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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람 Sep 18. 2021

창문 멍

퇴사 후 삶을 씁니다. (여덟 번째 이야기)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작은 집에 비해 창이 많아서 좋았다. 비슷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빌라촌이었지만 다행히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가리진 않았다. 늦은 오후에 퇴근을 할 때면 늘 창을 열어두고 햇살이 들어오는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작은 창으로 들려오는 빗소리도 맘껏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마루에 난 두 개의 창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작은 창이 하나, 현관문을 바라보고 정면으로 또 작은 창이 하나 있다. 오른쪽으로 난 작은 창은 옆 건물과 맞닿아 있다. 창밖으로는 적당히 빛바랜 붉은색 벽돌이 정면으로 보인다. 다행히 붉은색 벽에는 창이 나 있지 않아 민망한 시선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붉은색 벽돌 위로는 햇살이 다녀가는 모습이 잘 보인다. 어느 날은 짙은 그림자가 생기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햇살이 가득해 붉은색이 더 선명해 보이기도 한다. 오션뷰니, 마운틴뷰니 하는 대단한 풍경은 아니지만 나는 ‘단정한 벽뷰’가 제법 맘에 든다.      


그리고 또 다른 창은 앞집 두 건물 사이 골목길을 비춘다. 골목을 오가는 자동차, 느릿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는 창이다. 그날그날 빛깔이 다른 하늘과 구름도 보여 제법 풍경이 괜찮다. 바로 이 창문 앞이 아침마다 내가 머무는 곳이다.      


시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 재촉할 일도 사람도 없다는 것,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을 맘껏 누려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자를 가지고 창문 앞에 앉는다.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기도 하고, 미지근한 물 한 컵을 손에 들기도 한다. 활짝 열어둔 창 밖에 시선을 둔 채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다. 내가 ‘창문 멍’이라 부르는 시간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머물거나 지나가게 두고, 딱히 변하지도 않는 창 밖 풍경을 멍하니 마음에 담는다. 창이 크지 않아 여러 곳에 시선을 두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번잡하지도 않았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좋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날은 비가 오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풍경과 함께 소리도 기분을 좋게 한다. 타닥타닥 땅에 닿는 빗소리가 차분한 음악처럼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비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도 좋다. 비 오는 날에만 풍겨져 오는 흙냄새.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할 때만 느껴지는 그 흙내음을 맡으면 어린 시절 마당에서 비를 보던 때가 떠오른다. 너른 마당을 천천히 적시기 시작하던 봄비. 갑자기 세차게 쏟아져 순식간에 마당의 색깔을 바꾸던 여름 비. 그 마당의 기억이 나를 아침마다 작은 창 앞으로 오게 했는지도 모른다. ‘창문 멍’은 별의별 생각을 다 가져다준다.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 정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창문 멍’은 아침마다 내가 즐기는 루틴이 됐다. 누군가에는 제법 아까운 시간일 테고, 또 누군가에겐 쓸데없는 시간으로 비칠지도 모르는 시간.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져가는 계절의 빛깔과 잊고 지냈던 작은 추억들을 만나는 이 아침이 나를 설레게 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밖이라는 세계가 주는 적당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숱한 누군가들의 눈치를 보고, 내 능력의 한계를 자주 마주치며,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있는 힘을 다 쥐어짜 해내고 말았던, 어느 순간 보람이나 기쁨보다는 허탈함이 더 컸던 그때. 그때는 몰랐던 평온한 이 기분. 내가 아침마다 작은 창 앞에 앉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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