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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람 Mar 29. 2021

찌질한 나를 찾았습니다.

퇴사 후 삶을 씁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

연초에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단순하게 책 이야기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서 친한 사람에게 제안을 했다. 퇴사 전 가장 가깝게 지낸 두 사람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고 흔쾌히 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남편은 그게 무슨 의미냐며, 구 직장동료와의 독서모임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직장동료이기 전에 무려 10년이 넘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래선지 남편의 핀잔 아닌 핀잔에도 나는 큰 부담이 없었다. 세 명이서 돌아가며 책을 정하고 2주에 한 권씩 읽고 만나서, 책 이야기와 서로의 근황을 나눴다. 


사실 독서모임은 구실이고, 나는 두 친구를 주기적으로 만나 안부도 묻고, 재미난 이야기들도 나누고 싶단 마음이 컸다. 독서모임이라는 구실이 있으면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보게 될 테니까 자연스럽고 좋을 것 같단 마음이었다. 하지만 얼핏 아름다워 보이는 이 만남은 2회 차를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오늘 약속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될까? 갑자기 일이 생겨서”

“책을 다 못 읽었는데 이따 밤에 온라인으로 하면 안 될까?”

“내가 오늘 다른 일이 있는 걸 깜빡했어. 어쩌지?”     


모임을 거듭할수록 독서모임 당일 날 이런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전날도 아니고, 당일 날 이런 소식을 들으면 기운이 탁-하고 빠진다. 바쁜 일이 없는 백수에게 일정 하나하나는 매우 소중하다. 몇 개 없는 일정을 다이어리에 체크해두고 며칠 전부터 기억해두곤 한다. 그 소중한 일정이 사소한 기억력 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틀어지는 게 속상하고 서운했다. 그게 뭐 별거라고, 다음에 만나면 되지... 하고 말면 되는데, 나는 꽤 서운했다. 게다가 몇 차례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괜한 일을 만들어 두 친구에게 부담을 준 건가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이 불편해지니 모임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갈 용기도 자연히 줄어들었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이 달라 한 번 어그러진 약속을 다시 잡기는 매번 매끄럽지 못했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메시지로 간단한 감상평으로 대신할 때도 있었다.     

 

이게 뭐라고, 단순하고 평범한 독서모임이 뭐라고, 나는 서운함과 속상함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같이 일하면서는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예쁜 카페를 찾아가고, 가볍게 나들이를 하면서 여유를 즐기곤 했는데 2주에 1시간 남짓 독서모임을 할 시간도 내지 못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결국 나날이 혼자 서운함을 키운 거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건 생각도 못 하고 말이다. 옆에서 같이 일하다가 훌쩍 카페에 다녀오는 일이야 쉬워도, 굳이 다른 곳에 있는 누군가를 불러서 함께 가는 건 번거롭고 귀찮고 시간과 마음을 더 들여야 하는 일이니 말이다.        


모임을 계속할까 말까를 두고도 두어 번 이야기를 하다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보자는 두 친구의 의견에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마음속으론 반쯤 내려놓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자고 결론을 맺었다. 모임은 결론이 났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친한 게 맞나 아닌가부터 시작해서, 나 혼자 일방적이었나 싶다가, 10년 넘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많은 것들을 나눴는데 ‘퇴사’하면서 관계도 새롭게 바뀌는 건가 등등 소심한 내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두 친구가 생각하는 ‘친밀함의 정도’와 내가 생각하는 ‘친밀함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같은 친구인데 왜 기준이 다를까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람이고,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걸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세계관은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 안에서도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세계관은 살아가면서 계속 수정 보완해야 하고, 타인과 나의 세계관이 다르면 통합도 해야 합니다.  -전미경 〔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중    

 

길게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은 책에서 읽은 이 문장으로 싹둑 끊어내기로 했다. 10년 동안 같이 일하고, 밥 먹고, 여행 다니고, 크고 작은 어려움에 함께 토닥이며, 가족들과도 얼굴을 익히고, 부모님과 식사도 하면서 단단하게 맺어온 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나는 다르고, 서로를 지탱해온 세계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모를 독서모임은 이제 한 달 후로 예정돼 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이 독서모임의 수확이라면 이토록 소심하고 찌질한 나의 세계관을 발견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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