,100만 명이니 전체 인구의 약 14%의 사람들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100명 중 14명이 해외에서 살아가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Korean Diaspora)의 시대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에세이는 경수필을 의미한다. 생활 속에서의 체험에 기반한 주관적인 글. 시사적, 철학적, 논리적인 중수필과는 결이 다르다. 경수필 안에도 중수필에 쓰이는 객관적인 관점을 포함할 수는 있다. 수필이 '붓을 따르는' 행위라는 점으로 봤을 때, 일상 에세이나 생활 에세이에 어떤 관점을 담느냐는 온전히 에세이스트의 뜻과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어로 바꾸면 '산문'이 된다. '리듬이나 운율에 구애받지 않고 형식이 없이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쓴 글(출처: 위키피디아)'이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우리 고유의 도구라는 말이다.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그동안 가져온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기록 도구가 되어준다.
나는 14살에 이민을 왔다. 부모님은 40대 초반을 막 지나고 계셨던 때다. 20여 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지금, 두 분은 중년과 노년, 그 중간 즈음을 지나고 계신다.
우리의 이민 초기 시절은 혼란 그 자체였다. 재미있게도 아직 그 혼란 속을 살아가는 듯하기도 하다.
집 앞 복도로만 나가도 언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 이웃들이 있다. 아파트 앞 쇼핑몰에 가면 우리는 곧 소수민족 이민자가 된다. 한국 마트가 모여있는 곳에서는 캐나다 교민이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방인이 되는 삶.
10대 시절부터 이민 가정의 삼 남매의 큰 딸로 자랐다. 부모님이 가게를 열 때는 사장 노릇을 해야 했고, 지금도 간혹 엄마인 척 신용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한다. 할 말도 있고 입도 있는데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생활. 그렇게 20년을 살아가시는 걸 보고 있자니, 언어와 문화 차이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말 에세이 쓰기에 딱 맞는 이민 생활이지 않은가?
주관적인 경험과 그 안에서 찾은 나만의 해석.
매일 써도 쓸 것이 생기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건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지?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몸은 해외에 있는데 마음만은 늘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있는지?
에세이 쓰기로 무력감에서 해방되고,
에세이 쓰기로 지루한 일상을 흥미로운 일상으로 바꾸고,
에세이 쓰기로 그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글쓰기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특히, 이민생활 중인 교민이라면 더더욱.
이민 오신 선배 어른들 중에 방금 막 한국에서 입국한 새로운 이민자에게 조언 하나 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안다. 그만큼 이민자의 삶을 통해 견뎌내고 겪어온 지혜가 많이 쌓였다는 의미일테다.
근데 참 재미있게도,
요즘 사람들은 OTT (over the top,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문화에 익숙해서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쉽게 말하면, 넷플릭스처럼.
누군가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이유로 과거 경험을 말해주려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일으킬지 모른다. 눈에 초점은 흐려지고, 가는 손가락은 말없이 핸드폰을 찾아 헤맬지도.
내가 후배에게 지금 당장 말로 해야겠다 싶은 건 대부분 다 잔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다르다.
지금 바로 내뱉고 싶은 그 말,
누군가에게는 살이 되고 피가 될 (지도 모르는) 그 조언을 에세이에 담으면 잔소리는 ‘작품'이 된다.
나는 14살에 가족과 함께 이곳 캐나다 밴쿠버에 왔다. 주중에는 청소년 기관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고, 그 외에는 글을 읽거나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먼 타향 생활을 하면서도 브런치에 나의 이야기를 올리는 이유는 에세이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글의 힘, 쓰기의 힘을 믿는다.
언뜻 보기에는 이방인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민자들은 그리운 고향과 보고픈 얼굴들을 마음에 묻고 살아간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든지 간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방인이 아닌 에세이스트이다.
주도적인 이민자의 삶, 즉 글에 담는 우리들의 소중한 여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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