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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번의밤 Mar 12. 2024

3. 여황제 카드: 산후조리원의 실세

유기농 타로카드 에세이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알까 싶은 중학교 시절, 전교 회장이나 부회장 정도의 큼직한 감투를 쓴 여자아이가 있었다. 큰 눈에 서글서글한 인상, 울림이 좋은 목소리와 딱 적당한 체격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호명을 받은 이는 ‘영광이야’라고 마음속으로 말할 것 같은 소위 ‘불량스럽지 않게 잘나가는’ 아이였는데 이 친구의 명예는 중간고사에서 단체 커닝을 주도하고 계획한 것이 들통나면서 잠시 땅에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인생의 통탄할 법칙은 매우 소박한 단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당시 죄를 뒤집어쓴 이들은 죄다 ‘평민’이었고, 이 친구는 어떤 마법의 경로에서인지 꼬리 자르기로 상황을 모면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이 인상 깊어서 내내 기억에 남는데, 내 기억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 테니 완전범죄는 없는 셈이지만 역시나 지금도 어딘가에서 매력과 마력을 발산하며 하다못해 땅 투기라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오늘 저녁 약속 자리는 즐거울까?’라는 실없는 질문으로 카드를 펼쳤을 때 이 카드가 나오면 그냥 뭐, 즐거움을 향한 프리패스다. 물론 나는 좀처럼 ‘재미, 즐거움 여부’를 묻지 않기 때문에 이 카드를 그저 ‘배부르고 등은 따숩겠다’ 정도의 다소 축소된 의미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여사제가 나오는 것보다는 낫지. (미안해요, 사제님)



언제까지 내리사랑일 텐가

엄마도 자식을 버티고 자식도 엄마를 버틴다     



이 카드를 공부하면서 ‘모성애’라는 단어에 살짝 한쪽 눈을 찌푸린 건 이 단어가 그만큼 수많은 현장으로 불려다니며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따라 구미에 맞게 재해석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부성애를 다룬 <매그놀리아>라는 영화도 있었지. 물론 나 역시 ‘내리사랑’에 맞서 ‘오름사랑’을 주장할 셈으로 이러고 있지만 말이다. 한때 누구나 ‘엄마’를 외치며 운다고 생각했는데 힘들 때 ‘아빠’를 부르며 우는 아이를 마주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마음 한구석이 저릿한 기분이 들었고 어쩌면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외치며 우는 아이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급할 때는 ‘엄마’인가. ‘어머나’와 ‘엄마야’의 유사성을 생각해본다. 우리 집안에서 내가 저지른 숱한 사고와 사건들을 짊어지고 묵묵히 내게 반찬을 싸주던 엄마를 생각하면 조건 없는 사랑을 인정하게 되지만, 나는 직간접적으로 조건이 달린 숱한 모성의 케이스도 알고 있다. 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웃자라거나 왜소해진 어른아이의 한숨소리도 들린다. 자식도 분명 엄마를 버틴다. 분명 애타게 엄마를 찾던 때가 있었을 텐데 나는 언제부터 ‘엄마’라는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을까.           



석류와 출산율

참, 나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이 없는 나라의 국민이었지



여황제가 입고 있는 옷에는 누군가에게는 환공포증을 유발할 정도의 석류가 빼곡이 자리하고 있다. 손에 힘을 주고 반으로 쩌억 가르면 알알이 가득한 시큼달달한 과육을 품은 씨앗들을 생명에 비유하지 않으면 무엇을 생명이라 할 것인가. 갓 태어난 아이를 안은 산모의 마음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풍요의 상태일 것이다. 얼마 전 여행 버라이어티에 고정 출연 중인 한 남자연예인이 ‘나 두 아이 아빠야’ 하고 말하면서 게임에 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뱉은 말은 ‘꼼수를 쓰지 않고 떳떳하게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크고 작은 기업에서도 결혼한 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남성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워킹맘의 고충에 대해서는 또 한숨이 나오지만, 아이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세상의 안전과 질서, 풍요를 바라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고, 일찍 별이 된 아이들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이 생겨나는 거겠지. 내가 자란 도시는 어느덧 고령화가 한창이라,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버스를 타면 아예 앉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노인 인구의 비율이 높아졌다. 아이가 귀하다. <우리 아이들>을 쓴 로버트 퍼트넘 교수는 공동체 단위에서 ‘내 새끼’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라는 감각이 복원되기를 바랐던 석학이다. 길을 가는 꼬맹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사랑한다. 비록 내가 엄마도 아빠도 아니지만.     



산후조리원의 실세

세상에는 잘 보여야 되는 언니들이 있지 


    

어디까지나 억측이지만 일단 여황제가 입은 옷의 디자인이나 사이즈로 봤을 때 여황제는 홀몸이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누가 봐도 임부복이다. 붉은빛 의자도 부른 배를 감당하기 쉽도록 비스듬하게 놓여 있다. 그런데 그와중에 12개의 별이 빛나는 왕관을 쓰고 권력을 상징하는 홀을 들었다면? 나는 아무래도 이 분이 산후조리원의 막강한 실세 같다. 한마디로 잘 보여야 되는 언니다. 이런 언니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갖은 정신적 압박과 소외감을 감당해야 한다. 여론이 만들어지는 중심이자 태풍의 눈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길 따름이지만 언젠가 모 단톡방에서 ‘방장’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잠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누구도 내가 하는 말을 ‘애써’ 귀담아 듣지 않았고, 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나는 방장에게 정면으로 항의를 한 다음 톡방을 나왔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나도 제법 눈엣가시처럼 굴었던가 하고 반성을 해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잘보여야 되는 언니는 한 명이라는 점이다. 어느 집단이든 한 명이다. 이권분립, 삼권분립의 현장을 본 일이 없다. 그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자꾸 이전 카드를 들먹이게 되는데, 여사제와 여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런 불손한 스트리트파이터 같은 생각이라니.          



자연이 아닌 자원

사슴 한 마리쯤 그려줘도 됐잖아



물직적 풍요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카드에 내가 도통 정이 가지 않는 이유는 여황제를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이 온통 ‘자연의 어우러짐’이 아니라 ‘자원의 풍부함’을 나타내는 요소들로 가득하다는 점 때문이다. 여황제의 어깨너머로 푸르게 솟은 나무들은 과연 땔깜이 되거나 튼튼한 집을 만들기 위한 목재로 쓰일 것 같다. 발치에 빼곡한 밀밭은 잘 수확해서 어느 가게에선가 탄탄멘이나 잔치국수가 되어 있을 것 같다. 숲을 휘돌아 흘러나오는 폭포는 1급수 또는 천연암반수라는 이름으로 제법 비싸게 팔릴 것 같다. 즉, 모든 것들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자원’으로 보인다. 나는 이 모든 풍경에서 좀 더 줌아웃을 하고 싶고, 숲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사슴도 보고 싶고, 밀밭을 횡단하는 오리나 너구리도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흙 속에는 지렁이나 벌레도 있겠지. 진정한 풍요란 그런 게 아닐까. 손에 든 홀이 다 뭐란 말인가. 그저 ‘소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 속에서 홀을 들지 않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황제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시민이든 신민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트 표시의 원형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 이 가사 쓴 사람 미워하게 해주세요  


   

이 챕터 전체가 여담이다. 나는 줄곧 하트 표시라는 게 참 철없어 보이곤 했다. 지금껏 내가 그려준 하트들도 이제는 가운데가 지그재그로 죄다 찢어진 모양이 되고 말았는데, 하트라는 게 구조적으로 또 절반으로 잘 찢어지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참 기발한 사랑의 상징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어랍쇼, 여황제가 앉은 의자 아래의 하트 모양의 돌 속에는 점성학에서 ‘금성’을 상징하는 행성 기호가 새겨져 있다. 보티첼리의 그림이 떠오른다. 비너스가 중요한 곳을 가리고 있던 그 아찔한 명화.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라는 오래된 유행가의 가사가 절로 소환된다. ‘누가 사랑이 전부인 존재가 여자래?’ 하고 욱하면서 들었으나 지금의 나는 어떤가. 자화상을 그려보라는 미술 심리상담을 최근에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제복을 입은 어깨가 돋보이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인간을 그렸다. 선생님이 어깨 아래로 가슴은 왜 없냐고 반문했다. ‘가슴이요? 글쎄요, 제가 어깨뽕에 더 애착이 있어서...’라는 말도 못하고 그저 식은땀만 흘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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